▲ 이재 기자

주 최대 69시간제(주 6일 기준)을 권고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 보건전문가로 유일하게 참여했던 김인아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가 정부의 근로기준법 입법예고안이 노동자의 건강권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연구회 회의 과정에서 노동시간 확대 우려를 집중적으로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난해 11월 중도 사임했다. 고용노동부는 김 교수의 건강권 훼손 지적을 수용하지 않은 채 주 69시간제를 입법예고했다.

김 교수는 30일 양대 노총과 더불어민주당 산업재해예방 태스크포스(TF)·정의당·기본소득당이 공동개최한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개악과 노동자 건강권’ 토론회에 참여해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이날 토론자료가 앞서 연구회에서 제기했던 문제들을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시간 노동 건강 악영향 “너무나 당연한 사실”

김 교수는 연구회의 권고와 노동부의 입법예고안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하고 △노동자의 선택권을 오해하고 있으며 △노동자 건강권을 위협한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국제적인 노동시간 표준은 48시간이다. 주 40시간에 연장근로 8시간을 더 한 것이다. 김 교수는 “국제노동기구(ILO)는 1999년 괜찮은 일자리 개념을 제안하고 괜찮은 노동시간 개념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 역시 노동자 건강을 고려한 최대 주당 노동시간은 48시간이라고 강조했다. 괜찮은 노동시간은 건강하고, 가정친화적이며, 젠더 평등을 고려하고, 생산적이어야 하며 노동자가 선택하고 영향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장시간 노동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미 꾸준히 증명됐다. 김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와 ILO는 주당 55시간이 넘는 경우 뇌졸중,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는 연구를 발표했다”며 “8시간 이후 하루 3~4시간 더 일하는 경우 관상동맥질환 발생 위험이 1.56배 높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루 노동시간이 12시간을 초과하거나 주당 노동시간이 60시간을 넘으면 사고 발생이 37%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논문을 통해 이야기해야 한다는 게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 건강을 훼손한다는 당연한 ‘상식’ 때문에 국제사회는 1주 48시간을 기준으로 노동시간제도를 설계한다. 우리나라처럼 노동시간을 총량개념으로 접근해 평균노동시간을 정하려는 시도도 있긴 하다. 그러나 제한적이다. 김 교수는 “계절적으로 수요가 명확하게 예측되거나 일부 산업에 제한적으로 도입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우편통신 및 일부 식품 제조업, 관광업, 보건의료전문직, 농업 등에 제한적으로 도입하고 안전보건 관련 특별한 조치를 두거나 유해·위험작업은 노동시간을 더 줄이는 등 별도 조치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적합한 제도를 5명 이상 사업장에 전면 도입하려고 시도하는 셈이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서 지적해도 불수용”

특히 정부의 시도는 ‘예외의 보편화’ 시도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정부의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 Q&A에 따르면 5명 이상 사업체 50만7천21곳 중 12개월 연속 연장근로가 발생한 사업장은 3천750곳이다. 김 교수는 “이들 사업장에 예외적 제도개선을 고민해야 함에도 (주 69시간제를) 5명 이상 전 사업장으로 확대하는 것은 노동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고 짚었다. 연속적인 연장근로 수요 자체가 부족함에도 법률로 이런 예외적 사항을 보편적으로 적용하도록 개정을 하는 게 불합리하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연구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폭넓게 지적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역량 부족을 느끼고 사임했다”고 말했다.

이날 전문가들은 연구회의 권고안과 정부의 입법예고안이 미조직 노동자에게 특히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박성우 직장갑질119 야근갑질특별위원장(공인노무사)은 “정부안은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를 노사 당사자의 선택권 보장 방안으로 주장하는데 이를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사 대등성이 전제돼야 한다”며 “정부에 따른 가장 큰 피해는 노조 없는 사업장, 중소·영세 사업체 노동자에게 집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수진 민주당 산재예방 TF단장은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간 개악으로 과로 사회, 전 국민 기절 사회를 만들겠다고 한다”며 “재계 핵심 소원 수리를 위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뒤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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