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사진 오른쪽 두 번째)이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 화물연대본부 천막농성장을 찾아 대화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국가인권위원회가 파업 중인 화물노동자에게 내린 정부 업무개시명령의 인권침해 여부와 ‘노란봉투법’으로 부르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 관련 정책권고·의견표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지난 5일 “업무개시명령은 우리나라가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위반한다”며 인권위에 의견표명과 정책권고를 요청한 것에 대해 인권위가 긍정적인 답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업무개시명령이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 3권 침해하고 ILO 협약을 위배한 것이라는 판단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ILO는 공문에 관련 협약 위반을 명시한 적 없다”거나 “화물연대는 노조법상 노조가 아니다”고 해명해 온 정부 입장은 궁색해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업무개시명령은 인권침해, ILO 협약 위반”
인권위 의견표명할까

박진 인권위 사무총장은 12일 오후 국회 앞 화물연대본부 천막농성장에서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과 이봉주 노조 화물연대본부장 등 노조 관계자와 간담회를 가졌다. 이번 만남은 인권위가 노조에 요청해 이뤄졌다. 화물연대본부가 지난 5일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ILO 협약 29호(강제노동)·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에 위반한다”며 인권위에 의견표명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이날 방문으로 인권위가 정부에 업무개시명령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박 사무총장은 “노조의 개입 요청 전부터 이 사안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며 “업무개시명령과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권에 대해 정책(권고)을 검토하고 있다. (인권위의) 개입은 이미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의견표명의 구체적 내용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업무개시명령의 인권침해 여부에 대한 판단과 ILO 협약 위반 여부뿐만 아니라 업무개시명령 내용이 담긴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 14조가 위헌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만큼 화물자동차법 개정을 권고할 수도 있다.

노조는 지난 5일 화물연대본부 조합원 A씨가 국토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업무개시명령 취소 행정소송에도 인권위 의견표명을 요청했다.

조연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취소소송에 대해 인권위가 의견을 제출할 수 있어서 요청했다”며 “이에 대해서도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정부는 화물자동차법에 따라 지난달 29일 시멘트 BCT 노동자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공공운수노조는 정부 업무개시명령에 △인권위 의견표명·권고 요청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취소 행정소송 △ILO 긴급개입 요청으로 대응했다.

인권위 “노조법 2·3조 개정안 관련 논의 상임위 회부”

인권위는 국회에 발의된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한 의견표명 절차도 밟고 있다. 인권위 관계자에 따르면 15일 열리는 인권위 상임위원회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한 의견표명안을 심의한다. 그간 인권위는 2007년과 2017년 정부에 “노조법상 근로자 개념에 특수고용 노동자를 포함하도록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2009년·2019년·2022년에도 노조법상 사용자 범위를 대법원 판례와 국제노동기준에 맞게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 다만 노조법 3조에 관한 인권위 의견표명이나 권고는 없었다.

노동계는 근로자·사용자 개념을 확대(2조)하고, 사용자가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범위를 엄격히 제한(3조)하도록 요구해 왔다. 이 법은 2009년 정리해고 반대 파업으로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를 돕기 위한 성금을 담은 노란봉투에서 비롯돼 ‘노란봉투법’으로 불린다. 현재 국회에는 이와 관련된 노조법 개정안 10개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하청노동자의 쟁의행위에 천문학적 금액의 손배소를 제기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 등이 화물연대본부 파업에 손해배상 청구 등을 언급한 만큼 ‘노란봉투법’과 관련한 인권위 의견표명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닐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부터 이봉주 본부장은 국회 앞 농성장에서 단식에 돌입했다. 화물연대본부는 “정부가 3년 연장안마저 거부하고 일몰시한을 넘겨서 안전운임제 개악을 추진하는 것에 분노한다”며 “안전운임제 개악 없는 입법과 품목 확대 국회 논의기구 구성을 촉구하며 이봉주 본부장이 단식농성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 정소희 기자
▲ 정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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