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시멘트를 나르는 트레일러(BCT) 운전수 이성철(51)씨는 주변 동료들에게 ‘게으른 사람’으로 통했다. 하루에 20시간, 22시간을 일하는 ‘독한’ 동료들과 달리 그는 하루 15시간 정도만 운전했다. 동료들은 김밥을 손에 쥐고 먹으며 운전했고, ‘밥 먹었냐는 질문에 답을 들어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식사와 수면 시간을 아껴가며 일했다. 하루 3~4시간을 자면서 두 끼는 꼭 챙겨 먹은 ‘게으른’ 이씨는 “8초 만에 잠이 들고 10분이 지나면 잠이 깨 쪽잠에는 도가 튼 사람들이 화물노동자”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씨는 “안전운임제 이전에는 화주와 운송사가 운송료를 속이고 지급해도 한마디도 못 만큼 눈칫밥도 많이 먹었다”며 “안전운임제가 되고 나서는 운송료 내역서도 나오고 운송사 이윤도 정해져 있다 보니 시장이 투명해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루 1시간 수면시간이 늘고, 기름값이 운송료에 연동되다 보니 기름값 걱정도 덜 하게 됐다”며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숨구멍”이라고 호소했다.

비조합원 노동자가 파업하는 까닭
“안전운임제 때문에 컨테이너 운송 다시 시작”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화물노동자 김윤진(33)씨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은 아니지만 안전운임제에 동의하는 뜻에서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김씨는 2019년 2월 컨테이너 운송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높은 노동강도에 놀라 9개월 만에 다른 업종으로 넘어갔다가 올해 7월부터 다시 컨테이너 일을 시작했다. 지난 2020년 시행된 안전운임제가 업종 전환의 계기였다. 안전운임제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현재는 업무시간이 25%가량 줄었다. 김씨는 “안전운임제가 도입되고 나서는 (수입이 보전돼) 수면시간이 늘고 업무량을 조절할 수 있게 됐다”며 “안전운임제 전과 후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안전운임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화물연대본부가 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화물연대 총파업 관련 긴급 토론 및 발언대회’에서 만난 화물노동자들은 안전운임제의 필요성과 효과에 대해 “체감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발언대회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이수진(비례) 더불어민주당이 함께 열었다.

현장 증언이 아닌 연구나 통계는 어떨까. 안전운임제는 적정한 운임을 보장해(정책수단) 과로·과속·과적을 방지하고(직접적 목표)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한(궁극적 목표) 제도다. 화물연대본부는 안전운임제 효과 검증을 위해 △정책수단이 충분히 활용됐는지 여부와 △직접적·궁극적 목표가 달성됐는지를 모두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우선 과로·과적·과속을 방지한다는 직접적 목표는 연구를 통해 달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교통부 발주 연구용역을 수행한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안전운임제 시행 전(2019년)과 후(2021년)를 비교할 때 컨테이너 트레일러는 5.3%만큼, 시멘트 BCT는 11.3%만큼 월 노동시간이 감소했다. 하루 12시간 이상 초장시간 노동에 대한 응답 비율도 줄었다. 안전운임제 시행 전 컨테이너 노동자는 29.1%, 시멘트 노동자는 50%가 하루 12시간 넘게 일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제도 시행 후에는 컨테이너 노동자의 1.4%, 시멘트 노동자의 27.4%만이 하루 12시간 이상 일한다고 답해 초장시간 노동 관행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제도의 궁극적 목표는 이뤄진 걸까. 일몰제로 인해 목표 평가가 어렵다는 것이 본부 설명이다. 박연수 화물연대본부 정책기획실장은 “안전운임제를 지키지 않았을 때 신고수 대비 행정처분이 완료된 비율이 약 2%에 불과해 처벌이 미온적이었고, 적용되는 품목이 적어 사각지대가 넓기 때문에 제도 효과가 반감되는 문제가 있었다는 점에서 정책수단이 충분히 활용됐는지에 대해서는 정부의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박 실장은 “전문가들은 안전운임제 시행 기간이 2년으로 짧기 때문에 교통안전 확보라는 궁극적 목표를 달성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가 어렵다고 평가한다”며 “일몰제를 폐지해 장기간 효과를 검증하고, 도로안전을 담보할 규모로 안전운임제를 확대해 궁극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화물연대본부 주최로 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화물연대 총파업 관련 긴급 토론 및 발언대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화물연대본부 주최로 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화물연대 총파업 관련 긴급 토론 및 발언대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민주당 “여당 중재안 거부시 단독 처리”
정부 8일 임시국무회의, 2차 업무개시명령 검토

파업이 장기화하고 올해 말료 종료되는 안전운임제 일몰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국회 논의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와 여당이 중재안을 거부한다면 안전운임제 일몰 시한이 열흘밖에 안 남은 만큼 민주당은 파업사태 해결을 위해 법안 처리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 6일 안전운임제 일몰 기한을 3년 연장하고 대상 품목을 철강·위험물·자동차(카캐리어) 3개를 추가하는 ‘3+3 중재안’을 여당에 제시했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사회적 갈등과 물류 대란을 수습해 책임 있는 답을 내놓기 바란다”며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는 8일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철강·석유화학 분야의 업무개시명령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2차 업무개시명령을 예고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추가 업무개시명령이 있기 전에 화물연대의 조속한 업무복귀를 거듭 촉구한다”며 “민주당 방침은 전해 듣고 있지만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정을 전제로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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