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물연대 총파업 8일째인 1일 경기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 앞에서 화물연대 서울경인지역본부 조합원들이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정기훈 기자>

지난달 24일부터 시작된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총파업이 일주일을 넘기고 있다. 업무개시명령이라는 사상 초유의 칼을 빼든 정부는 대화를 계속 이어 가자는 화물연대본부의 제안에 “대화 거부”로 답했다. 화물연대본부와 국토교통부는 지난 6월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과 ‘품목 확대 논의’에 합의해 화물연대본부는 파업 유보를 결정한 바 있다. 대화를 거부하는 일방적인 정부 태도에 화물노동자들은 “역대 어느 정부도 이처럼 실망스러운 태도를 보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매일노동뉴스>가 1일 경기 의왕시에 있는 화물연대본부 서경지역본부를 찾아 파업 중인 화물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의왕ICD 반출입량 평시 대비 12.6% 수준
“대화 안 하는 정부, 역대 이런 정권 없었다”

경기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 1터미널과 2터미널은 오봉역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있다. 의왕ICD는 내륙 수출입 물류와 수도권 지역의 핵심 물류거점으로 꼽힌다. 화물연대 파업이 시작하자마자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가장 먼저 찾아 파업 철회를 당부한 곳이기도 하다. 평소 같았으면 일 평균 600대 이상의 화물차들이 오가기 때문에 번잡하지만 파업이 시작한 뒤로 90% 가까이의 화물차가 멈췄다. 간간이 보이는 것은 정부가 투입한 대체수송차뿐이다. ICD 관계자에 따르면 수요일인 지난달 30일 기준 하루 컨테이너 반출입량은 554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로 파업 전 수요일 평균 4천402TEU의 12.6%에 머물렀다. 파업의 여파다.

35년차 홈플러스 화물노동자 안병대(59)씨는 “경제가 우려스럽다”며 “화물연대본부 투쟁의 위력이 상당한데도, 정부가 경제 문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2003년부터 화물연대본부에서 활동한 그는 역대 정부가 화물연대본부 투쟁에 대응하는 모습을 모두 지켜봤다. 안씨는 “이런 정부는 처음”이라면서 “정부가 (지난 6월 합의 이후) 5개월 간 품목 확대를 위한 TF 구성 등의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함께 대화해 보자거나 노력해 보자는 모습만 보였어도 파업까지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평생 운전대를 잡아 온 안씨는 홈플러스 일을 한 지 5년째다. 장거리 운전을 하며 차에서 쪽잠을 자는 생활을 하다가 출퇴근이 가능한 일을 찾게 됐다. 유통·물류 화물노동자로 대형 트레일러를 모는 그는 한 달에 단 이틀을 쉰다. 마트가 휴무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일을 하는 셈이다.

현재 파업에 참여하는 화물연대본부 서경지역본부 조합원 200여명 중 대부분은 안씨 같은 유통·물류 화물노동자다. 안전운임제를 적용받지 않는 품목이다. 10% 정도의 조합원만이 안전운임제를 적용받는 수출입 컨테이너 노동자다. 안씨에게 파업 참여는 “연대”의 의미가 크다. 하지만 안전운임제 도입 이후 과속과 과로가 줄어들었다는 동료들을 보며 안전운임제의 효용을 알게 됐다. ‘안전운임제 전 차종·전 품목 적용’을 주장하는 화물연대본부 입장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에겐 ‘최저임금제’나 다름없다. 일반적으로 화물노동자들은 운행거리와 화물 무게 등을 반영해 일감별로 운임을 지급받는다. 안전운임제가 적용되면 화주가 운송사에게, 운송사가 화물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운임의 최저기준이 생겨 화물노동자의 수입이 보장된다. 어느 정도의 수입이 확보되면 최대한 많은 일을 하거나 더욱 오래, 빨리 일하려 했던 과적·과로·과속 같은 관행이 사라진다. 화물노동자들이 안전운임제가 도로의 안전을 지킨다고 말하는 이유다.

수년 전 휴게소에서 급사한 동료를 본 안씨는 “화물노동자 과로사가 상당히 많다고 본다”며 “안전운임제가 도입돼 안정적으로 일한다고 하면 운임에 대한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져 과속·과로가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기준 없는 유통·물류 화물노동자 임금,
안전운임제 도입되면 달라질 것”

ICD 1터미널과 2터미널은 화물노동자들 사이에서 각각 ‘1기지’와 ‘2기지’로 불리는데 200여명의 조합원이 각 기지마다 천막을 펴고 농성 중이다. 서경지역본부 사무실은 2기지 옆 주차장에 있는데, 영하권 추위에도 조합원들로 북적인다. 오후 1시30분 열리는 중식집회 전 모든 조합원이 사무실 옆에 마련된 간이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는다. 이날 식단은 직접 담근 깍두기와 반찬집에서 사 온 무말랭이, 떡집에서 쪄 온 흰쌀밥과 김치찌개다. 호텔 조리사 출신 조합원이 조리해 자신 있게 대접하는 ‘투쟁밥’이다.

업무개시명령이라는 사상 초유의 압력에도 조합원들의 일상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다. 15년차 화물노동자 정호화(42)씨는 일감별로 운임을 받는 화물노동자와 달리 월급을 받는 화물노동자다. SPC와 거래를 맺은 운송사에 소속돼 일하는 그는 3.5톤 냉동탑차를 운전한다. 정씨는 “유통·물류 화물노동자에게도 반드시 안전운임제가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전운임은 화물노동자가 매달 지출하는 다양한 원가비용에 적정 수준의 소득을 고려해 산정한다. 인건비, 감가상각비, 유류비, 부품비를 고려하고 대기시간과 법정 휴게시간, 운행시간을 포함한 노동시간을 고려하게 된다. 이렇듯 화물노동자의 실제 노동조건을 반영, 운임을 책정해 운송사에서 가져가는 중간착취 비용을 줄이게 된다. ‘일한 만큼 받게 되는’ 구조다.

다수의 유통·물류 화물노동자들은 정해진 월급 소위 ‘월대’로 운임을 받는데 이 역시 화주에게 전적으로 임금 결정의 권한이 있다. 최저임금이라는 최저 기준이 정해진 다른 노동자와 달리 특수고용 노동자인 유통·물류 화물노동자들은 화주가 일방적으로 규정한 운임을 받기 때문에 비슷한 일을 하는 유통·물류 화물노동자끼리도 운임 차이가 크다는 것이 정씨의 설명이다.

정씨 역시 한 달에 5일을 쉬고 하루 12시간 가까이 운전대를 잡는다. 새벽 1시에 출근해 정오가 될 때까지 운전하는 일상이 계속된다. 정씨는 “유통·물류 화물노동자는 업무강도나 거리, 시간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운임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품목 확대를 논의한다’는 정부의 말을 믿었다”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더욱 뭉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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