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송두환)가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에 명시된 업무개시명령 조항을 삭제하라고 권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인권위 사무처 “화물차주 노동 3권 보장해야,
정부 업무개시명령 위헌 소지 있어”

인권위는 30일 오전 상임위원회를 열고 의결안건으로 상정된 ‘화물자동차법상 업무개시명령 관련 제도개선 권고 및 의견표명의 건’을 부결했다. 인권위 사무처가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화물자동차법 14조 업무개시명령에 관한 조항을 삭제하고 △국회의장에게 업무개시명령 삭제 내용이 담겨 국회에 계류된 화물자동차법 개정안(심상정 정의당 의원안)을 조속히 입법하라고 권고한 안건을 인권위 상임위가 거부한 것이다. 이날 회의는 지난해 12월 파업 중인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국토교통부 장관을 피진정인으로 공공운수노조가 인권위에 의견표명과 정책 권고를 요청하는 내용의 진정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화물연대본부는 지난해 11·12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촉구하며 파업했다. 정부는 화물자동차법 14조에 따라 파업이 경제에 위기를 초래했다며 시멘트·철강·석화 업계 화물노동자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이날 표결 결과는 2대 2로 재적위원 과반수 찬성이라는 의결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했다. 송두환 인권위원장과 남규선 상임위원이 찬성표를 던졌고, 이충상·김용원 상임위원이 반대했다. 남규선 위원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충상·김용원 위원은 각각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한 상임위원이다.

인권위 사무처는 화물차주가 국제노동기준에 따라 노동 3권이 보장되는 지위에 있다고 봤다.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위원회가 2011년부터 대한민국 정부에 화물차 운전자나 건설기계차주와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단결권을 완전히 누릴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발효된 ILO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 협약이 보장하는 권리를 특수고용 노동자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헌법상 강제노역금지와 노동 3권에 부합하지 않을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남규선 위원은 “인권위는 특수형태근로 종사자에 대해 수차례 정책권고와 의견표명을 해 왔다”며 “화물노동자는 대기업 화주와 운송사 사이에서 낮은 단가와 과적을 받아 일을 할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남 위원은 “이런 (특수고용 노동자가 겪는) 문제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난해 발효된 ILO 협약이 있는 것”이라며 “업무개시명령을 삭제해 ILO협약을 비준한 취지에 맞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충상 위원은 “(근로자와 사용자를 정의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2조가 개정되거나 대법원 판결로 화물차주가 노동자라는 판결이 전제돼야 (찬성)한다”며 “대법원 판례 중에 레미콘 차주는 노조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결한 적도 있다”고 반박했다.

보수 상임위원 사무처에 “수필적 검토” 막말
타 위원 말 끊고, 사무처 직원 실명 거론 비난

회의는 2시간가량 진행됐지만 의견이 합치되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발언들도 이어졌다. 이충상 위원은 발언 중인 남규선 위원의 말을 자르거나 사무처 직원의 실명을 거론하며 “문건의 작성자가 아무개 주무관인데 내가 노란봉투법때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라며 비난했다.

김용원 위원은 “중요한 문제에 관해 경제계, 정부 관계기관 입장은 어떠한지 검토가 돼야 하고 국민 다수의 의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조사를 해 보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그런 절차가 거쳐지지 않은 상태에서 헌법과 국제노동기준을 검토한 (사무처 안건은) 수필적 검토를 근거로 해 이 시점에 결정을 하라고 하면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헌법과 국제노동기준에 맞춰 업무개시명령의 정당성과 화물차주의 근로자성을 입증한 사무처 안건이 논리적이지 않은 수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남규선 위원과 송두환 인권위원장은 인권위 운영규칙 등에 근거해 해당 안건을 전원위원회로 회부하자고 제안했다. 인권위 운영규칙 20조에 따르면 상임위원회는 상정된 심의·의결안건의 내용이 중대하거나 사회적으로 미칠 영향이 광범위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그 안건을 전원위원회에 회부할 수 있다.

송두환 위원장은 “상임위에서 의견이 잘 모아지지 않으면 인권위 전원위원회로 상정해 처리해 온 것이 20년 인권위의 관례”라며 “운영규칙 16조에 따라 위원장이 전원위원회에 상정하도록 하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다. 하지만 이충상·김용원 위원의 반대로 전원위 상정은 이날 무산됐고, 추후 위원장이 전원위 상정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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