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지난 6월 항공정책 정상화로 국제선 월 여객수는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연일 “하늘길이 열렸다”는 소식이 매스컴에 오르내리지만 공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오랜 휴직기간을 버티고 공항으로 돌아왔지만 이들을 맞은 건 “일지옥”이었다.

26년차 대한항공 객실승무원 이야기=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사무국장인 이춘목(51)씨는 최근 들어 “힘이 들어 회사를 더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한다고 말했다. 긴 휴직 이후 일터로 돌아와 보니 노동강도가 너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까지 1년에 2개월만 근무할 정도로 휴직 기간이 길었다. 올해부터는 두 달을 일하고 한 달을 쉬어 지난달과 이번달 근무했다. 지난달 미국 워싱턴에 다녀오면서는 일이 너무 힘들어 밥을 넘기지 못할 정도였다. 늘어난 승객들에 비해 승무원은 너무 적었다.

지부에 따르면 현재 대한항공 객실승무원 근무 인원은 코로나19 이전의 75~80% 정도다. 비행시간은 줄어들었지만 노동강도는 압축적으로 높아졌다. 이씨의 경우 코로나19 이전에는 한 달 비행시간(지상 근무시간 제외)이 85~90시간 정도였다. 현재는 한 달에 70시간 내외로 근무한다. 그런데 체감하는 노동강도는 배 이상이다. 지부는 2018년과 올해를 비교해 비행기 기종별 탑승 승무원수를 조사해 지난달 발표했다. 6월 스케줄 기준으로 에어버스 A380-800기종에서 2018년에는 승무원 8명이 180명의 승객을 맡았지만 올해는 같은 수의 승무원이 301명의 승객을 책임졌다. 보잉777기종에서 승무원 8명이 담당하는 승객은 같은 기간 178명에서 297명으로 늘어났다. 근무시간이 줄어 비행시간에 따른 수당은 낮아졌지만 일은 더욱 힘들어지게 됐다.

이씨는 “코로나19 이후 비즈니스클래스는 퍼스트클래스에서 제공하던 방식으로 식사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영혼이 탈출할 것 같이 힘들다’고 호소하는 동료들이 많아졌다”며 “이런 노동강도에서 일하면서 승객의 안전을 살피는 승무원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전했다. 그는 “회사는 단거리이면서 음식 제공 서비스가 없는 국내선에 적용되는 승무원 배치 기준으로 장거리 국제선에 승무원을 배치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근무 인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년차 카트노동자 이야기=인천국제공항에서 일하는 오태근(59)씨는 요즘 일하며 하루 2만보 이상을 걷는다. 지난 1월까지만 해도 2천500보 정도를 걸었지만 국제선 운행이 점차 늘면서 카트 이용자가 많아지자 일감도 많아졌다. 하루에 50~100개 정도 “만지던” 카트도 이달 들어서는 1천200개나 정리했다. 오씨는 그나마 전동차를 운전해서 덜 걷는 편에 속한다. 카트를 직접 수거하는 동료들은 하루 20킬로미터 가까이를 걷는다고 한다. 170명이던 카트 노동자는 절반 넘게 줄어 80여명이 남았다. 나머지는 모두 휴직 중인데, 광고와 카트관리를 동시에 하는 용역업체가 광고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자 인건비를 대폭 줄인 탓이다. 그는 휴게시간 1시간도 채 쓰지 못한 채 허겁지겁 밥을 먹고 올라와 남은 일을 마저 하기 바쁘다고 전했다.

오씨가 속한 스마트인포㈜는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카트를 임대해 운영과 유지보수를 하고 광고를 대행하는 도급업체다. 그는 “인천공항공사가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강도와 인력부족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씨는 “회사 입장에서는 인력을 투입하고 싶어도 공사에서 받는 돈이 적어 투입할 수 없으니 노동자들의 고혈을 짜내 카트를 운영하는 것”이라며 “카트를 옮기거나 전동차를 운행하다 종종 교통사고가 나기도 하는데 지금 상태라면 노동자 안전뿐만 아니라 공항 이용객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공공운수노조 공항·항공 투쟁본부
▲ 공공운수노조 공항·항공 투쟁본부

노동자 62% “작업량 늘었다”=노조 공항·항공노동자 고용안정쟁취 투쟁본부는 2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1여객터미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항과 항공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투쟁본부는 노조 내 공항항만운송본부·인천공항지역지부 등에 속한 항공사·조업사·도급사·자회사 등의 노동자들을 한데 모은 조직이다.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8일까지 온·오프라인을 병행해 시행한 이번 조사에는 지상조업·공항 자회사·항공사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 744명이 참여했다.

응답자들은 공통적으로 “업무강도 문제”를 제기했다.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중복선택 가능)에 노동자 62.1%가 “작업량이 늘었다”고 답했다. 연차 사용이 어렵다고 답한 이도 40.5%나 됐다. 코로나19 이전과 업무량·노동강도를 비교한 질문에는 과반수인 53.4%가 “2019년보다 인력이 충원되지 않아 힘들다”는 항목을 선택했다. 항공업 회복 과정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이 무엇인지(중복선택 가능) 물었더니 “인력부족과 안전위험 심각”이 74.9%로 1순위로 꼽혔다.

투쟁본부는 “여행객 급증에도 항공사·조업사·하청사는 신규충원은커녕 휴직자 복귀도 미뤄지며 업무 공백이 커지고 있다”며 “고용노동부는 인력충원을 회피하는 항공산업 관계사들을 특별근로감독하고 인천공항공사와 항공사, 지상조업사는 현장인력을 충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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