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코로나19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조금씩 일상이 회복되고 있다. 주말 번화가에는 사람들이 넘치고 재택근무를 하던 이들도 출근을 시작했다. 회사에서 다시 회식을 강요하는 것 때문에 ‘회식갑질’을 호소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그런데 모든 이들의 일상이 회복되고 있는 것일까? 아직도 누군가는 코로나19 후유증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고, 코로나19 때문에 일터에서 쫓겨난 누군가는 거리의 농성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직도 일자리를 얻지 못해 구인·구직란을 뒤적이는 이들도 많다. 코로나19의 고통을 가장 앞에서 맞이해야 했던 이들이 지금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위기의 시대, 고통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았다. 직장갑질119의 실태조사에서 확인됐듯이 코로나19로 인한 실직 경험은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4.1배 많았고, 소득감소도 3.4배 컸다. 관광이나 항공 등 코로나19의 타격을 심하게 입은 업종에서 정규직은 고용유지지원금으로 버틸 때 비정규직들은 보상 없이 쫓겨나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정부에서 1조원 넘는 지원을 받았지만, 아시아나 기내청소를 담당하는 하청업체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했다. 코로나19는 누구에게나 위험했지만, 집단감염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이들은 나쁜 노동조건으로 힘들게 일했던 요양병원 노동자들, 콜센터 노동자들, 물류센터 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일상회복조차 평등하지 않다. 기업들은 회복기로 들어섰다고 하는데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코로나19 시기에 노동자들을 해고해서 유지했던 기업들이, 일상이 회복되는 지금도 인력을 늘리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노동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바게뜨는 코로나19 감염 등으로 떠나갈 수밖에 없었던 제빵기사를 충원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남은 노동자들은 쉬는 시간도 없고, 경조사 휴가도 갈 수 없고 모성보호도 받을 수 없다. 인천공항은 코로나 규제가 풀리면서 2020년과 비교해 승객이 500% 증가했지만 인력을 증원하지 않아서 남은 노동자들은 높은 노동강도로 일을 하고 있고 일부는 이 노동강도를 견디지 못해 퇴사하고 있다.

단지 인력만 충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19로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전가했던 기업들은 이 기회에 노동자들의 권리를 더 박탈하려고 시도한다. 명동에 있는 세종호텔은 관광이 활성화되는 지금에도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정규직을 없애고 외주로 전환하기 위해서다.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비행기 운항이 정상화되고 있지만 아시아나케이오는 해고된 노동자들을 복직시키지 않고 있다. 복직시킬 수 없는 상황이어서가 아니라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노동자들을 복직시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아직도 거리에 있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확대가 일상이 돼 버린 것처럼 지금의 위기도 노동자들의 권리 악화를 일상화할 것 같아 두렵다.

코로나19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고, 또 다른 위기가 등장할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석윳값이 치솟으면서 화물노동자들이 고통을 받는다. 기후위기로 인한 지진과 홍수 피해가 계속되고 각종 감염병이 이어지면 또 일자리를 잃거나 과로로 사망하거나 집단감염되는 노동자들이 생겨날 것이다. 이런 위기 때마다 정부는 기업에 수조원의 지원금을 퍼붓지만 기업은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떠넘긴다. 위기에서 잠시 회복되는 순간에도 노동자의 일상은 회복되지 않고 권리는 더욱 악화된다. 제도를 보완하라고 요구했지만 필수노동자 지원에 관한 법안, 고용보험 문화예술인 확대 적용, 상병수당 시범실시 정도에 머물고 있다. 이 제도개선조차도 적용범위가 매우 좁고 실효는 의심된다.

이제는 ‘누군가의 권리를 배제하는 방식’의 제도를 뒤집어야 한다.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4대 보험 등은 기업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관리감독이 어렵다는 이유로, 증명이 어렵다는 이유로, 노동시간이 짧다는 이유로, 노동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을 배제한다. 적용 대상 업종을 하나씩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일하는 모든 사람은 이 제도를 통해 보호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그 바탕 위에서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기업에 대한 감시와 통제도 절실하다. 위기라는 이유로 기업들에 수조원을 지원하는 만큼, 노동자와 시민이 기업의 경영을 감시하고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해고 등으로 노동자에게 위기를 전가하는 일을 정부가 통제해야 한다. 위기 때마다 노동자들의 권리가 회복되지 못하고 악화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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