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6·1 지방선거 사전투표 전날인 지난 26일 오전 7시30분. 서울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3번 출구는 출근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빨간 옷을 입고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피켓을 든, 50대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이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3번 출구 바깥으로 나가니 파란 옷을 입고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피켓을 든 50대 여성 두 명이 인사했다. 인파의 물결은 역을 지나 코오롱싸이언스밸리 1차까지 이어졌다. 건물 앞에는 권수정 정의당 서울시장 후보의 유세차가 송영길 후보 유세차와 나란히 있었다.

오전 8시가 되자 민주노총 조끼와 보건의료노조 조끼를 입은 사람들을 포함한 10여명이 권수정 후보 유세차로 모였다. 정의당을 상징하는 노란 옷을 입고 피켓을 들고 출근길 흐름을 마주했다. 권 후보도 유세차에 올랐다.

“여성들이 일자리에서 겪는 아픔을 고민하는 서울시장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비정규직·청년·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돌봄에 지쳐 가는 여성 어르신, 이름조차 없는 노동자의 땀방울이 서울시의 중심으로 같이 가도록, 권수정과 함께 서울을 전면 수정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진보단일후보가 마주한 민심

서울시장 선거는 오세훈 후보가 다른 후보들보다 크게 앞서는 상황이다. 지상파 3사가 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입소스에 의뢰해 23~25일 서울시민 1천2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오세훈 후보 지지율은 53.6%로, 31.2%에 머문 송영길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선다.

권수정 후보 지지율은 1.5%에 그쳤다. 역대 서울시장 선거 진보후보 중 가장 낮다. 직전인 7대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단순 득표율 합산으로 보면 진보 후보들이 3.75%(김종민 정의당 후보 1.64%, 김진숙 민중당 후보 0.44%, 신지예 녹색당 후보 1.67%)를 받았다. 권 후보는 진보정당 단일후보인데도 직전 선거 진보정당 합산보다 지지율이 낮은 것이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고)

유세 현장에서도 권 후보를 지지하는 시민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권 후보가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연설을 했지만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시선을 던진 50대 여성은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저런 후보가 있는지 몰랐다”며 걸음을 옮겼다. 감색 정장을 입고 출근하던 40대 남성은 기자의 질문에 “알지 못하는 후보라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한때 진보정치를 지지했지만 권 후보를 찍지 않겠다는 시민도 있었다. 코오롱싸이언스밸리 옆 건물 주차장을 통제하던 주차요원 이재호(67)씨는 “예전엔 진보여서 김대중을 찍었는데 지금은 오세훈”이라며 “문재인 때 갈수록 잘하는 모습이 안 보였고, 새 정부를 도와 서울시장도 국민의힘이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선거 때마다 정의당을 찍었다는 최한기(64)씨는 “권수정 후보는 진즉 알고 있었지만, 정의당이 민주당 2중대를 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누굴 뽑을지 모르겠다”며 “(정의당) 색깔이 확실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장으로 나온 첫 여성노동자인 권수정 출마에 여러분께서 함께 힘 실어 주시고 … 콜록, 콜록.” 권수정 후보는 유세 마무리를 하는 도중 시민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30초간 기침을 했다. 세 번의 심호흡 끝에 “여러분과 가장 닮은, 기득권과 가장 멀리 있는 권수정과 함께 서울시를 수정해 주시기를 호소드립니다”고 말한 뒤, 목이 메어 유세 연설을 마무리했다.

재정 부족에 선거운동은 자원봉사자들이
머리 숙이며 ‘기득권 정당 됐다’ 반성

진보정당은 선거운동에서 불리하다. 돈 때문이다. 거대 정당이 아니라 자금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공직선거법에 따라 지지율이 15%가 넘지 않으면 선거비용을 보전받을 수 없다. 유재준 정의당 서울시당 조직국장은 권수정 후보 홍보 피켓을 들고 있는 선거운동원이 평소에 보이지 않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돈이 없어서”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원봉사자와 한 대 있는 유세차가 권 후보의 유세 자산이다. 선거운동원은 한 명당 하루 10만원의 인건비가 나간다. 유세차량 한 대를 열흘 동안 운영하려면 1천500만원이 든다. 유재준 조직국장은 “1, 2번 후보와 다르게 (정의당은) 선거비용을 보전받을 확신이 없지 않느냐”며 “이 선거만을 위해 유급으로 일하시는 분은 없고, 민주노총과 정의당원 자원봉사로 유세를 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송 후보와 오 후보는 시민 출근행렬이 이어지는 지역마다 유세차를 배치했다.

정의당은 선거 악재도 있다.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가 제기한 성폭력 은폐 의혹이다. 강 전 대표는 지난 17일 아무개 광역시도당 위원장에게 성폭력을 당했고 이를 여영국 당대표에 알렸지만 당대표가 무마했다고 주장했다. 당지도부가 이를 반박하면서 논란이 됐다.

거대 여야를 견제하는 의미로 비례대표만큼은 정의당을 뽑아 왔다는 류민하(32)씨는 “최근 논란에 실망해 이번 선거에서는 기권표를 던질까 싶다”고 말했다.

권 후보는 오전 9시에 구로디지털단지 유세를 끝내고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으로 이동했다. 오전 10시에 예정된 정의당 중앙선대위의 대국민 특별기자회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정의당 지도부는 기자회견에서 정의당이 기득권 정당이 됐다는 지적을 받아들이고 사과한다며 다시 한번 정의당을 지지해 달라고 호소했다. 여영국 정의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 배진교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을 포함한 지도부와 권수정 후보를 비롯한 지방선거 출마 후보들이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든 권 후보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처음이자 마지막 3자 대면 TV토론
남들은 “부동산” 말할 때 “일자리와 기후위기”

이날 오후 11시부터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주최하고 지상파 3사가 중계하는 2022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가 열렸다. 송영길·오세훈·권수정 후보가 한 자리에서 서로의 공약을 검증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자리다. 13일 3자 토론이 예정돼 있었지만 오 후보가 불참을 선언하며 송 후보와 양자 토론으로 흘러갔다. 송 후보와 오 후보는 20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양자 토론을 했다.

지지율과 인지도가 낮은 진보정당 후보로서 토론회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권 후보는 오후 시간 모두를 TV토론 준비에 쏟았다. 아침 겸 점심을 라면으로 해결하고 서울시의회 의원연구실에서 홀로 공부했다. 권 후보는 100페이지 남짓 되는 자료들과 컴퓨터 모니터를 번갈아 보며 노란색 B5 옥스퍼드 노트를 필기로 채워 갔다.

각 후보들의 공약은 부동산 공약이 주를 이룬다. 송영길 후보는 부동산 정책에 치중했다. 3대 핵심 공약으로 △10년간 월세로 살다 10년 뒤 기존 분양가를 주고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누구나집’ 공급 △도시철도 사각지대 노선 확충으로 모든 지역 역세권화 △유엔(UN) 아시아본부 유치를 내걸었다. 오세훈 후보는 △기본소득과는 반대로 소득이 적을수록 많은 지원액을 지급하는 안심소득 △고품질 임대주택 △교육격차 해소를 위힌 교육플랫폼 서울런 대상 확대를 제시했다.

권수정 후보는 일자리와 기후위기가 주요 의제다. 일하고자 하는 모든 시민에게 서울시가 일자리를 보장하는 ‘서울형 일자리보장제’가 최우선 공약이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면서도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돌봄노동자가 생활임금과 4대 보험, 노동법이 정한 휴가를 받을 수 있도록 서울시가 책임지는 일자리로 만들 생각이다. 사대문 안 차 없는 거리, 과밀 서울 해체를 위한 수도 세종 이전이 2·3순위 공약이다.

권 후보는 자신의 말과 공약이 서울시에 뿌리내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 “진보 단일후보들이 뛰면서 만들어 내는 진보의 공간이 있고, 표는 공간의 폭을 넓혀 가는 과정입니다. 전대 시장선거에 나왔던 진보후보인 노회찬·김종철. 그분들이 던졌던 말씀들이 의미가 없었나요. 박원순 시장이 노회찬 의원의 공약을 참고해 서울시에 뿌리내렸습니다. 진보정당의 말과 공약은 선거 이후에도 뿌리내리고 안착합니다.”

그는 “그래도 지지율을 올릴 방법, 떨어질 거 알면서도 나오는 이유를 물을 때마다 솔직히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진보정당이 대안이라는 걸, 시민분들이 알아 주신다면”

사전투표를 7시간 앞두고 열린 TV토론에서 후보들의 차이점은 도드라졌다. 각 후보 핵심 공약인 부동산과 일자리 정책이 주제로 선정됐다.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 다선의 능숙함, 송영길 후보가 인천시장으로서의 능력, 권수정 후보가 진보후보라는 대안을 강조하는 구도가 형성됐다.

오 후보는 ‘신통기획’을 부동산 정책으로 강조했다. 통상 5년이 넘게 걸리는 정비구역지정 기간을 2년으로 단축시키는 제도다. 민간이 개발을 주도하고, 공공은 정비계획 수립 초기부터 건축·환경·교통심의를 통합해 속도를 높인다는 이 제도는 오 시장 취임 후 도입됐다. 권 후보는 속도전 때문에 시민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송 후보는 ‘누구나집’과 강남구 구룡마을에 용적률을 500%까지 올리는 정책을 언급했다. 오 후보와 권 후보는 누구나집 공약이 월 200만원이 넘는 서울 월세를, 용적률 500% 공약은 교통과 생활쓰레기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권 후보는 공공주택과 사회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입주자와 서울시가 지분을 공유하는 지분공유형주택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일자리의 경우 오 후보와 송 후보는 민간부문 일자리 창출에 중점을 뒀다. 오 후보는 청년취업사관학교 설립, 송 후보는 벤처를 유치해 주거단지와 결합한 청년타운 조성과 UN아시아본부 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이야기했다. 권 후보는 두 후보와는 다르게 공공일자리 확대와 일자리 보장제를 주장했다.

토론회가 끝난 27일 새벽 1시, 권 후보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목이 멘 목소리로 “아쉽다”는 말을 연발했다. “(보수정당 외에도) 대안이 있다는 것을 시민분들이 아시면 반응이 조금이라도 다를까요?”

권 후보는 이날 오전 7시 여의도 사전투표를 시작으로 유세 일정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채 6시간이 남지 않았다. 두꺼운 방송용 메이크업을 지우고 휴식을 취할 시간이나 있을까. 휴대폰 너머에서는 권 후보 승용차의 비상등 소리가 ‘짤깍짤깍’했다. 절실하고, 한 발이라도 더 뛰고 싶은 후보의 마음처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