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의 대통령선거-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진보정치 위기설이 떠돌고 있다. 대선에서 2.37%의 득표를 받는 데 그쳤고, 6월 지방선거에서는 고작 9명의 당선자만을 배출했을 뿐이다.

정의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며 기반을 다진 진보세력은 내부 갈등으로 인한 분당, 외부의 이념공세 등 다양한 사건 속에도 전국선거에서 10% 내외의 지지를 받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4개 진보정당의 득표율이 사상 처음으로 5%대로 떨어졌다. 어떤 사건이나 위기에서도 진보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지지자들이 마음을 돌렸다는 것 외에 달리 분석할 방법이 없다. 대안정치세력이라는 위상이 흔들리는 상황, 진보정치에 진짜 위기가 닥치고 있다. 진보정당은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진보정당의 어제 : 10% 콘크리트 지지
양당 견제할 대안세력으로 자리매김

국민승리21을 거쳐 제 진보세력이 힘을 합쳐 출범시킨 민주노동당은 2000년 창당 이후 잦은 부침을 겪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13%를 득표하고 의원 10명을 배출해 원내로 진출했지만, 2006년 당원이 연루된 간첩사건인 ‘일심회 사건’이 불거지면서 당내 갈등이 증폭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돼 2008년 진보신당 창당으로 당이 갈라졌다. 그 뒤 진보정당 통합 필요성이 제기된 끝에 대부분 진보정치세력이 2011년 통합진보당 간판 아래 다시 모였다.

하지만 2012년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논란이 불거지면서 다시 정의당이 갈라져 나왔다. 통합진보당은 2014년 헌법재판소 결정에 의해 해산됐다. 이후 정의당은 원내에서, 통합진보당은 ‘민중연합당→민중당→진보당’으로 명맥을 이어 오며 원외에서 활동했다. 노동당·녹색당 등 원외 진보정당도 자기 목소리를 꾸준히 냈다.

상처투성이 진보정치 역사는 진보세력 전체에 큰 상처를 남겼다. 그래도 지지자들은 진보정당에 꾸준하게 힘을 실었다. 유권자 10명 중 1명은 전국선거에서 매번 진보정치세력을 응원했다.

민주노동당이 유의미한 성적표를 낸 2002년부터 2022년까지 진보정당들이 획득한 지방선거 광역비례·국회의원선거 비례대표 지지율을 살펴봤더니 대부분 10% 이상을 기록했다.<그래프 참조> 통합진보당 해산 후 정의당·노동당·녹색당·민중연합당은 생채기를 안고 2016년 19대 총선에 뛰어들었다. 이 선거에서 이들 진보정당이 획득한 지지율이 9%다. 이때가 가장 낮은 기록이었다.

진보세력 내부갈등이 영향을 끼친 것은 지지율이 아니라 영향력이었다. 지방선거 당선 의석수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10%대의 고정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데도 진보정당의 지방정치 성적표는 널뛰기했다. 기초단체장·광역의회의원·기초의회의원 당선자수를 살펴봤더니 3대(2002년)에서 13명이었다. 기초의회의원 정당공천을 실시한 4대(2006년) 선거부터 당선자는 급격하게 늘어나 70명이 됐고, 5대(2010년) 선거에서는 196명을 배출했다. 6대(2014년)와 7대(2018년)는 각각 55명·48명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진보세력이 여러 갈래로 분열하며 표가 나뉜 결과로 볼 수 있다.<표 참조>

대선 지지율은 총선·지방선거 결과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3~6% 지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2002년 대선 당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와 김영규 사회당 후보의 합계 득표율은 3.99%였다. 2017년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김선동 민중연합당 후보는 합계 6.25%를 받았다. 총선과 대선의 결과 차이는 진보정치세력의 위상을 말해 준다. 집권을 통해 나라를 운영할 세력은 아니나 의미 있고 성장시켜야 할 대안세력으로 보는 지지층이 적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진보정당의 오늘 : 공고해진 양당체제
지지자 떠나고, 영·호남 1야당 자리도 넘겨줘

20년간 이어 온 진보정치 기반은 올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밑바닥을 드러냈다. 6월1일 치러진 9대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진보당·기본소득당·녹색당의 광역의원 비례대표 합산 전국 득표율은 5.72%다. 10% 안팎의 지지를 받았던 과거와 비교하면 반토막 수준이다. 정당득표율 5% 이상을 얻어야 당선되는 광역·기초 비례의원은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당선자는 2018년 48명에서 올해 30명으로 크게 줄었다. 정의당이 9명, 진보당은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을 비롯해 21명의 당선자를 냈다. 노동당과 녹색당은 각각 7명과 17명의 후보를 출마시켰지만 당선자를 한 명도 내지 못했다. 영남과 호남에서 제1야당이라던 그동안의 평가도 이번 지방선거로 더는 듣기 어렵게 됐다.

3월 대선 결과까지 놓고 보면 진보정당의 ‘오늘’은 더욱 암울하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2.37% 지지율에 그쳤다. 경쟁후보로 출마한 김재연 진보당 후보의 득표수는 3만7천여표에 그쳤다. 이당 전체 당원인 8만7천명, 당비를 내며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권리당원 4만1천명보다 적게 받았다. 당원들도 자기 당 후보를 외면했다는 의미다. 사회주의 대중정당으로 발돋움하겠다는 노동당은 이백윤 후보를 앞세웠지만 0.03% 득표에 머물렀다.

진보정당들은 대선과 지방선거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각 정당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외적·내적인 요인에서 공통된 평가를 내린다.

외부 요인으로는 양당체제 강화를 지목했다. 대선에 이어 곧바로 지방선거가 치러지면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초접전을 벌였던 선거 구도가 이어졌다는 얘기다. 양당체제 강화 속에서 국회가 승자독식 구도 해소를 완화할 방안으로 시범 도입한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개편은 진보정당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국회의원 선거구(기초의원 선거구 30곳)에서 선출인원을 3~5명으로 확대했고, 진보정당은 기초의원 선거구 17곳에 후보를 냈다. 광주 광산구다 선거구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 후보단일화를 하며 대응했다. 정의당 후보 11명, 진보당 후보 7명이 도전했다. 결과는 전체 당선자 정원 109명 중 4명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진보세력 활동기반이 약한 곳이어서 당선자를 내기 쉽지 않았다는 게 각 당의 평가다. 하지만 전체 기초의원 당선자 23명 중 3인 이상 선거구에서 당선된 후보가 21명이라는 점은 중대선거구제가 진보정당에 약이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 심상정 당시 정의당 대선후보가 지난 1월17일 오후 국회에서 선거운동을 재개하는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심 후보는 닷새 전인 1월12일 지지율이 5%를 넘지 못하자 선거운동을 중단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심상정 당시 정의당 대선후보가 지난 1월17일 오후 국회에서 선거운동을 재개하는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심 후보는 닷새 전인 1월12일 지지율이 5%를 넘지 못하자 선거운동을 중단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진보정당의 공통 고민 : 의미 있는 대안세력으로 기능하는가

외부에서만 원인을 찾지는 않는다. 진보정당들은 내부를 들여다보는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정의당은 지도부였던 선대위원회가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뒤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당 노선에 대한 대대적 토론을 예고했다. 비대위원으로 들어간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은 정의당 6명 의원에게까지 당 평가를 요청했다. 노동당은 지난 25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대선평가를 마무리했다. 다음달 중순까지 지역에서 지방선거 평가안이 올라오면 당 차원의 평가를 할 계획이다. 진보당은 자체 대선평가를 마무리하고 최근 지방선거 평가에 착수했다.

각 당은 대안세력으로서 기능하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진단했다. 장석준 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정의당이 ‘민주당 2중대’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그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집중했던 모습과 검찰 수사권 조정안, 소위 ‘검수완박’ 입법 논의에서 보인 모습은 민주당 2중대 모습을 각인시켰다”며 “정의당은 자기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데 별 의미가 없는, 매력 없는 정당이 됐다”고 지적했다. 정태흥 진보당 정책기획위원장은 “양당체제가 강화하는 조건에서 진보가 대안세력으로서 자기 전망을 못 보여주면서, 노동쪽에 있는 핵심 사람들이 진보를 대안과 희망으로 보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장혜경 노동당 집행위원장은 “사회주의 대중정당 노선은 다수 대중에게 선택을 못 받겠지만 급진적 대중층에게는 지지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라며 “노동운동·사회운동·지역운동에서의 역량과 기반이 부족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진보정당의 선택지 : 대선 ‘폭망’ 후 지선서 후보단일화

진보정당은 대선을 앞두고 약진 혹은 존속을 위해 민주노총과 함께했다. 민주노총은 단일후보를 배타적으로 지지하겠다는 당근을 들고 진보정당을 견인하고자 했다. 민주노총이 배타적 지지 방침을 언급한 것은 2012년 이후 처음이다.

조합원의 관심을 진보정당으로 향하게 만들려던 계획은 후보단일화 무산으로 성사하지 못했다. 민주노총이 주최한 진보정당 대통령 후보자 초청토론회에 심상정 후보가 불참한 모습은 상징적 사건으로 기억된다. 정의당은 진보정당 후보 간 경쟁하는 토론회는 부적절하다며 불참 이유를 밝혔지만, 민주노총과 거리를 두려는 것이라는 지적이 노동계에서 이어졌다.

참담한 대선 결과는 지방선거에 임하는 진보정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대선후보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아이디어 수준으로 언급되던 지방선거 후보단일화 논의가 본격화했다. 광주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진보단일후보로 대응했다. 장현술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장은 “지지정당별로 노조 내에서 갈등하지 않고 연대하는 모습을 참으로 오랜만에 목격한 선거였다”며 “진보후보단일화가 없었다면 지역 당선자수는 더 줄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방선거에서 보여준 약한 연대가 2년 뒤 22대 총선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정의당은 재창당에 준하는 내부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진보정당 연대 방안을 어떻게 결론지을지는 아직 윤곽이 잡히지 않는다.

진보당은 민주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가시화하면 동참해야 한다는 데에 내부 의견이 모이고 있다. 당면한 총선에서는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의 지방정치 성과를 바탕으로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배출한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정태흥 정책기획위원장은 “(제3세력이 없는) 미국식 양당체제를 바라지 않는다면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 민주노총이 역할을 해야 한다”며 “논의 과정에서 진보정당이 함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고 그러면 진보당은 열린 자세로 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당의 고민은 약간 비껴나 있다. 사회주의 대중정당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알리고 지지세력을 규합하는 ‘깃발정당’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시급한 과제로 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대선에서 득표 목표치도 정하지 않았다. 지방선거에서는 지역 기반을 마련한다는 데에 의미를 뒀다. 장혜경 집행위원장은 “현실적으로는 총선에서 가능한 지역에서 연대하고, 대중의 머리에 남기는 정책을 개발하고 이슈화하는 운동을 펼치는 수준일 것”이라며 “불안정 노동자를 당으로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 기존 노동자를 사회주의 운동에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에 관심이 있지만 구체적인 총선 준비 계획까지 고민을 연결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 2022 전국동시지방선거 울산 동구청장 진보단일후보로 나선 김종훈 당시 진보당 후보가 공식선거운동 첫날인 지난 5월19일 울산 동구 남목시장 앞에서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2022 전국동시지방선거 울산 동구청장 진보단일후보로 나선 김종훈 당시 진보당 후보가 공식선거운동 첫날인 지난 5월19일 울산 동구 남목시장 앞에서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진보정당의 단일화 방안 : “민주노총과 손잡아야”

진보정당 위기를 바라보는 민주노총은 역할을 찾고 있다. 대선·지방선거 평가 작업을 지역별로 진행하고 있다. 다음달 20일께 선거를 평가하는 전국순회 토론회를 시작한다. 토론회에서 민주노총 확대간부가 참여한 정치의식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고민을 나눈다. 26일 현재 2천700여명이 설문에 동참했다. 3천명 이상의 표본을 분석한다. 민주노총의 오늘날 모습을 정확히 진단하고 정치세력화와 총선 대응에 대한 솔직한 얘기를 공유하겠다는 목표다.

장현술 대외협력실장은 “이대로 2024년을 맞이하면 진보정치에 희망이 있는지 질문하고,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지 조합원들끼리 속 시원하게 얘기해 보려 한다”며 “민주노총의 정리된 의견을 들고 각 진보정당들과 머리를 맞대고, 가능하다면 연대를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노총이 구심점이 돼야 한다는 요구와 의견도 나온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산업사회학)는 “진보정당은 민주노총이 여러 문제가 있을 때 비판적 입장에서 개입해 운동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노총은 그런 제언을 할 사람이나 세력이 없어 망가지고, 일부 진보정당은 민주노총은 안 된다고 거리를 뒀지만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며 “둘 다 살아나기 위해서는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임세웅·제정남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