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전국동시지방선거 울산 동구청장 진보단일후보로 나선 김종훈 후보가 공식선거운동 첫날인 19일 울산 동구 문현사거리에서 퇴근길 노동자들에 인사를 하고 있다.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함께 했다. <정기훈 기자>

6·1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지난 19일 오전 6시30분,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전하문 앞 오지벌 사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진보당을 상징하는 주황색 옷을 입은 사람들과 남색 금속노조 조끼를 입은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이다. 20여명은 전하문 인근에, 80여명은 전하문으로 곧장 통하는 전하로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왕복 2차선 전하로는 회색 작업복을 입고 다종다기한 스쿠터를 타고 출근하는 노동자들로 가득했다. 주황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빨강색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노동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20대로 보이는 청년은 스쿠터 사이를 돌아다니며 명함을 돌리기도 했다.

오전 7시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후보가 유세차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동구에 3만4천명 노동자들이 쫓겨날 때 그 어디에 나라가, 행정이 있었습니까? 우리는 노동자의 삶을 지키고 땀 흘리는 주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출마했습니다!” 뒤이어 정병천 현대중공업지부장과 정동석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장이 지지연설을 이어 갔다. “노동자가 결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의 목소리 내보내 줄 수 있는 진보정당 후보를 선택해 노동자의 삶을 바꿉시다!”

울산 동구는 현대중공업 본사와 현대미포조선이 위치한 노동자 도시다. 김종훈 후보는 2011년 동구청장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해 동구청장이 됐다. 이후 동구청장은 2014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2018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됐다. 이 기간인 2015~2018년 현대중공업은 하청업체 노동자를 포함해 3만여명을 해고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낸 김종훈 후보는 이 문제를 국회에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울산 동구에서는 2020년 현대중공업 계열사 현대기계건설의 사내하청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이 사내하청지회에 가입한 뒤 문제제기를 이어 가자 2020년 7월 회사가 폐업하며 노동자 60여명이 해고됐다. 노조탄압 의혹이 일었다. 하청업체 노동자 산재가 끊이지 않는 문제도 심각하다.

진보당·국민의힘 박빙대결 … 노동자 표심은?

울산 동구청장 선거는 김종훈 진보당 후보가 천기옥 국민의힘 후보를 오차범위 내에서 격차를 좁히며 뒤쫒는 그림이다. 지난 21일 정천석 더불어민주당 후보 사퇴로 인한 영향을 반영하기 전 조사인데도 13~14일 경상일보(리얼미터 수행) 조사에서는 1·2위 후보 간 격차가 5.1%포인트, 16~17일 UBC 울산방송(한국갤럽 수행) 조사에서는 4.1%포인트를 기록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박빙의 승부지만 지역 노동자 표심은 김종훈 후보에게 기우는 모양새다. 김종훈 후보쪽은 노동정치를 하는 정치인이라는 인식이 노동자들에게 자리 잡고 있다고 기대감을 전했다. 노동자들 지지세는 금세 확인됐다.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동자 김경수(38)씨는 “힘없는 분들을 대변하고, 동구 구민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국회에 이야기했던 분이니 김종훈 후보가 적격”이라며 “노동자의 표심은 그쪽으로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전하문 앞에서 팻말을 들고 유세하던 자원봉사자들에게 목례를 하고 인근 카페로 향하던 김광규(60)씨는 “38년간 현대중공업을 다니다 은퇴했다”며 “현대중공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노동자를 대변해 일해 온 김종훈 후보를 좋아한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자신을 보수로 자처하면서도 동구청장 선거에서만큼은 김종훈 후보를 지지한다는 주민도 있었다. 남목전통시장에서 김종훈 후보 유세를 지켜보던 안윤식(70)씨는 “나는 국민의힘 지지자라 지방선거 모두 국민의힘을 찍을 거지만 동구청장만큼은 김종훈 후보를 찍을 것”이라고 밝혔다. 45년간 울산동구 남목전통시장에서 이발소를 운영했다는 그는 “후보들 중 가장 소탈하고 욕심 없는 사람이고, 국회의원일 때는 몰랐지만 동구청장 때는 일도 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벽은 여전히 두텁다. 이름을 밝힐 수 없다는 개인택시 운전자 김아무개씨는 “천기옥 후보가 매일 아침 길거리에 나와서 인사하고 교통정리를 하는데, 다른 사람들 이름은 몰라도 천기옥 이름은 안다”며 “구의원부터 시의원까지 차례대로 올라왔는데 구청장을 한 번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는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야 김종훈 후보일지 몰라도, 일반 주민들은 천기옥을 보면 다 좋아한다”며 “지역민들과 친하고 이야기를 잘 듣는 게 또 구청장 역할”이라고 했다.

출정식이 끝나고, 출근시간이 지나 한산해진 전하로에서 만난 박용대(70)씨는 스스로 국민의힘 지지자라고 밝히면서 뜻밖의 말을 했다. 울산동구청 공공근로를 한다는 그는 “나는 대통령이랑 손발을 맞춰서 울산 정치가 돌아가도록 천기옥 후보가 되길 바라는데, 현대중공업에서 도장 업무를 하는 아들하고는 이야기가 전혀 안 된다”며 “노동하는 사람들과는 아무리 이야기해 봐도 사상적으로 맞지가 않더라”며 웃었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곧 떠날 건데…
관심 없는 청년 하청노동자들

청년노동자들은 지방선거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전하문까지 걸어서 출근하던 청년노동자 4명에게 잇따라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열지 않았다. 현대중공업 밖에 위치한 사내하청지회 사무실을 찾아서야 이유를 유추할 수 있었다.

변주현(28) 지회 선전편집부장은 “사실 저도 지금 같은 일(해고)을 당하지 않았으면 지방선거에, 진보당에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현대중공업 계열사 현대기계건설의 사내하청 서진이엔지에서 여성 용접공으로 일하다 2020년 7월 회사가 폐업하며 해고됐다. 아직까지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천막을 치고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사내하청으로 들어오는 젊은 사람들은 대학 가기 전이나 군대를 전역한 사람들이 잠깐 있다 돈만 벌고 나가는 아르바이트로 생각해 지역 정치나 근무환경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변 부장은 전했다. 그는 “실제로 다 쓰러져 가는 연립주택을 기숙사라고 하며 두세 명씩 몰아넣고, 임금산출내역도 없이 임금을 지급하는데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며 “나 역시 그랬다”고 했다.

김종훈 후보는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를 보호하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사내하청지회와 함께 주민 4천26명의 동의로 울산 동구 하청노동자 지원 조례안을 내놓았다. 계약 형식에 관계없이 지역 거주 모든 하청노동자의 기본 권리와 노동 여건 개선을 구청장 책무로 규정한 내용이다. 5년마다 동구 하청노동자 노동환경 개선사업, 산재 예방 등 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게 했다.

기업별 노조로 조직된 현대미포조선 노동자
유세 자연스레 참여해도 “설득에 더 힘써야”

울산 동구 문현삼거리는 오후 5시부터 현대미포조선 노동자들이 퇴근하는 모습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왕복 4차선 도로와 6차선 너비의 도로가 만나는 문현삼거리에서는 현대미포포조선 5시 퇴근조, 5시30분 퇴근조, 6시 퇴근조가 퇴근하며 만들어 내는 1시간 가량의 퇴근 행렬을 볼 수 있다. 김종훈 후보는 이곳을 퇴근길 유세장소로 택하고 6차선 너비 도로 위 안전지대에 유세차량을 세웠다. 퇴근 행렬을 향해 손을 흔들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100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4차선에 한 팔 간격으로 떨어져 김종훈 후보 지지 팻말을 들었다. 채 2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천기옥 후보쪽도 선거운동을 했다.

진보당은 현대미포조선 노동자 지지를 얻는 데 더 힘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태복 김종훈 선본 수행팀장은 “현대중공업은 민주노총 산하에 있어 노동정치의 필요성을 교육받고,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접하기가 쉽지만 현대미포조선은 기업별노조라 노동정치에 적게 노출되는 특징이 있어 노동자 설득에 좀 더 힘쓸 필요가 있다”며 “정책협약식을 통해 지지를 조금씩 이끌어 내고, 현대미포조선이 임금·단체교섭을 하며 정치적인 힘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끼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회색 작업복을 입고 검정 워커를 신은 채 스쿠터를 타고 퇴근하던 현대미포조선 노동자 세 명이 인근에 스쿠터를 주차하고는 유세에 합류했다. 주황색 옷을 입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퇴근길 노동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13년 동안 현대미포조선에서 일했다는 40대 여성노동자 A씨는 “정천석 동구청장이 구청장을 하는 동안 바뀐 게 없다”며 “현대중공업 대량해고가 발생할 때 아무것도 안 했고,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김종훈 후보가 동구청장으로 일할 당시에도 일 잘하는 후보로 소문이 나 있었고, 노동자들을 위해 일했다”고 전했다.

▲ 2022 전국동시지방선거 울산 동구청장 진보단일후보로 나선 김종훈 후보가 공식선거운동 첫날인 19일 울산 동구 남목시장 앞에서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2022 전국동시지방선거 울산 동구청장 진보단일후보로 나선 김종훈 후보가 공식선거운동 첫날인 19일 울산 동구 남목시장 앞에서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백발의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도 유세 지원
“진보정치 거점 울산 동구·북구에서 진보대통합 싹틔우자”

퇴근길 인사에는 백발이 성성한 권영길(80)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함께했다. 그는 김종훈 후보 옆에 서서 함께 퇴근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손을 흔들었다. 권 전 대표는 울산에서 3박4일 동안 선거운동을 했다.

권 전 대표는 “구청장 한 사람의 당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분열돼 있던 진보정당이 성찰을 통해 단일후보를 만들어 나타났다”며 “분열을 극복하지 않으면 앞길이 없는데 진보적 민주정당을 건설하고, 전국으로 확산시켰던 거점 울산 동구와 북구에서 진보대통합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노동자들은 노동자 출신 구청장들이 현대중공업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동자인 최준호(38)씨는 “노동자 힘만으로는 회사가 움직이지 않을 때 구청이 정치적으로, 행정적으로 힘을 보태 준다면 회사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며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이 직접고용돼 복직한다면 협력업체 사람들도 눈앞에 드러난 정치적 영향력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변화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동구청장 선거 구도는?
‘친노동 구청장’ 대 ‘윤석열 원팀’ … 사퇴한 민주당 16% 지지 어디로

울산 동구청장 선거는 김종훈 진보당 후보와 천기옥 국민의힘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

경상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13~14일 울산 동구 거주 만 18세 남녀 504명을 대상으로 지지후보를 조사한 결과 천기옥 국민의힘 후보는 36.8%, 김종훈 후보는 31.5%, 현직 구청장인 정천석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2.4%를 기록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였다. 5.3%포인트 차 접점이다.

최근 여론조사는 4.1%포인트로 격차가 좁혀졌다. UBC 울산방송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16~17일 실시한 2차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구는 천 후보 38.4%, 김 후보 34.3%를 기록했다. 정 후보는 16.4%로 3위에 머물렀다.

그런데 정 후보가 사퇴하면서 판이 흔들렸다. 정 후보는 2019년 7월 동구 한 식당에서 구민 2명을 포함한 울산 지역 정당 원로들에게 술값을 제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 20일 울산지법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고 21일 사퇴했다. 당선무효형은 아니지만 당원과 주민에게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이유다. 그는 기자들에게 “단일화 이전 신뢰 관계에 오랜 앙금이 있다”며 “단일화에 손을 들어줄 의사는 절대 없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정치성향은 보수가 10.4%, 중도가 14%, 진보가 26.2%, 모름·응답거절이 17.0%였다. 보수보다 중도와 진보성향이 더 높다. 정 후보를 지지하는 진보성향 표가 김 후보로 몰리면 격차를 뛰어넘는 ‘골든 크로스’가 발생할 수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동구청장 선거는 지역에서 일해 온 지역일꾼을 뽑고 여당을 밀어 줘야 한다는 국민의힘과 노동자 정치를 강조하는 진보정당 간 대결구도를 보이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지난 22일 오후 울산 동구 일산해수욕장을 찾아 “이번 우리 국민의힘은 울산 동구에서 지역 주민과 밀착해서 구의원 때부터 시의원까지 열심히 봉사했던 천기옥 후보를 공천했다”며 “김두겸 울산시장 후보와 우리 천기옥 후보가 손을 맞잡고 울산과 동구의 발전을 위해 뛸 것이다. 같이 당선시켜 달라”고 강조했다. 천기옥 후보는 2002년부터 2010년(3·4대)까지 울산동구의원으로, 2014년부터 2022년(6·7대)까지 울산시의원으로 일했다. 별명이 ‘맏며느리’다.

김종훈 진보당 후보는 민주노총의 공식 지지후보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갑용 전 노동당 예비후보와 단일화를 이뤄 내며 전국에 정의당·진보당·노동당·녹색당의 후보단일화 확산의 시발점이 됐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와 현대미포조선노조 조합원들이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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