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지난해 4월 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잠수함에서 동료의 끼임사고를 목격한 노아무개(40)씨는 그날 이후로 편히 잠든 날이 없다. 잠들기 직전이면 사고 상황이 머릿속에 재생되며 심장이 쿵쾅거렸다. 고통의 화살은 가족들에게 향했다. ‘그러지 말아야지’ 속으로 되새겨도 자꾸만 날카로워졌다. 결국 가족들과 잠시 떨어져 있기로 했다. 1년5개월이 흘렀지만 노씨의 시간은 여전히 사고 당일에 멈춰 있다. 노씨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고 산재로 인정받은 뒤 현재까지 통원치료를 진행 중이다.

고통이 나아질 만하면 수사당국에서 조사를 받으라는 통보가 왔다. 서류가 집으로 올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소환됐다. 사고 직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받던 노씨는 경찰조사 과정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됐다. 난생처음 받는 조사에 경황은 없고 잠 못 드는 날들은 깊어만 갔다.

“괜찮아지려고 하면 검찰에서 조사에 나와야 한다고 그러지, 사람 기억이 쉽게 잊히지도 않고 옅어지지도 않고…. (현장에는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개인에게 책임을 돌린다고 하면 어느 누가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할까요.”

노씨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돼 이달 27일 첫 공판을 앞두고 있다. 중대재해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떠넘겨 구조적 문제를 감추려 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사고 당일 신호수 업무 처음 맡아

지난해 4월16일 오후 6시10분께 현대중공업 특수선 수중함 셸터(엄폐시설) 작업장에서 잠수함 어뢰발사관 도어(외부문) 조정작업을 하던 김아무개(사고당시 45세)씨가 갑자기 닫힌 외판문에 머리가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김씨는 사경을 헤매다 11일 뒤에 숨졌다.

어뢰발사관에는 전면부에 설치된 외부문과 잠수함 외벽에 설치된 외판문(어뢰가 나오는 출구), 2개의 문이 일직선상으로 설치돼 있다. 두 개의 문은 서로 연결돼 있어 동시에 여닫히는데 작업자가 외부문·외판문 사이에 있는 경우 양쪽 문이 닫힐 때 피하기 어려운 좁은 구조다.

사고 당시 김씨와 같은 구역에서 일한 노씨는 또 다른 작업자에게 외부문을 닫으라고 무전기로 알리는 신호수 역할을 했다. 조정작업을 하는 김씨와 신호수 노씨, 다른 구역(함내)에서 외부문을 여닫는 역할을 한 작업자는 서로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 노씨가 미처 김씨의 위치를 확인하지 못한 채 문을 닫으라고 신호를 보내 작업자가 문을 닫으면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노씨가 울산지법에서 받은 피고인 소환장에는 “도어 작동 신호에 앞서 근로자의 위치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과실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명시돼 있다.

문제는 노씨가 해당 업무에 처음 투입됐다는 점이다. 원래 기계장비 설치업무를 하던 노씨는 그날 팀장 명령에 따라 사고 당일 오전 갑자기 신호수 업무에 투입돼 위험작업에 대한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다. 원래 오후 5시에 퇴근하기로 돼 있던 노씨와 고인은 퇴근 20분 전인 오후 4시40분께 연장근로를 하게 됐다. 노씨는 “급하게 검사를 진행해야 되니까 (팀장이) 연장 작업을 하라고 했다”며 “동료들 가운데 경험이 있는 분이 ‘조심해야 한다’고 말로 설명하는 정도(가 교육의 전부였다)”라고 말했다.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채 위험작업을 진행한 점도 문제다. 동시에 여닫히는 외부문과 외판문의 연동을 해제한 상태에서만 작업을 했어도 중대재해로 이어지는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 생산일정을 맞추기 위해 안전교육도 없이 미숙련 인력을 투입한 뒤 안전조치도 취하지 않고 무리하게 작업지시를 내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작동해제도 안 하고, 작업지시서에 끼임위험 언급 없어

이런 문제는 재해조사의견서에도 명시돼 있다. 사고발생에 대한 조사자 종합의견으로 “링크부위 핀 제거시 연동이 해제되고 외판문 고정상태로 외부문만 작동되게 해 안전이 향상될 수 있으나 근원적인 안전조치 이행이 미흡했다”고 기재돼 있다. 또한 “표준작업지도서에는 해당작업이 누락돼 있고, 안전작업계획서·작업지시서에도 도어 끼임 위험은 언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사고 이후 관리자들이 작업지시서와 표준작업지도서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노씨와 함께 기소된 관리자 직급은 2명이다. 특수선사업부 본부장(부사장) A씨와 현장의 생산과장 B씨다. 두 피고인은 “해당작업의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지 않고, 작업방법에 관한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았으며, 외부문·외판문 연동자치를 해제하는 등의 방호조치를 취하지 않은 과실”로 인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현대중공업지부는 끼임사고에 대한 안전조치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한영석 대표이사를 고발했지만 지난 6월 울산지검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노씨에게 이번 사고의 책임을 묻는 게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중대재해가 다발하는 현대중공업 같은 사업장에선 누군가의 과실 하나로 사고가 발생한다기보다 과실이 중대재해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는 지적이다.

강태선 세명대 교수(보건안전공학과)는 “기계 작동으로 인해 손상을 입을 수 있는 위치에서 작업을 할 경우 작업을 하는 당사자가 스위치를 온·오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LOTO(Lock out, Tag out) 원칙이 있다”며 “표준작업절차서에 LOTO 원칙과 관련한 절차가 마련돼 있었는지, 있었다면 제대로 절차를 수행했는지 여부를 총체적으로 살펴야 재발방지 대책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실치사죄를 편의적으로 적용하는 ‘관행’이 사건의 책임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고의성을 전제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보다 업무상과실치사로 기소하는 게 쉬운 측면이 있다”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은 구체적으로 해당되는 의무를 찾아 법상 규칙이 있는지 매칭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구조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고 영향을 미치는 권한이 있는 자가 아닌 숙련되지 않은 업무에 투입된 사람에게 사망의 책임을 묻는 게 과연 적절한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오히려 ‘진짜 원인’이 되는 구조적 문제를 간과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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