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울산본부

현대중공업에서 2019년부터 2020년 사이 발생한 중대재해 4건과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원·하청 안전책임자들에게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선고됐다. 노동부 감독결과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기소된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도 벌금형에 그쳤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형량이 지나치게 낮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원·하청 관계자들 검찰 구형보다도 낮은 형량

울산지법 형사3단독 노서영 부장판사는 6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현대중공업 사업부대표 2명과 하청업체 대표 3명에 징역 6~10개월, 집행유예 1~2년을 선고했다. 원·하청 관계자에는 벌금 300만~700만원을 선고했고, 현대중공업 법인과 하청업체 2곳에는 각각 벌금 5천만원, 700만원을 선고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는 벌금 2천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번 선고는 2019년부터 2020년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4건의 사망사고에 대한 것이다. 2019년 9월 해양플랜트사업부에선 60대 하청노동자가 석유저장탱크에 장착된 임시경판(18톤)을 해체하는 가우징 작업(용접된 부위를 녹여 절단하는 작업)을 하다 경판에 깔려 숨졌다.

이듬해 2월에는 LNG선 트러스(작업용 발판 구조물) 작업장에서 또 다른 60대 하청노동자가 조립작업을 하다 17미터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같은해 4·5월에도 각각 특수선 작업장에서 무장발사관 도어 정렬 작업을 하던 정규직 노동자가 문에 끼여 숨졌고, LNG 선박 상갑판에서 용접·취부작업을 하던 30대 하청노동자가 아르곤가스에 질식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8개월 새 4명의 원·하청 노동자가 숨진 것이다.

검찰은 받침대나 추락방호망을 설치하지 않은 점, 위험성평가를 실시하지 않고 작업계획서도 작성하지 않은 점, 밀폐공간 작업 전 위험성 여부를 진단하지 않은 점 등을 사고의 원인으로 보고 기소했다. 노동부는 정기·특별근로감독을 벌여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 1천136건을 적발했다.

법원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모두 유죄로 판단했지만 △중대재해 발생 후 대책을 마련하고 개선조치를 했다는 점 △유족과 합의하고 유족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점 등을 감안해 검찰 구형에 비해 낮은 형량을 선고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울산본부와 ‘중대재해 없는 세상만들기 울산운동본부’는 이날 선고 직후 울산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범죄 전력이 3회 있으면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기소된 한영석 대표이사에 대한 책임을 면해 준 것”이라며 “또한 현대중공업 중대재해의 구조적인 원인으로 지목된 위험의 외주화,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 대해 침묵하고 원청 책임을 묻지 않은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 감안해도 너무 낮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지나치게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미향 울산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과 비교해도 형량이 낮은 편이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중대재해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는데 이러한 부분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데 긍정적인 흐름이 역행할 수 있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하려는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고 우려했다.

안전관리책임자가 아닌 현장 동료에게 책임을 떠넘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수선 사고에서 신호수 역할을 했던 노아무개씨에 대해 법원은 검찰 구형 그대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본지 2023년 7월5일자 2면 “[목격자에서 피고인으로] 산재사망 피해자 동료, 3년간 PTSD” 참조> 해당 사고와 관련해 특수선사업부 생산부장이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것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다. 생산부장의 경우 오히려 검찰 구형 700만원보다 벌금이 깎였다.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큰 문제의식 없이 해 오던 대로 중대재해 사건에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동료 노동자를 처벌하는 관행적 판결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애초에 대표이사를 기소하지 않은 점도 문제”라며 “현대중공업은 중대재해에 대해 각 사업부 임원에게 책임을 지우고 감독 결과는 법인 대표가 책임진다는 내부 기준이 있는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전략으로도 볼 수 있는 기준을 검찰이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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