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3년 전 기억을 계속 떠올려야 해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냥 빨리 이 상황이 끝났으면 좋겠어요.”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다 동료의 끼임사고를 목격한 뒤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노아무개(42)씨는 4일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고 이후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던 그는, 동료의 위치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도어 작동 신호를 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다. 노씨는 수사·재판 과정에서 사고 당시 기억을 반복해서 떠올려야 했다. 동료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다. 노씨는 여전히 그날의 기억에 갇혀 있다. 작은 소리에 예민해지고,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다. 사고 발생 이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약을 복용하고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 3년간) 하나부터 열까지 (기억을) 다 꺼내야 하고, 전후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상황이 반복됐어요. 재판이 끝나야 치료에 집중할 텐데 당장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답답하네요.” 6일 선고공판을 앞둔 노씨는 착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생산 일정 맞추려 안전조치 없이 작업 강행

2020년 4월 현대중공업 특수선 수중함 셸터(엄폐시설) 작업장에서 잠수함 어뢰발사관 도어(외부문) 조정작업을 하던 김아무개(사망 당시 45세)씨가 갑자기 닫힌 외판문에 머리가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노씨를 비롯한 동료 3명은 사고 직후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피를 흘리는 김씨를 사고 지점에서 잠수함 바깥으로 옮겼다. 그런데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조사를 받던 노씨는 해당 사고에 대한 책임이 있다며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돼 그해 7월 검찰에 송치됐다. 노씨를 포함해 구조작업을 했던 동료들은 PTSD 진단을 받고 근로복지공단에서 같은해 9월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노씨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돼 2021년 9월 법정에 서게 됐다.

애초에 중대재해가 발생한 원인을 살펴보면 노씨에게 해당 사고의 책임을 묻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 재해 이후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재해조사, 안전보건진단 과정에서는 끼임사고를 방지할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을 주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동시에 여닫히는 구조인 외판문-외부문 연결 부위의 핀을 제거하면 연동을 해제할 수 있다. 이를 해제하고 도어 정렬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러한 조치 없이 작업을 강행한 것이다.

사건 당일 같이 작업한 조장의 진술서를 보면 “사고 위험성 때문에 연동장치 해제를 요청했지만 (중략) 검사기한이 촉박해 작업을 강행”했다고 적시돼 있다. 원래 기계장비 설치업무를 하던 노씨는 당일 팀장 명령에 따라 갑자기 신호수 업무에 투입됐고 위험작업에 대한 안전교육도 받지 못했다.

재판 과정에서 위험성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도 드러났다. 표준작업지도서에 해당 작업에 대한 내용이 누락돼 있고, 관리감독자가 작업 전 전달하는 작업지시서에도 도어 개폐시 협착 위험과 관련한 주의사항은 없었다. 2020년 7월 현대중공업 안전경영실이 작성한 ‘19년 이후 사업장내 중대재해 재발방지 대책 이행 결과’를 보면 사측도 이러한 점을 사고 원인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와 관련한 재발방지대책 이행 현황으로 △외부문·외판문 사이 링크 해제 및 LOCK 설치 △안전작업 방법 표준작업지도서 명시 등을 적시했다. 재해가 발생한 작업에 위험성평가를 반영해 표준작업지도서와 안전지침서를 새로 제정하기도 했다.

사고 6개월 전 노조가 문제 지적했지만…

사고 발생 6개월 전인 2019년 10월 노조가 이러한 점을 문제로 지적했지만 제도 개선은 바로 이뤄지지 않은 점도 확인됐다. 당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표준작업지도서가 없는 공정은 작업을 중지해 즉각 제정하고 노사검토 후 잘못된 표준작업지도서는 안전한 작업방법으로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노씨 법률대리인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이 사건은 명백히 사업주가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서 발생한 사건”이라며 “개별 노동자는 사업주가 형성한 안전보건관리 체계 안에서 본인이 부여받은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공정의 위험을 인지할 수 없었던 개인이 조심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재발방지를 위한 사회적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센터장(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은 “(수사·재판 과정은) 원치 않는 상황에서 사고 당시를 떠올리게 하고, 죄책감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PTSD 증상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한 개인을 처벌한다고 했을 때 사회적으로 얻는 예방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박다혜 변호사도 “재해의 원인과 배경을 제대로 짚어내는 게 중요한데 재해 발생의 가장 마지막 행위를 처벌하는 방식으로 사건 처리가 이뤄진다면 재발방지와 재해예방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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