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일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졸업생들이 학위가운을 입고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정기훈 기자>

“공사잖아요.”

최근 잇따라 일었던 채용 공정성 논란 속 청년들의 공분이 무엇에서 비롯됐을까 물었더니 김진(30·가명)씨의 대답은 막힘이 없었다. 2016년 한 스타트업에 일찌감치 둥지를 튼 그는 “공사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며 “공모전·자격증·NCS(직무능력표준)를 준비하는데, 노력을 많이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친구들이 공사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을 투입하는 과정이 수반되지 않아 불공정하다는 말이었다.

지난해 6월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를 시작으로 채용 공정성 시비가 계속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민간위탁업체에 소속돼 일한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 900여명은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21일로 21일째 파업을 하고 있지만,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다. 4년째 국민건강보험공단 입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한 청원인은 지난달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고객센터 직원의 직접고용을 막아 달라는 취지로 글을 올렸다. 공단 정규직 직원들도 직접고용에 반대하면서 ‘제2 인국공 사태’라는 딱지를 붙였다. 경상남도교육청은 지난해 12월 방과후 자원봉사자 348명을 공무직으로 전환하려 했지만, 채용공정성 시비가 일자 전환을 잠정중단해야 했다. 교육청 공무직을 준비하고 있는 시민이라고 밝힌 청원인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논란이 확대 재생산하면서다. 서울교통공사 정규직 직원 중 일부도 최근 고객센터 노동자 35명을 직접고용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이들은 ‘청년’이란 단어로 함축된다. 21일 <매일노동뉴스>가 ‘공정’에 관한 청년들의 생각을 들어 봤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해 공기업과 대기업처럼 양질의 일자리를 찾으려 노력한 청년들의 목소리는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노력의 결과를 뒤집어 버리는 것으로 역차별”이란 말로 모아졌다.

“110곳 넣고 합격했어요”

A공기업에서 일하는 하성진(32·가명)씨는 “비정규직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위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알바 혹은 계약직으로 들어온 뒤 공채랑 동일하게 대우하는 것은 공채처럼 정식 절차를 밟고 입사한 사람과 비교해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청소·시설관리 직군처럼 공채 출신 사무직군과 구분된 직무형태로 차등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전제로 고객센터 노동자의 직접고용은 가능하다고 봤다.

그는 2016년 12월 ‘취뽀(취업 뽀(빠)개기)’에 성공했다. 수도권에 위치한 대학에 재학 중이던 하씨는 취업준비 과정에서 학벌상 불이익을 받을까 편입을 했다. 졸업 한 해를 앞두고는 인턴에 지원해 두 차례 경험을 갖췄다. 그런 그가 공기업에 합격하기 전까지 입사지원한 회사는 110곳이다. 그는 “20대가 지나면 취업하기 힘들어질 것 같아서 불안감이 컸다”며 “수도권에서 근무하고, 연봉이 일정 수준을 충족하면 닥치는 대로 원서를 넣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그는 스물아홉 살이었다. 2016년은 대졸 신입사원 입사 평균 연령이 31.2세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25.1세였던 입사 평균 연령이 처음으로 30대에 진입했던 해다.

8급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연하(32·가명)씨는 “비정규직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공채 입사자를 뽑기 위해 회사가 (입사 지원자에게) 요구한 노력의 정도는 비정규직과 달랐다”며 “노력해 얻어 냈는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절차의 공정성을 저버리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김연하씨는 2014년 가을 대학을 졸업했다. 2016년 9급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었다. 김씨는 “졸업과 동시에 중소기업인 영화 마케팅회사에 입사했는데 낮은 연봉에도 잦은 회식, 야근이 반복되면서 퇴사 후 재취업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9급 공무원시험을 선택했다. “다시 대학교를 들어가지 않는 한 학벌·학점·대외활동 같은 스펙은 채울 수 없잖아요. 앞으로 노력에 따라 합격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기로 했어요.” 이유는 간명했다. 그는 1년6개월 만에 시험에 합격했고 현재 한 초등학교에서 교육행정직 8급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대학 진학부터 취업까지 무한경쟁, 강화하는 ‘능력주의’
대학·첫 직장이 앞으로의 삶을 결정한다는 믿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노력의 결과를 뒤집어 버리는 것으로 역차별”이라는 청년들의 인식은 대다수가 유사한 삶의 궤적을 걸어온 결과다.

청년들은 대학 진학을 목표로 초·중·고 12년의 시간을 보낸다. 우리나라 의무교육과정은 중학교까지지만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20년 중학교 졸업자 중 99%(44만4천42명)는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고등학교에서 대학 진학 비율은 72.5%다. 조기 취업을 목표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은 특수목적고등학교(58.1%)와 특성화고(44.8%)를 제외한 일반고·자율고 대학진학률은 76.85%로 오른다. 고등학생 4명 중 3명은 대학에 진학한다는 의미다.

대학 진학 후에는 양질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 경쟁한다. “대학이 앞으로의 삶을 결정한다”고 주입받고 대학 입시에 열을 올리던 청년들이 “첫 직장이 앞으로의 삶을 결정한다”는 믿음을 갖고 어학성적·학점·공모전·인턴 등 스펙 쌓기에 끊임없이 몰두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0월 전국 4년제 대학 재학생과 졸업생 4천158명을 대상으로 한 ‘2020년 대학생 취업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취업 희망기관은 ‘공기업(21.5%)-대기업(16.8%)-공무원(16.8%)-중견기업(15.6%)-중소기업(11.8%)’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선호하는 일자리를 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지난해 12월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2019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8월과 2019년 2월 졸업자수는 55만명이다. 입사 희망 기업의 채용규모는 바늘구멍이다. 잡코리아는 2020년 공기업·준정부기관·기타공공기관 채용 규모는 2만5천777명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2020년 국가직·지방직 공무원 채용규모는 3만8천202명에 불과하다. 2020년 구직 중일 확률이 높은 고등교육기관 졸업자가 55만명임을 감안하면 6.5%만 구멍을 통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취업에 실패해 장기 구직 중인 실업자들을 감안하면 선호하는 일자리에 안착할 확률은 더욱 적어진다. 상장사 530개의 2020년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채용 규모는 3만1천173개였다(인쿠르트). 희망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크다.

“정규직 전환 반대” 빗나간 분노

청년의 분노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이 생산적인 논의로 이어지기 어렵게 한다. 정부는 모범사용자 역할을 할 공공부문이 차별을 해소하고 처우를 개선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 민간부문에도 확산하길 원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 문제를 풀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같은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려 기대했다. 그런데 전환 정책은 첫 단추부터 꼬였다. 분노는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된 비정규직을 향한다.

지난해 6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보안검색 노동자 1천902명을 직접고용하기로 결정하자 “(공사를) 들어가려고 스펙을 쌓고 공부하는 취준생들, 현직자들은 무슨 죄냐”며 정규직 전환을 중단해 달라는 청원이 같은달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이 청원글은 하루 만에 20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정규직 전환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 1천600여명의 직접고용에 반대한다며 청와대 게시판을 찾은 청원인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공정한 채용절차를 무시하며 사기업 정규직 직원들이 직고용을 요구하는 것은 분명하게 잘못된 요구”라고 했다. 그는 공단이 맡긴 업무를 공단의 직·간접적인 지시를 받으며 10년 넘게 일한 고객센터 노동자를 공단과 무관한 ‘사기업 정규직 직원’으로 인식했다.

양질의 일자리를 얻는 데 성공한 ‘내부자’들은 “노력을 통해 더 나은 성과를 거머쥘 수 있다”라는 능력주의 신화를 강화해 ‘외부자’와 차별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취업준비생들은 “노력을 통해 더 나은 성과를 거머쥘 수 있다”는 신념을 되새기며 구조를 탓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채찍질한다.

서울 신촌의 한 어학원 입구에서 직원이 사다리에 올라 새학기 수업 광고를 붙이고 있다.  <정기훈 기자>
서울 신촌의 한 어학원 입구에서 직원이 사다리에 올라 새학기 수업 광고를 붙이고 있다. <정기훈 기자>

“을들의 전쟁 속 가려진 진실”

을들의 전쟁 속 근본 원인은 양질의 일자리 부족, 좁혀질 줄 모르는 중소기업-대기업, 정규직-비정규직의 임금격차다. 사업체노동력조사 기준 2019년 중소기업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313만9천원으로 300명 이상 대기업(535만6천원)의 58.6%에 불과했다. 이를 모르는 이는 없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불공정하다”고 답했던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김진씨는 “양극화가 심하지만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며 “문제가 되는 것은 능력이 없는데, 부의 대물림을 통해 기회가 권리처럼 주어지는 경우”라고 주장했다. 김연하씨는 “사회적 배경에 따라 취업을 준비할 수 있는 경제적·심적 여유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라며 “소위 금수저나 잘난 사람들이 다수가 선호하는 회사에 입사할 가능성이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청년 희망사다리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 1천200명에게 물었더니 10명 중 6명(59.2%)은 노력을 해도 계층이동이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20대들 사고의 바탕에는 바로 공정성(스스로 노력하면 능력을 얻을 수 있고, 그에 따라 사회는 차등대우를 해 준다는 능력주의)에 대한 믿음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얼핏 타당한 이야기 같지만 기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져야 하고, 경쟁 과정은 공정해야 하며, 그 상태에서 결과의 차등적 분배가 정의롭게 이뤄져야 한다는 세 가지 전제가 지켜지지 않는데, 주어진 결과만 그대로 받아들이며 참고 버티라고 한다면 그건 부당한 사회적 차별을 문제 삼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의 일부분이다. 이 책을 쓴 오찬호 작가(사회학자)는 “한 개인이 경쟁에서 밀려나는 이유에는 단지 ‘더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말할 수 없는 여러가지 변수가 얽혀 있다”며 “그렇다면 사회는 출발과 과정의 공정성에서 차별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결과의 차별’을 통해서라도 충분히 보상을 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책을 통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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