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조가 지난해 12월20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 광통교부터 서울지방고용노동청까지 일자리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소희 기자>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교육투자가 달라지고, 이 결과 노동시장에서 더 높은 소득과 고용안정을 보장받는 지위를 얻습니다. 이렇게 성장한 이들은 임금격차를 줄이거나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려는 시도를 불공정한 결과의 보정이라고 생각해 반대세력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다시 양극화를 부추겨 결과적으로 기회의 불평등을 확대합니다. 악순환의 무한반복이에요.”

이윤경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기회의 불평등이 양극화를 강화하고, 양극화가 다시 기회의 불평등을 강화하는 굴레를 끊으려는 시도는 교육계에서 끊임없이 나왔다. 그러나 교육계만의 노력으로 해소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윤경 회장은 “학교 서열을 혁파하고 사교육을 억제하는 동시에 좋은 학벌이 아니어도 안정적인 직업을 얻을 수 있는 사회구조적 변화가 필수”라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는 어떻게 이런 쉽지 않은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

사교육 조장하는 고교 서열화
자사고 폐지 등 고교 정상화 절실

교육계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최근 관심은 교육기관의 서열 해체와 학벌 영향력 축소로 모아진다. 교육기관의 서열은 흔히 ‘서연고…’로 시작하는 대학 서열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진보교육계가 더욱 고심한 것은 고교 서열화다. 고교 서열은 영재학교를 꼭짓점으로 과학고·국제고·자사고·외국어고가 포진한 형태다. 이들의 서열은 철저하게 대학 입시가 가른다. 이들 특수목적고 중에도 “어느 학교가 서울대를 잘 보낸다더라”는 데이터가 사교육계를 중심으로 이미 짜여 있다.

이런 특목고는 이명박 정부가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수가 늘었다. 폐지 논란의 중점에 선 자립형사립고는 연평균 교육비가 700만원에 이르지만, 대입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지원자가 끊이지 않는다. 이를 위한 사교육도 성행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중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2009년 24만2천원에서 2012년 27만6천원으로 늘었다. 그렇다고 대입 사교육비를 덜 쓰는 것도 아니다. 서울시교육청 연구에 따르면 2015년 당시 자사고 1학년 학생은 월 평균 43만6천100원을 사교육비로 썼다. 일반고 1학년 학생이 쓴 사교육비는 31만3천100원이다. 학생의 능력보다 이런 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더욱 크게 작용하는 것은 뻔하다. 자사고가 “귀족학교”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다. 문제를 인식한 진보교육계와 정부는 자사고 폐지에 힘을 쏟으며 2025년 자사고 폐지를 확정했다. 그럼에도 2021학년도 자사고 입시 경쟁률은 1.48 대 1로 지난해(1.58 대 1)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최근 법원은 시·도 교육감의 자사고 재지정평가를 통한 지정취소에 제동을 건 상태다.

취업에 유리한 학벌 후광 해소
출신학교 차별금지법으로 혁파해야

이런 노력도 궁극적으로는 대학 서열을 해체하지 않고는 어렵다. 그러나 대학 서열은 취업시장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어 손대기 쉽지 않다. 일정한 명성을 쌓은 이른 바 ‘명문대’가 아니면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취업시장에서 학벌이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해 2월 취업준비생 1천56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91.3%가 공채 지원에 취약한 점이 있다고 답변했는데, 이들이 꼽은 가장 큰 약점은 다름 아닌 출신학교·전공 등 ‘학벌’(46.3%)이었다.

얼핏 학벌과 무관할 것으로 짐작하는 공기업 입사도 학벌의 영향이 크다는 설명이다. 한 공기업 노조위원장은 “기관에 상위권 대학 출신 직원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최근 지방으로 이전한 기관을 중심으로 지방인재 채용 비율을 채우느라 통계가 변하긴 했으나 명문대 출신 학벌을 선호하는 분위기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전문직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연세대를 졸업해 최근 회계사시험에 합격한 홍아무개(27)씨는 업계를 선도하는 회계법인 입사를 꿈꾸고 있지만 학벌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했다. 그가 노리는 회계법인은 국내도 아닌 외국 학력을 선호하는 곳이다.

이를 위한 대안이 출신학교 차별금지법이다. 대입과 취업 원서에서 출신학교 기재란을 삭제하는 게 뼈대다. 학벌을 아예 보지 못하도록 하자는 내용으로,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 2건이 발의됐으나 처리되지 못하고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또 다른 주장도 있다. 공공부문 채용에 한해 학교 간 입직비율을 정하자는 주장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같은 출신학교별 입직비율을 정해 학벌에 따른 차별을 배제할 수 있다”며 “현재는 행시에서 SKY(서울대·연대·고대) 비율 합격자가 6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학교당 3%로 비율을 제한하면 10% 남짓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있고 그만큼 다양한 인재에 기회가 돌아간다”고 말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대학 안 가도 좋은 직장 구하도록
고졸 채용 일자리 늘리고 질 높여야

학벌의 후광효과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고졸 채용을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정성식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은 “직업계고 학생은 통계적으로 저소득층 학생인 경우가 많아 이들에 대한 취업문 확대는 곧 학벌 격차 해소로 이어진다”며 “그러나 최근 직업계고의 취업률은 계속 하락하고 있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고졸 채용 정책도 반짝효과에 그쳐 지속적인 취업률 확대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직업계고 취업률은 2002년 45.1%로 진학률(49.8%)보다 낮아졌다가 2014년 44.2%로 진학률(38.7%)을 앞질렀다. 이후 2017년 53.6%로 올랐다가 다시 하락하기 시작해 2019년 34.8%까지 급락했다. 현장실습을 나갔던 직업계고 학생이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저임금에 시달리는 현실이 드러난 뒤 현장실습을 제한한 게 취업률 하락의 원인이 됐다. 지난해 코로나19 창궐로 현장실습이 더욱 줄고 취업박람회도 막히면서 취업률은 더 급락할 전망이다.

한 직업계고 교사는 “이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안정적인 삶을 지원하는 게 저소득층의 계층이동을 지원하는 방안이면서 동시에 입직경로를 다양화해 학벌 후광효과를 제거하는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국내 36개 공기업 가운데 17곳이 지난해 1~3분기 동안 고졸을 단 한명도 채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의 ‘고졸 취업 지원 확대’ 국정과제를 외면한 셈이다. 이처럼 공공기관이 고졸 채용을 외면하면서 정부가 내놓았던 공공기관 고졸 채용 비율 20% 가이드라인도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해 1~3분기 기준 공기업 고졸 채용 비율은 13.6%에 불과하다.

이런 방안들 외에도 고질적인 콩나물 교실을 해소하기 위해 학급당 학생을 20명으로 제한하고, 2명의 교사를 둬 느린 학습자를 보완하는 방안 등도 논의되고 있다. 또 코로나19 확산으로 학력 격차가 커질 것을 우려해 학력을 보완하려는 계획도 나온다. 특히 초·중·고 학생에 대한 기초학력 보강 대책을 교육부가 내놓은 것이 눈에 띈다. 그간 진보교육계는 기초학력을 진단하려는 시도를 ‘낙인효과’로 규정하고 거부해 왔지만 코로나19로 학력 격차가 커질 것이라는 경고음이 커지면서 이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런 대책들이 교육계에 국한해서는 여전히 기회의 불평등이 고용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다시 양극화를 강화하는 흐름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결국 노동계의 정책적 호응이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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