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 청년유니온 조직팀장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로또취업 성토대회’에 다녀와서 한 인터넷언론에서 참관기를 써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바로 그전 주말, 친구들을 만나 밤을 새워 수다를 떨었는데 뜻밖에 인천국제공항공사 이야기가 나왔다. 사회 이슈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인천국제공항공사 이슈가 얼마나 사회정치적 이슈를 넘어선 청년 일반에 가까운 이야기인지를 새삼 느꼈다. 그래서 ‘인국공 로또취업 성토대회’ 참관기를 부탁받았을 때, 일단 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이것은 왜 노력이 아닌가.’

청년 관련 이슈에서 늘 같이 등장하는 ‘공정’이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면, 왜 비정규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쌓은 업무경험은 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지 묻고 싶었다. 그런데 그에 앞서, 공정을 시험으로만 한정하는 현상을 규탄하는 과정에서 과연 시험은 누구나에게 공정한 절차인지, 개인적 환경의 영향은 정말 없는 것인지, 이것이 계급을 그리고 노동의 이중구조를 공고히 하는 과정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 아닌 질문들을 쏟아 냈다. 그런데 해당 언론사 편집부가 정한 기고글의 제목은 “로또취업? ‘노오력’ 풍자하던 청년들 다 어디로 갔나”가 됐다. 제목부터 ‘어그로’(aggro·분쟁,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내용의 글을 올리거나 행동을 하는 일)를 끌었으니, 반응은 예상대로 꽤 욕을 먹었다.

“(중략) 노오력을 비판하는 거는 너희가 노력이 부족한 것이라는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인 거지. 공정경쟁을 비판하는 게 아닙니다. (중략) 같은 약자끼리 싸운다고 한심하다고 하지 마세요. 계약직으로라도 누군 일 안 하고 싶어서 시험공부하고 자격증 따고 합니까. 당장 돈 벌 거 참아 가며 부모님께 손 벌려 가며 불효자식으로라도 이 사회가 제시한 룰에서 경쟁하고 있는 수많은 취준생은 뭐가 됩니까 예? 제발 좀.”

이 댓글을 쓴 청년은 정말 ‘어쩌라고’ 싶은 억울한 심정일 거다. ‘이 사회가 제시한 룰’에 충실하게 노력했더니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 받아야 하다니. 모두가 상처뿐인 이 사건 앞에서 나의 기고글은 ‘꼰대력’ 충만한 목소리로 남아 버렸다. 기고글을 쓰면서 내가 너무 냉소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 놓고 나의 진심을 몰라 준다고 하는 것은 오만이고, 빚을 내어 가면서까지 자신의 인생에 ‘수험투자’라는 선택을 한 취준생들에게 상처가 됐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나 역시 ‘어떤’ 청년을 상정하고 이야기해 왔던 것일 수도 있겠다. ‘공부를 하는 청년들은 공부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을 거야’ ‘비정규직 청년들의 노동은 더 열악하고 힘들 거야’ 라고. 그들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노동과 노력, 그 자체로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인정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내가 쓴 참관기를 읽은 청년의 후기를 읽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청년들을 갈라치려는 정략적 시도는 계속됐고 청년들을 향해 어쩌고저쩌고 얘기하는 것에는 좌우가 없었다. 그렇게들 궁금해 하시는 청년들의 반응은 사회의 거울일 뿐이다. 노력에 대한 대가는 누군가와의 차이로 증명돼야 했다. 그 ‘누군가’는 노력을 줄 세우고 평가한 결과에 뒤쳐진 사람들이었고, 결국 평가의 기준은 시험뿐이었다.

노력하면 된다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누구처럼 살지 않는다고 가르쳐 왔던 사회는 왜 새삼스레 청년들에게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하는가. 또는 오히려 피해자인 청년들을 앞세워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비난 목소리에는 책임이 없다.

사회의 피해자로서 윗세대에게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한다. 청년이 시험이라는 하나의 선택지에 목숨 걸게 만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양극단에 둔 사회를 스스로 돌아보고 평가하라. 이 사건의 본질을 해결하기 위해 공정을 넘어선 공존을 위한 발걸음에 함께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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