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노동자가 업무 중 재해로 사망했을 경우 유가족을 채용하도록 한 단체협약이 사회질서를 위반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2심 판결을 뒤집었다. 원심은 단협상 특별채용 조항이 사용자 고용계약 자유를 제한하고, 취업기회 제공의 평등에 반해 사회질서에 위배된다며 단협 조항을 무효로 판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27일 기아자동차와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다가 급성골수성 백혈병에 결려 숨진 노동자 이아무개씨의 유족이 현대차·기아차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사용자 자율로 맺은 단협,
재해보상 책임 달성 수단”


산재유족 채용을 둘러싼 논란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근로복지공단은 49세 나이에 급성골수성 백혈병으로 2010년 숨진 이아무개씨의 죽음을 산재로 인정했다. 고인은 1985년 기아차에 입사해 2008년 현대차로 전적했다. 유족은 현대·기아차에 “업무상재해로 인한 사망과 6급 이상 장해 조합원 직계가족 1인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개월 내 특별채용하도록 한다”는 단협 조항 이행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거부했다. 2014년 유족은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모두 산재유족 채용조항이 민법 103조에 위배된다며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민법 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한다.

반면에 다수 대법관은 산재유족 채용조항은 사용자 채용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다고 봤다. 회사가 자유의사에 따라 산재유족 채용조항에 합의했고, 수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산재유족을 채용해 왔다는 것이 근거다. 헌법상 협약자치 원칙에 따라 해당 조항이 유효하다는 얘기다.

김명수 대법관은 “해당 조항이 정년퇴직자, 장기근속자 자녀를 특별채용하거나 우선채용하는 합의와는 달리 사망한 근로자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고 유족을 보호 또는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며 “사용자가 부담할 재해보상책임을 보충하거나 확장하는 것으로 유족 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적합한 수단”이라고 판시했다.

해당 조항이 단협에 포함된 1994년부터 2016년까지 22년 동안 산재유족이 회사에 채용된 경우는 16명으로, 두 회사 신규채용 인원에 비춰 보면 극히 미미하단 점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최근 몇 년 간 위축된 채용 시장으로 사회적 논란이 됐던 ‘채용기회 공정성’에 관해서도 “공개경쟁채용 절차에서 우선 채용되는 것이 아니라 별도 절차를 통해 채용된다”며 중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소수의견을 낸 민유숙·이기택 대법관은 “산재유족을 보호하는 방식이 구직희망자라는 제3자 희생을 기반으로 해선 안 된다”며 “피고(회사)는 공정한 방식으로 채용절차를 수행할 사회적 책임을 부담한다”고 주장했다.

“현대·기아차 유족에 사과해야”

금속노조는 이날 대법원 선고 직후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상은 변호사(법무법인 새날)는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1994년부터 단협을 통해 보장돼 왔다”며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그동안 진행됐던 노사 간 자치에 의해 체결됐던 조항을 민법 103조를 이유로 무효화하려 한 정부와 사용자의 시도에 제동을 건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더이상 사용자와 정부가 노사가 체결한 단협을 무력화하고 이를 통해 노조를 와해하려는 시도가 생겨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 노동부는 기업 단협 내용을 점검한 뒤 현대·기아차를 포함해 “조합원 자녀 우선채용 조항”이 있는 곳에 단협 시정명령을 내려 노조 탄압 논란이 일었다.

이날 노조는 “노동부는 시정명령을 당장 취소하고 단협을 준수하지 않는 사업주를 엄중하게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문제의 발단은 노사가 체결한 단협을 부정하고 산재로 사망한 유가족의 채용요구를 거부한 현대자동차측에 있다”며 “지난 8년간 유족들은 마치 청년들의 취업기회를 박탈하고 청년실업을 야기한 준범죄자 취급을 받아 왔다”고 비판했다. 박 실장은 “현대차는 유족에게 사과하고, 단협에 따라 유족 채용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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