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그는 점심을 굶고 있는 시다들에게 버스값을 털어서 1원짜리 풀빵을 사 주고 청계천 6가부터 도봉산까지 두세 시간을 걸어가기도 했다.” 배우 조진웅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전태일평전 일부를 낭독했다. 코로나19 사회연대기금 모금과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전태일 50주기 캠페인 첫 주자로 나선 그는 “이 시대를 힘겹게 살
죽은 이를 추모하는 공간은 산 자의 일터다. 제사상을 앞에 두고 오늘의 경비 일지를 적는다. 드나드는 방문 차량을 기록하고 이중 주차를 관리한다. 빗자루 들고 여기저기를 쓸다가 재활용품 수거장에 들어 커다란 화분을 망치로 깨 자루에 담는다. 택배를 받는다. 따라붙는 카메라와 기자들의 질문을 견딘다. 주민 갑질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노동자의 생전 일터에 향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앞에 기자들 줄이 구불구불 길었다. 각종 위법행위로 재판을 받고 있는 부회장은 9분여 기자회견 동안 세 번 고개를 숙였다. 그때마다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졌다. 질문은 받지 않았다.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헌법에 오래도록 선명한 문구였다. 그 시각 본관 앞 도로에 사람들이 누웠다. 상여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책 읽는 사람 모양을 한 동상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꽃이 피고 다 지도록 한자리에서 변함없다. 말이 없다. 누군가 거기 씌워 둔 마스크가 다만 시절을 말해 준다. 이마에 머리띠가, 또 그 아래 책에 올려 둔 손팻말이 오늘 길에 나선 사람들의 바람을 전한다. 그 옆 계단에 띄엄띄엄 선 사람들이 할 말을 풀기에 앞서 고개 숙였다. 참사
마지막 벚꽃 날리던 공원 한편 주차장에 무대가 섰고, 노란색 옷 입은 사람들이 띄엄띄엄 앉았다. 차분한 목소리 진행자가 앞자리 올라 언젠가의 기억을 들췄고 앉은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떨궜다. 때론 고개 들어 하늘쪽 먼 곳을 한참 살피기도 했다. 붉어진 눈을 달래느라 껌뻑껌뻑 눈꺼풀이 카메라 셔터처럼 바빴다. 손에 쥔 노란색 손수건이 점점 짙었다. 그 사이
개나리 꽃망울 터지듯 와글와글 피어나던 아이들 웃음꽃이 더는 광장에 없다. 솟구치는 분수를 그냥 지나칠 리 없는 아이들 뒤꽁무니를 쫓다 그만 포기해 버린 엄마 아빠의 걱정 섞인 외침이 들리지 않는다. 4월이면 시간표 따라 어김없던 일인데, 기약 없는 일이 됐다. 언젠가 잘게 부서진 물방울이 낮은 햇볕 머금어 무지개가 뜨면, 갖은 색깔 옷차림 아이들이 그 아
서울 강남역 사거리 높다란 빌딩 샛길. 스마트폰 들여다보느라 고개 숙인 사람들이 앞도 안 보고 복잡한 길을 잘도 걷는다. 저마다 희고 검은 마스크를 쓴 채 답답한 숨을 잘도 견딘다. 길가 온 데 나붙은 현수막이며 대형 전광판에 코로나19 감염증 예방수칙이 빼곡했다. 난리 통에도 어김없는 봄볕에 꽃 틔운 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마스크
계절은 움직임을 멈출 줄 몰라 훌쩍 봄인데, 그건 집 밖의 일이었다. 뜻밖의 손님처럼 불쑥 찾아든 봄기운이 반갑고도 낯설다. 일상을 곱씹는 시절이다.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뒹구는 뽀얀 얼굴 아이들 턱선이 둥글어 간다. 일터에 가야만 했던 엄마 아빠가 뾰족한 수를 찾느라 속이 타들어 간다. 문득 이것은 모두의 일이었으니 전화기 들어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긴급재난문자 통해 날아든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은 밥벌이 고된 길을 전한다. 여전히 붐비는 출근길 지하철을 타고 창문도 없는 일터에 간다. 다닥다닥 붙어 ‘닭장’이라 불리는 곳에 앉아 종일 말을 한다. 큰돈 드는 각종 질환과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는 안심 플랜을 상담한다. 말하기를, 일하기를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바이러스는
생선은 대가리가 제일 맛있다고, 한겨울 맨손으로 다니면서도 손 시리지 않다고 아빠가 자주 말했는데 그게 다 거짓말이란 걸 나중에 알았다. 종종 팔씨름하느라 잡아 본 아빠 손은 온통 거칠었다. 굳은살이 두꺼웠고, 여기저기가 쩍쩍 갈라졌다. 시멘트 독 때문이라고 엄마가 말해 줬다. 장갑 좀 끼라는 엄마 잔소리가 부족했던지, 아빠가 장갑 낀 걸 지금껏 본 적이
지상 74미터 높이였는데, 그는 어디 히말라야 고산에서나 입을 빨간색 커다란 패딩점퍼 차림이었다. 겨울이었고, 그곳엔 전기가 들지 않아 온열 매트 따위에 등을 지질 형편이 못 됐다. 늙은 해고자는 눈 덮인 산꼭대기처럼 하얗던 건물 꼭대기에 천막 치고 그저 오래 버티는 것으로 복직 싸움을 이어 갔다. 조난신호였다. 노조할 권리가 그곳 병원에서 자주 위태로웠다. 누군가에겐 목숨을 걸 일이었다. 마음 졸인 사람들이 그 아랫자리에서 곡기 끊는 것으로, 멀리서 걸어오는 것으로, 집회를 이어 가는 것으로 응답했다. 일단락됐다. 내려오는 사다리
큰 희생을 치른 싸움 앞에 내세운 요구라는 게 대개 약속과 법을 지키라거나 더는 죽이지 말라거나 하는 것이었다. 이 시대 상식으로 통하는 뻔한 말을 하느라 사람들은 일터에서 잘리고, 길거리를 떠돌다 몸을 또 마음을 다치고, 종종 죽었다. 저기 10년의 싸움 끝 복직을 앞뒀던 쌍용차 노동자들이 다시 청와대 앞을 찾아가 굳은 표정으로 한 말이 또 약속 이행이었
남편 잃은 사람 곁에 아들 먼저 보낸 엄마가 섰다. 가다 서다 자꾸만 왈칵 울던 이를 뒤따른 건 어디 해고 생활 길었던 사람과 비정규 노동자와 종교인이었다. 또 아들을, 동생을 먼저 보낸 유가족이었다. 무언가를 잃어 본 사람들이 슬퍼 꺽꺽 우는 사람 손을 잡는다. 북소리 맞춰 엎어지거나 팻말을 들었다. 인적 뜸한 도로를 천천히 행진했다. 오체투지, 별말도 없이 꾸역꾸역 일어나선 입김을 길게 뿜었다. 경마장, 이곳에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상복 입은 사람이 마이크 잡고 말했다. 일하다 고통받지 않아야 하고, 일하다 죽지 않아야 한다는
겨울, 비가 잦다. 선전물과 조형물과 또 헛상여를 이고 지느라 손이 없는 사람들이 우산 대신 우비를 껴입고 행진에 나선다. 장지도 아닌 곳에 멈춰 서 줄줄이 곡소리 나는 사연을 풀어냈다. 아픈 말들이 길고도 험했다. 말없이 상여 앞자리 앉아 비를 맞던 아빠는 종종 눈을 질끈 감았다. 우비에 고인 빗물이 흘러 눈에 들었다. 꽃상여는 젖지 않았다. 말과 함께 한 영정 사진에는 살려 내라, 날 선 말이 붙었다. 상여 앞에서 헛되고도 헛된 말이었다. 길 따라 선 사람들 목구멍에서 끓는 말이었다. 그 죽음을 헛되이 않겠다며 가족이, 또 노동
새 도로가 뚫려 서울에서 마석 모란공원 가는 길이 빠르고 편해졌다. 그 길 따라 대규모 신축 아파트단지가 어느새 삐죽 높았다. 광역급행철도 줄기 따라 그랬다. 새해맞이 인파로 붐볐을 강릉·속초 앞바다 가는 것도 이제는 별일 아니라고 옆자리 동료가 말했다. 많은 것이 변했다. 새해라고 노동조합 사람들이 모란공원을 찾아가 그 자리 우뚝 선 채로 변함없는 전태일
언젠가 내비게이션에 평택시 칠괴동으로 뜨던 곳은 이제 동삭로라고 나온다. 거기 자동차공장 인근에는 신축 아파트 단지가 어느새 빼곡하다. 한때 새롭게 꾸며 말끔했던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사무실은 여기저기 낡아 볼품을 잃었다. 많은 게 달라졌다. 또 여전한 게 거기 있었다. ‘차차’라고 이름 붙인 공간에 개가 한 마리 산다. 샛별이다. 내년 1월이면 네 살, 혈기 왕성한 골든레트리버 암컷이다. 도둑을 보고도 꼬리 친다는 아인데, 낯선 사람을 보고는 멍멍 두어 번 짖을 줄을 안다. 거기 들어온 지부 사람에게 짖었다가 구박을 먹었다. 금
백억, 그거 얼마 안 되더란다. 가늠하기도 어려운 돈이었는데, 택배 상자며 감귤 상자 몇 개면 담기에 충분했다. 한 다발이 오백이었으니, 박카스 상자 그 작은 것엔 1억이 딱 든다고 했다.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건지 보고 싶었다며 백억원어치의 모형 돈을 뽑았다. 보기에 평소 만들던 차 트렁크에 싣고도 한참 남을 만큼이었다. 차떼기며 사과박스는 옛날 말. 온갖 검은돈은 한결 가볍게 오갈 것이라고 모형 돈 백억원어치를 길에 쌓던 이가 말했다. 백억, 그러나 눈앞에 닥친 그 돈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숫자였다. 억 소리 나는 그놈의 돈
거기 액자에 김용균 아닌 누가 들었대도 이상할 것 없는 세상의 광장에서 운이 좋아 죽지 않은 그의 동료가 유행 지난 롱패딩을 입고 서성인다. 비질하고 꺼진 촛불에 불 놓아 살린다. 꺼지지 않는 향에서 연기 오르는 동안 회색빛 재가 툭툭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 쌓여 간다. 어느새 수북했다. 철을 모르고 싱싱한 국화가 또한 그 앞에 쌓였다. 뒷벽에 빼곡하게 붙은
김장철이다. 배추 절이고 물 빼고 무 썰고 고춧가루 풀고 섞고 바르고 담느라 한겨울 한바탕 소란 통이 벌어진다. 저기 마트에 맛 좋다는 갖은 포장김치가 가득한데도, 사람들은 애써 고된 일 하기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재래시장이 오랜만에 활기차다. 주말 유독 막히던 고속도로 위에 뒤축이 한 뼘씩은 내려앉은 차들이 설설 기어간다. 꼬릿한 김치 냄새가 풍기
사진 속엔 조끼 차림 사람들이 웃고 울고 춤춘다. 길바닥에 엎어져 행진하고, 경찰에 둘러싸인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또 촛불을 들었다.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새롭다고 했다. 여기 나도 있다면서 가리킨다. 흰옷 입고 바닥에 붙어 얼굴을 확인할 길 없었는데, 뒷모습이라고 제 모습을 어찌 모를까. 그놈의 냄새가 지독했다고 사진 살피던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