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김장철이다. 배추 절이고 물 빼고 무 썰고 고춧가루 풀고 섞고 바르고 담느라 한겨울 한바탕 소란 통이 벌어진다. 저기 마트에 맛 좋다는 갖은 포장김치가 가득한데도, 사람들은 애써 고된 일 하기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재래시장이 오랜만에 활기차다. 주말 유독 막히던 고속도로 위에 뒤축이 한 뼘씩은 내려앉은 차들이 설설 기어간다. 꼬릿한 김치 냄새가 풍기는 풍경이다. 늙은 엄마는 늙은 아빠를 채근해 올해 또 100여 포기 가까운 김치를 담갔다는데, 자식들을 부르진 않았다. 대신 택배기사 부르는 걸 잊지 않았다. 아들딸 사는 집 주소가 적힌 상자를 건넸다. 빠르기도 하지. 하루 이틀 새 집에 도착한 상자를 열어 보고서야 김장철임을 깨닫는다. 철들지 않은 자식은 그제야 전화 한 통 넣어 김치통이 무사함을 알린다. 유난히 매운 김치를 아이에게 먹여 보겠다고 물에 씻고 잘게 잘라 밥상에 낸다. 이거 먹어야 튼튼해진다는 말도 빼먹지 않는다. 냉장고 속 깊은 곳에 넣어 두고 열어 볼 생각도 않던 통을 이제야 꺼내어 묵은 김치를 썬다. 삼겹살 두어 덩이 옆자리에 깔아 구워 내니 그 맛이 일품이다. 김치 없이 어찌 사나 싶었다. 담글 줄도 모르면서 먹을 줄만 알았다. 철 따라 저기 노조 사람들도 김장을 한다. 지역사회 연대활동이었고, 또 시위였다. 어느 대기업 빌딩 앞자리에 비닐 깔고 왁자지껄 판을 벌였다. 빨간색 머리띠 대신 고무장갑을 챙겼다. 구호는 빼먹을 수 없어 빨간 주먹이 하늘로 솟았다. 싸울 줄만 알았지, 김치 담글 줄은 몰라 허둥지둥 댔지만 그 자리 내내 웃음 끊이질 않았다. 일은 안 하고, 왜 자꾸 먹기만 하느냐고 타박받은 저기 조합원이 그러거나 말거나 배추에 양념 얹어 한 입 쏙 먹고 만다. 조금 머쓱했던지 여기저기 다니면서 다른 입에도 넣어 준다. 철 따라 겨울나기 준비가 한창이다. 노조하는 사람들은 길에 나서 애써 고된 일 하기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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