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희생을 치른 싸움 앞에 내세운 요구라는 게 대개 약속과 법을 지키라거나 더는 죽이지 말라거나 하는 것이었다. 이 시대 상식으로 통하는 뻔한 말을 하느라 사람들은 일터에서 잘리고, 길거리를 떠돌다 몸을 또 마음을 다치고, 종종 죽었다. 저기 10년의 싸움 끝 복직을 앞뒀던 쌍용차 노동자들이 다시 청와대 앞을 찾아가 굳은 표정으로 한 말이 또 약속 이행이었으니 유구무언이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팻말에 적어 들었다. 가만 선 채로 자꾸만 눈 붉었다. 마스크 사이로 삐져나온 입김에 안경이 뿌옇게 흐렸다. 유행하는 감염병보다 치명적이었던 건 정리해고였고, 위험의 외주화였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이 지금껏 거리에서 약속 이행을 말하다가 목이 멘다. 일터에 갔던 사람은 오늘 또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영정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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