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화. 사진을 찍을 때에 피사체를 파인더의 테두리 안에 적절히 배치해 화면을 구성하는 일이다. 무엇을 더 넣고 어떤 걸 빼는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 십상이다. 사진은 흔히 객관적인 기록으로 여겨지지만 거짓말도, 왜곡도 잘하는 게 또한 사진이다. 프레이밍 과정은 대개 짧은 순간에 이뤄지기 때문에 편견 혹은 관습에 기대는 일이 잦다. 주먹 쥔 손과 일그러진 표정과 붉은 머리띠 같은 것들이 흔한 경우다. 귀족노조 혹은 강경투쟁 같은 이미지가 거기에 자주 녹아든다. 주로 보수언론을 통해 퍼진 것들인데, 이 또한 프레이밍이라고 부른다
서울 광화문광장 길 한편 거기 예술의 전당 앞 계단은 기자회견의 전당으로 거듭났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할 말을 품고 칸칸이 선 채로 펜과 카메라 든 관중을 기다린다. 천을 찢고 얼음을 깨고, 또 짧은 연극을 선보이는 식으로 할 말의 핵심을 내보인다. 사진에 힘을 보탠다. 자주 썰렁했고, 종종 깔끔했다. 그러니 준비하는 사람들은 몇 날 며칠 창작의 고통으로 불면의 밤을 보낸다. 저기 ‘인증샷 집회’ 기획자는 토 나올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사진기자가 많이 왔다는 게 얼마간 위로가 됐을 테다. 뒷줄 현수막 든 사람들은 사진에 거슬린다는
길에서 오래 싸운 사람들은 돌고 돌아 서울 서초동 대법원 건물 앞에 선다. 거기 벽에 새겨진 자유·평등·정의 세 문구를 대놓고 의심하는 자는 없었으니 앞자리 모인 누구나가 승리를 확신했다. 그러나 현수막은 두 개를 준비했다. 카메라 앞에서 읽어 내릴 기자회견문도 두 가지였다. 오래 묵은 오만가지 표정은 꾹꾹 눌러 담은 채 선고를 기다린다. 울고 웃는다. 지
거북이 등껍질 같은 가방을 멘 라이더는 토끼처럼 빨라야 했다. 재빨리 눈을 굴려 콜을 확인해야 했고, 밥이 식기 전에 자전거와 오토바이 타고 내달려야 했다. 신호등 붉은빛은 밥 식는 신호였고, 평점 깎이는 표시였다. 차와 차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좁은 틈이 갈 길이었고, 살길이었다. 세차게 쏟아지던 장맛비 속에서도 페달 질을, 액셀러레이터 당기는 일을
2003년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월차를 쓰겠다고 했다가 관리자에게 떠밀려 머리를 다쳤다. 그 관리자는 병원에 실려 간 노동자를 찾아가 식칼로 아킬레스건을 그었다. 이른바 ‘식칼 테러’ 사건이다. 월차를 쓰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을 더는 참지 않겠다며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틀간 공장 라인을 세웠다. 이를 계기로 아산과 울산, 전주 공장에
거기 새길 말이 많아 팻말이 크다. 할 말이 또한 많아, 기자회견이 길다. 그러니 뒷자리 팻말 든 사람들은 오래 벌을 선다. 거기 새긴 말이라곤 법원 판결에 따른 정규직화 실시하라, 불법행위 중단하라 같은 것이었는데, 상식에 드는 뻔한 말을 재차 하느라 마이크 든 사람들 목에 핏대가 선다. 팻말 든 사람들 팔을 덜덜 떤다. 기어코 노동청 앞에 천막이 섰고,
소처럼 일하던 사람을 여럿 잃고서야 일터를 고친다. 영정 앞 굳었던 약속은 금세 흐지부지되기 일쑤여서 오늘 산 사람들은 어제 죽은 자의 일터에서 분초를 다툰다. 퇴근을 미루고 끼니를 미루고 여름휴가를 미뤄 가며 밥을 번다. 닮은꼴 죽음이 잇따랐다. 일터를 바꾸는 것을 더는 미룰 수 없다며 길에 선 사람들이, 고개 숙여 명복을 비는 것으로 말을 시작한다. 어
한 기업 오너가 4년간 재판받는 게 정상이냐고 어느 국회의원이 묻는다. 기업활동에 차질을 빚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뉴스페이지 곳곳에 높다. 경제가 어려운데, 기업이 어려운데, 어느 돌림노래 후렴구 같은 말이 앞선다. 최저임금을 삭감하자고 나선다. 도대체 멈출 수는 없는 것인지, 이 와중에도 꼬박꼬박 일터에서 사람이 죽어 간다. 코로나19 위기 비상시국에 일
저기 허리 굽힌 노동자들은 인천국제공항으로 출근해 그곳을 쓸고 닦고 가꾸지만 지금 누구도 저들이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일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 감히. 눈 돌리는 곳마다 비정규직이다. 그건 지금의 상식이다. 오래전 어느 공장 구내식당에서 밥 짓던 엄마는 그 회사 직원이었다. 그 또한 상식에 속했다. 몇 년 근속 기념으로 상패와 작은 금붙이를 받아 오
언젠가 출입국하는 사람들로 내내 붐볐던 공항에 인적이 뜸하다. 거기 일하던 사람들은 기약 없는 휴직 중이거나 잘렸다. 적막한 그곳에 수선 작업하는 노동자 수레 끄는 소리만 달그락달그락 크게 울린다. 먼 옛날의 무덤처럼, 절터처럼 일터엔 사람의 흔적만이 남았다. 산 사람들은 지금 출국장이 아니라 높다란 빌딩 앞 작은 농성 텐트로 출근한다. 뜯기고 무너지기 일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다는 성공회성당 건물 앞으로 1천300여년 전 만들었다는 첨성대를 본딴 조형물이 섰다. 코로나 극복을 위한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라고 전시 기획자는 알렸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검은 구름 두텁다. 비 예보가 있었지만 바깥 일을 미룰 수도 없었을 터, 그 앞 일하는 사람 등이 젖는다. 이미 땀에 젖은 티셔츠에 빗방울이 별 일도 아니
서울지하철 구의역 9-4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다시 포스트잇이 빼곡 붙었다. 혼자서 안전문 고치다 죽은 김군의 4주기, 닮은꼴 죽음이 멈추질 않아 거기 적힌 내용이 처음과 다를 바 없다. 그 앞 죄지은 듯 고개 숙인 사람들 얼굴에 마스크가 조금 달랐을 뿐이다. 실은 그게 다 익숙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날마다 명복을 빈다. 새로운 죽음 앞에 지난 죽음을 떠올리
밥 짓느라 거칠어진 저 손은 밥 버느라 휘고 군살 깊어 볼품없다. 비행기가 내리면 헐레벌떡 뛰어올라 기내식 음식쓰레기 자루를 단단히 묶고 들고 옮겼다. 화장실 오물을 치우고 쪼그려 앉아 구석진 곳을 닦느라 손이 내내 바빴다. 일손이 늘 부족했다. 밀려드는 비행기 스케줄 따라 일터는 도깨비시장이었고 전쟁통, 아수라장이었다고 손 임자가 전했다. 고래심줄만 살아
언젠가 서울지하철 구의역에서 청년 하청노동자가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끼여 죽었다. 유품으로 남은 컵라면을 들고 사람들이 울었다. 또 언젠가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청년 하청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말려 죽었다. 사람들이 컵라면을 쌓아 두고 엉엉 울었다. 왜 자꾸 죽는지를 길에서 물었다. 돈 때문이었다고, 누구나가 아는 답이 짧았다. 책임을 묻고 대책을 만드는 일이
제자들 없는 텅 빈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쓸쓸한 스승의 날을 맞았다는 기사가 난다. 코로나19 시절의 풍경이다. 노조할 권리 없는 선생님들이 오늘 또 한 번 거리에서 씁쓸한 스승의 날을 맞는다.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진 전교조 법외노조화 공작의 결과다. 촛불정부 시절의 여전한 풍경이다. 스승의 날 앞이라고, 대법원 앞에 선 해직교사 가슴에 카네
“때때로 그는 점심을 굶고 있는 시다들에게 버스값을 털어서 1원짜리 풀빵을 사 주고 청계천 6가부터 도봉산까지 두세 시간을 걸어가기도 했다.” 배우 조진웅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전태일평전 일부를 낭독했다. 코로나19 사회연대기금 모금과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전태일 50주기 캠페인 첫 주자로 나선 그는 “이 시대를 힘겹게 살
죽은 이를 추모하는 공간은 산 자의 일터다. 제사상을 앞에 두고 오늘의 경비 일지를 적는다. 드나드는 방문 차량을 기록하고 이중 주차를 관리한다. 빗자루 들고 여기저기를 쓸다가 재활용품 수거장에 들어 커다란 화분을 망치로 깨 자루에 담는다. 택배를 받는다. 따라붙는 카메라와 기자들의 질문을 견딘다. 주민 갑질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노동자의 생전 일터에 향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앞에 기자들 줄이 구불구불 길었다. 각종 위법행위로 재판을 받고 있는 부회장은 9분여 기자회견 동안 세 번 고개를 숙였다. 그때마다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졌다. 질문은 받지 않았다.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헌법에 오래도록 선명한 문구였다. 그 시각 본관 앞 도로에 사람들이 누웠다. 상여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책 읽는 사람 모양을 한 동상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꽃이 피고 다 지도록 한자리에서 변함없다. 말이 없다. 누군가 거기 씌워 둔 마스크가 다만 시절을 말해 준다. 이마에 머리띠가, 또 그 아래 책에 올려 둔 손팻말이 오늘 길에 나선 사람들의 바람을 전한다. 그 옆 계단에 띄엄띄엄 선 사람들이 할 말을 풀기에 앞서 고개 숙였다. 참사
마지막 벚꽃 날리던 공원 한편 주차장에 무대가 섰고, 노란색 옷 입은 사람들이 띄엄띄엄 앉았다. 차분한 목소리 진행자가 앞자리 올라 언젠가의 기억을 들췄고 앉은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떨궜다. 때론 고개 들어 하늘쪽 먼 곳을 한참 살피기도 했다. 붉어진 눈을 달래느라 껌뻑껌뻑 눈꺼풀이 카메라 셔터처럼 바빴다. 손에 쥔 노란색 손수건이 점점 짙었다. 그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