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물을 분류한 작업자의 흰 장갑이 까맣게 변했다. 세탁이 끝나고 물탱크로 모인 물도 시커멨다. 지난달 20일 경기도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 ‘블루밍’에서 목격한 장면이다. 작업복에 묻은 쇳가루와 기름때 냄새로 세탁소 안은 매캐했다. 작업자들은 “세탁시 장갑과 마스크는 필수”라면서 “우리가 이런 데 일하는 사람들은 오죽하겠냐”고 입을 모았다. 지난 7월12일 블루밍이 문을 열기 전까지 노동자들은 이런 작업복을 집에서 빨거나 더러운 채로 계속 입었다.오염된 작업복, 가족 건강까지 위협블루밍은 영세·중소사업장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1_202304131044_안전은 없다4월13일 오전 중형 세단에 몸을 싣고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린다. 운전석에는 정태호(37) 공공노련 희망노조 위원장이 앉았다. 북충주IC 인근의 식당을 목표로 이동 중이다. 그곳에서 고속도로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만나기로 했다.“(고속도로 통행료수납시스템 유지관리를 하는) ITS 노동자가 우리 조합원이지만 저도 사실 그들이 하는 일을 직접 본 적이 없어요.” 정 위원장이 말문을 연다. 고개를 주억거린다. 정신은 차창 밖 풍경에 팔려 있다. 서울을 나선 지 한 시간여. 터널 하나를 빠져나오자 눈에
“남편 사고 이후 매일 ‘감옥살이’하듯 살고 있어요. 그런데 장세욱 동국제강 대표이사(부회장)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어요. 안전수칙을 전혀 지키지 않아 사람이 죽었습니다. ‘슬프구나’ ‘안됐구나’ 하고 생각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에요. 동국제강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처벌받는 대기업 첫 사례가 됐으면 합니다.”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크레인 안전벨트에 몸이 감겨 숨진 하청노동자 고 이동우씨의 아내 권금희씨는 사고가 난 지 꼭 1년이 된 21일 에 이같이 말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권씨
1일 오전 7시47분, 일출시간 국회 앞 천막농성장을 국회 방호를 맡은 경찰 세 명만이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해 말까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을 요구하며 서울지하철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앞을 지켰던 금속노조의 텐트촌은 텐트 한 개만 남았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박래군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공동대표가 단식농성을 했던 국회 정문 앞 운동본부 단식농성장은 비어 있었다. 건강상 이유로 이들이 지난달 30일 단식을 중단해서다.국회 앞 14개 농성장 모두 비슷한 모습이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안전
“친구를 만나러 간 자리에서 압사당해 많은 청춘이 ‘고인’이라는 명칭을 다는 일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대통령과 정부는) 진짜 사과가 무엇인지 몰라서 나오지도 않고 모른 체 하고 있습니까. (중략) 장례식을 치르자마자 빨리 장례비를 신청하라며 독촉하더니 우리 아이들의 영정사진이 들어간 합동분향소가 이제야 차려지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자행되는 상황에 할 말을 잃고 참담함을 느낍니다. 이런 상황에도 그날의 일을 일반 사고라고 할 것인가요. 우리 아이들을 두 번 죽이지 마십시오.”10·29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 고 김용건씨의 어
“너 같으면 너 같은 애를 데리고 일하겠어? 회사에서 지시한 일만 해!”“원직복직을 시켜 준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닥치고 지시한 일만 하라고.”서울 영등포구의 홈네트워크 시스템 제조업체인 H사의 이사가 해고 이후 부당해고 판정으로 복직한 노동자에게 청소를 지시하며 한 말이라고 한다. H사는 노동위원회의 복직명령을 이행하면서 원래 업무가 아닌 직책으로 ‘가짜 복직’을 시켰다가 최근 항소심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연구개발자였던 직원은 해고 이후 복직하며 청소 업무를 맡았고, 두 번째 복직할 때는 유지보수 업무가 떨
16일 오전 100여명의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가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에서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소주와 맥주를 광고하던 옥상 옥외광고판에는 ‘노조탄압 분쇄, 손배·가압류 철회, 해고철회 전원복직’이라고 쓴 현수막이 걸렸다.이들은 서울 본사에서 농성을 하기까지 76일간 파업을 이어 오고 있다. 경기도 이천과 충북 청주, 강원도 홍천의 하이트진로 공장을 거쳐 다다른 곳이 서울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운송사와 운송료 협상을 했던 화물노동자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며 고공농성으로 끝장투쟁을 선언했다.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들은 왜
정부는 국회가 만든 법을 집행한다. 그게 행정이다. 일은 자동으로 되는 법이 없어서 사람이 붙어야 한다. 공무원을 두는 까닭이다. 공무, 그러니까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공무의 끝에서 시민을 직접 상대하는 이들은 공무원이 아닐 때가 많다. 공무를 직업으로 삼아 위험을 마주하는 사람들, 공무직이다. ‘공무원 아니었어?’ 하고 의아해 할 정도의 공적 업무를 하지만 공무원은 아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공무직들을 만났다.글 싣는 순서① 가축위생방역사② 고속도로 순찰원③ 국가보훈처 의전단2020년 여름 한국도
용역회사 소속이던 고속도로 안전순찰원은 2019년 1월1일 한국도로공사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당초 안전순찰원은 공사 소속 정규직이었지만 공공기관 효율화 같은 정부정책에 따라 2007년 6월부터 민영화를 시작해 2013년 4월 완료했다. 그러다 2019년 문재인 정부의 국민생명 관련 안전업무 종사자의 직접고용 방침에 발맞춰 용역 직원 912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했다.그러나 무늬만 정규직이라는 비판이다. 도로공사 순찰원노조는 “각종 복지수당과 포인트를 9급 이상 전 직원에 지급하도록 규정을 뒀는데 정규직으로 전환한 안전순찰원은 별도
정부는 국회가 만든 법을 집행한다. 그게 행정이다. 일은 자동으로 되는 법이 없어서 사람이 붙어야 한다. 공무원을 두는 까닭이다. 공무, 그러니까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공무의 끝에서 시민을 직접 상대하는 이들은 공무원이 아닐 때가 많다. 공무를 직업으로 삼아 위험을 마주하는 사람들, 공무직이다. ‘공무원 아니었어?’ 하고 의아해 할 정도의 공적 업무를 하지만 공무원은 아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공무직들을 만났다.글 싣는 순서① 가축위생방역사② 고속도로 순찰원③ 국가보훈처 의전단축사 밖으로 내민 소
전국에 설치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는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따라 설립된 기관이다. 가축의 예방접종과 약물목욕, 임상검사 및 감사시료를 채취하고 축산물의 위생검사와 가축전염병 예방을 위한 소독이나 교육·홍보 활동이 주요 사업이다. 법령에 따라 설치됐지만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된다.방역지원본부 최대 현안은 인력 확충이다. 6월 현재 현원은 1천294명, 이 가운데 직접 일선 농가를 뛰어다니며 시료를 채취하는 방역사는 496명이다. 이 밖에 예찰직·청사관리직·위생직 등 다양한 직군이 있다. 이들 가운데 정규직은 지원본부에서 일하는 노동자 55
“매년 부끄러웠습니다. 올해도 부끄러울 뿐입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부디 하나가 되세요’ 그 목소리와 외침이 생생하고 절실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그 모양 그대로여서 그런가요.”3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묘역에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의 목소리가 낮게 퍼졌다. 양대 노총을 비롯해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여영국 정의당 대표와 김재연 진보당 대선후보·권영길 평화철도 이사장 등 노동·시민단체와 정치권 인사 150여명이 모인 묘역이 일순간 고요해졌다.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어머니의 묘역 뒤에 설치된 현수막 소리가 바
20년을 일한 일터였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 없었다. 출근해 기계를 돌렸다. 회사는 폐업을 통보했다. 30년 동안 흑자를 내던 기업의 폐업 소식에 어안이 벙벙했다. 꿈 많던 20대 입사해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아 길렀다. 일생을 함께한 곳이었다.“진짜 억울하데예. 이레가(이렇게) 끝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송인환(46)씨가 지난해 6월 해고를 통보받은 뒤 500일 넘게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싸우는 이유다.한국게이츠는 지난 6월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악화를 이유로 노동자에 폐업을 통보했다. 외국계 기업의 폐업은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은 이해합니다. 반대하지 않아요. 공감하고 동참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로 가라는 겁니까?”기후위기 산업전환의 한복판에 선 발전노동자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8월9일 IPCC 6차 평가보고서의 ‘1실무그룹 보고서’를 승인했다. 내용은 충격적이다. 3년 전 같은 보고서에서 2030~2052년 지구 평균온도가 섭씨 1.5도 오를 것이라던 전망은 10년 가까이 앞당겨 2021~2040년이 됐다. 2050년을 목표로 탄소중립을 이룬다는 정부의 2050 탄소중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전망한 2050년, 국내 전체 전력수요 예측량은 1천165.4~1천215.3테라와트시(TWh)다. 2018년과 비교해 204.2~212.9% 증가한 규모다. 수요가 두 배니 생산도 두 배가 돼야 한다. 전문가에 따라서는 세 배 이상 생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게다가 대부분을 재생에너지로 생산해야 한다.탄소중립위가 예상한 3개 시나리오 각각의 재생에너지의 전력부담은 56.6~70.8%에 달한다. 천연가스(LNG)발전 비중은 0~8% 수준이다. 석탄화력발전소가 탄소배출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정부는 9차 전력
“띵동” “띵동, 띵동”엘리베이터 도착 알림음이 끊임없이 울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가고 또 다른 무리가 들어간다. 청년들도 더러 보이지만 중장년 층이 다수다. 머리가 희끗한 사람도 쉽게 볼 수 있다.직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엘리베이터 맞은편 사무실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발열 여부를 체크하기 바빴다. 올해 들어 최고치를 찍은 기온 탓에 에어컨을 틀어 창문은 대부분 닫혀 있다. 사무실은 방문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아휴~ 1구간, 2구간이 있는데, 복잡해.”
항만이 달라지고 있다. 108년간 이어졌던 항운노조의 인력공급 독점권이 2007년 '항만노무공급체계 개편'으로 사라진 지 10여년이 지났다. 항만하역 시스템 자동화는 인공지능(AI)과 결합한 스마트항만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역노동자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가 인천항을 찾았다.지난달 29일 기자가 찾은 인천시 항동에 위치한 인천 내항은 분주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는데도 3부두 게이트는 출입서류를 작성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인천항은 갑문 안쪽의 내항과 바깥의 외항으로 구분된다. 외항이 주로 컨테이너선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상암동 마포자원회수시설. 소각설비가 설치된 처리동 문을 열자 먼지와 함께 정체 모를 냄새가 훅하고 올라왔다. 들고 있던 1급 방진마스크를 급히 썼다. 콜록거리는 기자와 달리 시설을 안내하던 김태헌 전국환경시설노조 위원장은 “이런 냄새도 자주 맡다 보니 이 정도는 그러려니 한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소각시설 주위 난간과 바닥은 물론 처리동 문 바깥쪽 바로 앞에 놓인 빨간 소화기 위까지 회색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서울시는 시내에서 발생하는 생활쓰레기를 강남과 노원·마포·양천 4개 자원회수시설에 보내 소각하고
이달 2일 비정규·문화 활동가들이 전남 고흥군 소록도를 찾았다.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이 주최한 인권기행이었다.일제는 나병·문둥병·천형병·악창 등으로 불렸던 한센병 환자들을 1916년부터 소록도에 격리해 수용했다. '근대화한 선진사회'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한센병 환자나 부랑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없애 버리는 정책을 썼다. 하지만 광복 후에도 한센병 환자 강제격리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 한센병 환자들로서는 '매질을 하는 자'가 일본인에서 한국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이번 기행은 한
“어떡하죠? 오전에 가야 할 집들이 다 전화를 안 받아요.”CJ헬로 양천고객센터 설치기사 이희민(27)씨가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전에 방문 예약을 한 고객들과 모두 전화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오전부터 일이 끝날 때까지 설치기사와 동행하기로 했던 터라 기자 역시 당황했다. 고객이 예약한 것이니 그냥 그 집으로 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 옆에 있던 동료가 손사래를 쳤다.“우리가 왜 그렇게 해요? AS·철거기사처럼 (협력)업체 정규직이라면 모를까. 우리는 기름값도 다 제 돈 주고 가는데…. 허탕 치면 시간 날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