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오전 국회 앞 농성장 풍경. <임세웅 기자>

1일 오전 7시47분, 일출시간 국회 앞 천막농성장을 국회 방호를 맡은 경찰 세 명만이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해 말까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을 요구하며 서울지하철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앞을 지켰던 금속노조의 텐트촌은 텐트 한 개만 남았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박래군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공동대표가 단식농성을 했던 국회 정문 앞 운동본부 단식농성장은 비어 있었다. 건강상 이유로 이들이 지난달 30일 단식을 중단해서다.

국회 앞 14개 농성장 모두 비슷한 모습이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안전운임제 확대하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천막에 걸린 팻말이 막 떠오른 햇볕을 받으며 바람에 펄럭였다. 한국와이퍼 노동자 고용문제 해결, 학교급식 노동자 폐암 산재 대책, 차별금지법 제정, 간호법 제정 반대,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농성장이 늘어섰다.

대답 없는 국회에 지치지만
다음 단계 준비하는 노동자들

농성장은 정의당이 방문하며 활기를 띠었다. 정의당은 이날 오전 11시30분께 국회 농성장 앞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신년인사회’를 열고 운동본부 농성장과 화물연대본부 농성장을 방문했다.

이정미 대표는 “정의당이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노동과 정의를 바로 세우고, 일터와 삶터에서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지키는 일”이라며 “노란봉투법과 안전운임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이은주 원내대표는 “정의당은 2023년 새해 첫 일정을 손배 사업장 노동자, 화물노동자들과 함께 시작한다”며 “노란봉투법 입법을 반드시 해내겠다”고 밝혔다.

농성장을 지키던 노동자들은 “답이 없는 국회에, 지치지만 끝까지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운동본부 농성장에 있던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겨울 날씨가 너무 힘들고, 많이 무너진 마음들이라 정당들이 조금 더 힘을 내 주셔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절망은 아니다. 분명히 기회는 올 것이다”며 “있는 힘을 다 동원하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현장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일 때도 못하더니 야당이 돼도 못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절박하지 않고, 민생 문제라는 생각도 덜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29일 건강악화로 병원에 실려간 이봉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장을 이어 단식을 하는 박해철 공공운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국민의힘에는 분노를, 민주당에는 실망을 하고 있다”며 “민주당이 임시국회 끝날 때쯤 남은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 정의당이 1일 오전 국회 앞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농성장에서 농성 중인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과 박해철 노조 수석부위원장을 만나 간담회를 가졌다. <남윤희 기자>
▲ 정의당이 1일 오전 국회 앞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농성장에서 농성 중인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과 박해철 노조 수석부위원장을 만나 간담회를 가졌다. <남윤희 기자>

외면받는 노동관계법
임시국회 통과 가능성 낮아져

현재 법안을 통과시켜야 할 국회는 갈등만 키우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와 국민의힘의 국정조사특위 파행으로 인한 국정조사 기간 연장이 뇌관이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이재명 대표에게 출석을 통보했다. 검찰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이자 성남FC 구단주였던 때 기업들에서 160억원 상당의 후원금을 받고 인허가 편의를 제공했다고 봤다.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오후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위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출석을 거부한 일을 ‘고의 파행 의도’로 보고 기간연장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의 보좌진이 조수진·전주혜 의원의 대화 장면을 촬영한 것이 ‘사적 대화 몰래촬영’이라며 용 의원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여야 경색 국면이 이어지며 모든 현안을 뒤덮은 ‘블랙홀’이 되면 쟁점법안 처리는 계속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이 안전운임제 일몰조항 연장과 노조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버티기’를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법안 논의가 뒤로 밀리면 법 통과는 갈수록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 중인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 개정안을 논의 안건에도 올리지 않고 있다.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논의를 거부 중이다. 국민의힘은 30명 미만 사업장에 8시간 추가연장근로를 2년 연장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논의하지 않으면 환노위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 정의당이 1일 오전 국회 앞 농성장에서 신년 인사회를 열었다. <남윤희 기자>
▲ 정의당이 1일 오전 국회 앞 농성장에서 신년 인사회를 열었다. <남윤희 기자>

국민의힘은 ‘버티기’ 중,
민주당 ‘강경론’으로 흐름 변화할까

정황상 법안 합의처리는 불가능해 보인다. 현재 국민의힘 처지에서 추가연장근로를 연장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정부가 올해부터 30명 미만 사업장이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어겨도 처벌하지 않는 계도기간을 1년간 두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몰된 30명 미만 사업장 추가연장근로제도 2년 연장안을 ‘꼼수’로 연장하는 것이다.

합의를 강조하던 민주당은 강경 입장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는 모습이다. 1월 임시국회에서는 강행처리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안전운임제를 연장하는 내용의 화물자동차법 개정안에는 단독 본회의 회부 입장을 내비친다. 국회법 86조(체계·자구의 심사)는 법안이 법사위에 계류된 지 60일 이상이면 소관 상임위원회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본회의에 바로 상정할 수 있다. 민주당은 실제로 정부가 초과생산된 쌀을 의무매입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지난달 28일 국회법 86조에 따라 본회의에 상정했다.

환노위에서 ‘합의 처리’를 강조하며 논의되지 않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에도 변화 기류가 감지된다. 민주당 정책위원회는 노조법 개정안을 성안해 박래군 운동본부 공동대표와 2일 면담한다. 민주당이 운동본부와 법안을 논의한 뒤 노조법 개정안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민주당 당론법안이나 마찬가지 역할을 할 전망이다. 운동본부는 민주당 안을 보고 추후 입장을 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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