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 기자

#1_202304131044_안전은 없다

4월13일 오전 중형 세단에 몸을 싣고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린다. 운전석에는 정태호(37) 공공노련 희망노조 위원장이 앉았다. 북충주IC 인근의 식당을 목표로 이동 중이다. 그곳에서 고속도로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만나기로 했다.

“(고속도로 통행료수납시스템 유지관리를 하는) ITS 노동자가 우리 조합원이지만 저도 사실 그들이 하는 일을 직접 본 적이 없어요.” 정 위원장이 말문을 연다. 고개를 주억거린다. 정신은 차창 밖 풍경에 팔려 있다. 서울을 나선 지 한 시간여. 터널 하나를 빠져나오자 눈에 들어온 것은 차선을 바꾸라는 화살표 표시를 뒤에 매단 정비차량이다. 갓길에 정차한 정비차량 위로 회사로고가 박힌 조끼를 입은 노동자가 위태롭게 시설물에 매달려 있다.

“평소 저런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정 위원장은 눈에 띄게 당황한다. 전방을 주시하던 눈이 기자가 바라본 풍경에 닿는다. “어? 저렇게 하는 거 아닌데?”

정 위원장이 당황한 이유는 안전설비 때문이다. 뼈대만 남은 것 같은 시설물의 끝에는 카메라가 달려 있다. 도로의 안전을 살피는 카메라다. 뭔가 고장이 있거나 혹은 정기 점검을 위해 ITS 노동자가 출동했다. 그런데 작업을 하려면 정비차 후방에 20~25미터 간격으로 안전고깔(라바콘)을 설치하고 그 뒤로 안전풍선까지 펼친 후 작업해야 한다. 정 위원장 목소리는 당황으로 가득하다. “저렇게 바로 올라가면 안 돼요. 뒤에 라바콘 없었죠? 위험한데? (정비를 수행하는 용역)업체가 어디야?”

#2_202304131050_상대적 박탈감 혹은 차별

고속도로라 멈추지 못한 차는 그대로 불안전한 작업장을 지나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대비되는 풍경이 나타난다. 3대가량의 안전유도차량이 줄지어 가고 있다. 맨 앞에는 도로청소용도로 보이는 정비차량이 이끌고 있다. 이번에도 묻는다. “그럼 저렇게 해야 하나요?”

정 위원장이 이번에는 혀를 찬다. “아마 한국도로공사(가 용역을 주지 않고 직접 수행하는) 작업인 모양이네요.”

도로청소용 정비차량의 뒤를 따르는 3대의 유도차량은 기골이 장대하다. 레미콘차량이 들이받아도 멀쩡할 위세다. 이런 차량이 3대나 좌우로 비켜 가라는 화살표를 번갈아 점등하면서 움직인다. 정 위원장은 말한다. “저런 차량을 아까 작업하는 데 (원청인 도로공사에) 하나라도 보내 달라고 요청하지만 묵묵부답이죠. 아까 작업하는 데 보세요. 안전풍선부터 정비차까지의 거리가 150미터 정도 되겠지만 고속도로에서 그 거리는 순식간이죠. 졸음운전, 음주운전 같은 것까지 생각하면….” 같은 통행료수납시스템 유지관리 업무인데도, 도로공사가 직접할 때와 용역업체가 할 때는 안전관리에 차이가 난다.

정 위원장의 말을 들으며 시선은 자동차 계기판에 꽂힌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제한속도인 110킬로미터를 가리키고 있다. 제한속도가 110킬로미터인 고속도로에서 안전유도장비는 고작 150미터 거리. 아찔했다. 그 사이 정 위원장은 차선을 바꿔 정비차량을 추월한다.

▲ 이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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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_202304131052_도로 위의 밥벌이

이번엔 또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줄지어 달리는 레미콘과 운송트럭이다. 정오에 이르지 않은 낮시간, 고속도로 위의 차량 3대 중 2대는 레미콘이나 운송트럭 같은 대형차다. 정 위원장이 말한다. “고속도로에서 밥벌이하는 사람들이 많죠?” 통계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도로 화물운송 비율은 92.8%다. 대부분 화물이 고속도로 화물노동자를 통한다는 이야기다.

화물노동자를 보기 위해 인근 졸음쉼터를 찾았다. 그러나 졸음쉼터에서 주차한 화물차가 많지는 않았다. 차량좌석에 기댄 화물노동자에게 눈길이 머물렀지만 차마 졸음을 이기지 못한 화물노동자를 깨워 묻진 못한다. 그의 안전을 바랐다.

정 위원장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졸음쉼터가 생각보다 깨끗하죠? 2019년 톨게이트 노동자가 정규직 전환하고 도로공사가 그들에게 졸음쉼터 관리를 맡겨서 그래요. 그 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죠. 여전히 용역을 써서 졸음쉼터를 관리하는 민자고속도로와 비교하면 천차만별이에요.”

#4_202304140941_보이지 않아도 없는 건 아니다

그러고 보니 고속도로에 진입할 당시 톨게이트에는 노동자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 위원장의 차량이 하이패스 차로를 통과하기도 했지만, 이미 무인발권기가 보급됐기 때문이다. 지능화 고속도로를 보급한다는 정부 목표 아래 고속도로에서 노동자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톨게이트에서 직접 노동자가 요금을 징수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한국도로공사 자회사인 한국도로공사서비스 소속 노동자는 톨게이트의 무인발권기 관련 민원을 해소하기 위해 톨게이트 바로 옆 사업소에서 대기한다. 무인발권기를 조작하다 잘되지 않으면 어김없이 호출이다. 그러면 사업소에서 대기하던 노동자가 잔돈을 들고 뛰어나가야 한다.

이날도 이런 장면을 목격했다. 대형 트럭 운전자는 한참을 무인발권기와 씨름하더니 그대로 서행해 갓길에 차를 세웠다. 뒤이어 사업소에서 뛰어나온 여성 징수원에게 댓거리를 했다. 여성은 잔돈 얼마를 움켜쥔 채 그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어야 했다. 정 위원장은 “만만한 징수원에게 소리치고 화내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무인발권기는 한 대에 1억5천만원 정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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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_202304131211_중대재해처벌법 효과

북충주IC 인근에서 한 무리의 ITS 노동자를 만났다. 희망노조 조합원이다. 다소 어색한 인사가 한 차례 돈다. 받은 명함보다 준 명함이 많아 명함통이 허전할 때쯤 이야기가 시작한다.

“저희가 하는 일이 좀 낯설죠?” 노조 해당 지역 지회장 ㄱ씨의 말이다.

ITS 업무는 크게 두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하나는 톨게이트의 정보통신 장비를 점검하고 다루는 요금소 업무다. 또 다른 하나는 고속도로상에 설치된 정보통신 장비를 점검하는 업무다. 보통 한 지역지사에 두 업무를 하는 노동자 4~7명이 근무한다. 각각의 업무는 성격이 달라 구분돼 있지만 비상시에는 협력하기도 한다.

이들은 용역 입찰시 과업지시서에 따라 정해진 정비 업무를 매일 실시한다. 고속도로에는 1킬로미터마다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도로의 상태를 점검하고 교통량을 파악하기 위한 카메라다. 이 밖에도 구간마다 설치된 긴급전화도 이들이 점검해야 할 몫이다. 일과시간에 하루 정해진 구간의 카메라 같은 장비를 정비한다. 그러다 고장통보를 받으면 수리를 하러 이동한다. 곳에 따라 다르지만 하루에 100킬로미터 이상 고속도로 구간을 누빈다고 한다.

가장 어려운 것은 터널 안에 있는 정보통신 장비다. 터널에는 갓길이 없기 때문에 차량을 통해 진입할 수 없다. 터널 안에 있는 긴급 대피로에 정비차량을 세울 수 없다. 그럼 어떻게 정비할까.

“걸어갑니다.” 귀를 의심했다. 수킬로미터 터널을 한번 다녀오면 녹초가 된다고 한다. 터널 천장에 붙어 상·하행을 가리키는 화살표도 이들의 점검 대상이다. 긴급전화도 물론 이들의 몫이다. 지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터널 안에 졸음을 쫒기 위해 울리는 소리 있죠? 터널에서 작업을 하고 나오면 그 소리가 이명으로 울려요. 어려움을 호소하는 노동자가 많지만 터널 진입 경로가 따로 없으니까요.”

문득 궁금해 “날씨가 궂을 때도 일하느냐”고 물었다. 다행히 아니라는 대답이 나왔다. 그렇지만 뒤를 이은 답변은 씁쓸했다. “그나마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뒤에 없어졌죠. 그전에는 궂은 날씨라도 지시가 내려오면 해야 했어요. 벼락이 칠 때 하늘로 뻗어 있는 철제장비에 올라가 점검을 했죠. 토사붕괴 위험이 있거나 다치기 십상인 상황이어도 시키면 했어요. 원청에서 그걸 바랐으니까요. 관리자에 따라 다르지만 그렇게 하려고 용역을 쓴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법이 제정되니까 바뀌었죠. 요새는 상황이 좋지 않아 다음에 (점검)하겠다고 하면 그러라고 해요.”

긴급보수 요구도 있다. 그러면 일과가 끝난 뒤에도 일해야 한다. 주말에는 당직을 세우는데, 말이 당직이지 사실상 하루 근무를 더 하는 셈이다. 중대재해처벌법도 이런 원·하청 관행을 바꾸진 못했다.

#6_202304131404_요금소 업무

그렇다면 요금소 ITS 업무는 어떨까. 자리를 옮겨 또 다른 중부내륙고속도로 지사 사업소를 방문해 이야기를 들었다. 터널처럼 이동할 일이 많지 않으니 좀 낫지 않을까. 웬걸. 신체적으론 덜 피로할지 몰라도 정신적 스트레스는 커 보였다. ITS 요금소 업무를 7년째 담당한 ㄴ씨의 말이다.

“요금부과는 도로공사의 가장 큰 수입원이잖아요. 라인이 하나라도 막히면 큰일 납니다. 바로 고쳐야 해요. 밤이고 낮이고 없죠. 밤에 동료들과 회식하다가 호출에 뛰어오는 경우도 많아요. 당장 수입이 줄어드는 것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긴 하죠.”

하이패스 차로에서 특히 카메라 역할은 중요하다. 오류가 나 하이패스 인식이 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럴 때 카메라는 요금이 부과된 차량과 되지 않은 차량의 영상을 각각 따로 저장한다. 제아무리 빠른 속도의 차량이라도 카메라에는 잡힌다. 요금을 부과하지 않은 차량은 따로 차량번호를 식별해 미납요금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잡혀야 한다.

문제는 종종 카메라 표면에 얼룩이 있거나 다른 이유로 통신망에 장애가 생겨 제대로 찍히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비상이다. 요금소에서 일하는 ITS 노동자는 일종의 비상대기조인 셈이다. 그렇지만 정작 요금소에서 도로공사 직원을 보긴 쉽지 않다.

#7_202304131424_목격

이들과 헤어져 또 다른 취재장소로 이동하는 길. 정 위원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저긴가?” 직진 방향의 앞쪽, 터널의 입구에 안전모를 쓰고 회사로고가 찍힌 조끼를 입은 노동자가 경광봉을 위 아래로 흔들고 있었다. “터널 점검을 한다더니 저긴가 봅니다.” 정 위원장이 또 다시 말했다. 그 터널은 ITS 노동자들이 작업을 꺼리는 곳이라고 했는데 보자마자 단박에 이해가 갔다. ITS 노동자가 타고 온 차량은 노동자들이 작업하는 곳 반대편 차로 갓길에 정차돼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사이에 횡단보도는 없다. 차가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 터널 앞을 무단 횡단해 카메라를 점검해야 한다. 그런 작업장소가 지사마다 몇 곳 있다고 했다. 당연히 기피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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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_202304131803_값싼 안전, 그리고 효율화

“애초에 위험하지 않게 오른쪽에 카메라를 설치하면 안 됩니까?”

저녁에 다시 만난 ㄱ씨에게 대뜸 그것부터 물었다. 고속도로 안전을 위한 장비를 점검하는 노동자의 안전은 왜 고려하지 않을까. 답변은 다른 노동자 ㄴ씨가 했다. 내용은 허탈했다. “터널의 진행 방향상 오른쪽에 설치하면 사각이 생겨요. 하나 더 설치하면 되겠지만, 그럼 돈이 들잖아요.”

저녁 간담회에는 20여명의 노동자가 참여했다. 모두 희망노조 조합원이다. ITS 업무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가 태반이다. 가장 경력이 짧은 노동자가 7년차인 ㄴ씨다. 가장 오래된 노동자는 1997년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 설립 때부터 일한 노동자다. 공단은 한국도로공사가 100% 출자해 설립한 공공기관이다. 고속도로 ITS 업무의 시작점이다. 공단은 5년간 존속하다 당시 정부의 공공기관 민영화 정책에 따라 팔렸다. 이를 인수한 게 대보그룹이다. 대보그룹은 공단을 인수해 DB정보통신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다시 대보정보통신으로 명칭을 바꿔 지금에 이르렀다.

대보정보통신은 2002년부터 5년간 독점적인 고속도로 ITS 사업권을 누렸다. 그러나 이후 시장 점유율을 낮추는 정책이 추진됐고 경쟁입찰을 시작하면서 현재는 5개의 기업이 나눠 먹는 형세다. 대보의 점유율은 60% 수준이라고 한다.

“허수예요.” 19년간 대보정보통신 노동자로 일한 ITS 노동자 ㄷ씨가 말했다. 그는 20년을 채우지 못하고 최근 다른 기업으로 이직했다. 하는 일, 일하는 장소는 같은데 조끼만 갈아입었다.

ITS 업무가 입찰시장에 진입하면서 대보정보통신을 제외한 4개 업체가 뛰어들고, 현장은 근속이 중요하지 않게 됐다. ㄷ씨는 운 좋게도 19년간 대보정보통신이 도맡았던 사업소에서 일할 수 있었지만, 최근 도로공사 지역지사들이 요금소와 고속도로 정보통신 장비 유지·보수 업무를 따로 떼어 입찰을 붙이기 시작했다. ㄷ씨가 일하는 곳은 요금소 업무와 고속도로 정보통신 장비 업무를 2개 회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했다. 대보정보통신이 낙찰받지 못하면서 그는 자리를 지키려면 용역업체로 옮겨야 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보정보통신이 낙찰받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한다. 그 사업장이 전주가 될지, 원주가 될지, 경주가 될지는 모른다. 그래서 대보정보통신 20년 근속을 코앞에 두고 옷을 갈아입었다. ㄷ씨는 웃으며 말했다. “1년만 더 일하면 근속포상을 받을 수 있는 정규직이었는데 1년짜리 신입사원이 된 거죠.” 같이 웃을 순 없었다.

허수라는 이야기는 뭘까. 대보정보통신 외에 사업권을 나눠 갖은 4개 기업 중 2곳의 최대주주가 대보정보통신 회장의 가족이다. 3곳 점유율을 합하면 다시 80%가량이라고 한다. 여전히 독과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9_202304140929_소송이 바꿨다

최근에는 변화가 감지된다. 다음날 아침 방문한 다른 사업소에서 정 위원장이 말했다. “소송 이후에 많은 게 바뀌었죠.” ITS 노동자 93명은 희망노조와 함께 2018년 대구지법 김천지원에 도로공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추진된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서는 3단계에도 들지 못했지만, 정작 대구지법 김천지원은 소송에서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2021년 2월의 일이다. 이후 소송이 급증했다. 김천쪽 소송이 2심에 계류 중인 사이 수원에서도 소송을 제기해 이겼다. 노동자 ㄹ씨가 말했다. “김천 소송 당시 ITS 노동자는 직접고용 대상이 아니라며 사용자쪽 증인으로 나섰던 관리자들이 이제는 자기들도 도로공사 근로자라며 소송을 제기하고 있어요.”

소송 이후 도로공사 소속 현장 관리자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고 한다. “그전에는 그냥 불러다 이야기하거나 전화로 지시하면 됐는데 이제는 지휘·감독 관계를 부정해야 하니까 그렇게 못하는 거죠. 어떤 관리자는 ‘이러면 일을 어떻게 하라는 거야’라며 불만을 제기하기도 해요. 우리가 아니라 사용자쪽에요. 애초에 용역으로 떼어낼 수 없는 일을 해 왔다는 거 아니겠어요?” 말하는 ㄹ씨의 목소리가 명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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