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띵동” “띵동, 띵동”

엘리베이터 도착 알림음이 끊임없이 울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가고 또 다른 무리가 들어간다. 청년들도 더러 보이지만 중장년 층이 다수다. 머리가 희끗한 사람도 쉽게 볼 수 있다.

직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엘리베이터 맞은편 사무실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발열 여부를 체크하기 바빴다. 올해 들어 최고치를 찍은 기온 탓에 에어컨을 틀어 창문은 대부분 닫혀 있다. 사무실은 방문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아휴~ 1구간, 2구간이 있는데, 복잡해.” 중년 여성이 행사장을 나오며 휴대전화 너머로 이야기했다. 혼란스럽기는 직원들이나 방문객들이나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지난 22일 오전 10시께. 서울 노원구 서울북부고용센터(소장 노의석) 10층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상담·신청 접수장 풍경이다.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은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줄어도 고용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프리랜서·영세 자영업자·무급휴직자에게 정부가 지원하는 돈이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사람에게 3개월 동안 150만원을 지급한다. 정부는 이날부터 전국 고용센터에서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오프라인 신청 접수를 시작했다.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접수 첫날 600명 센터 찾아

코로나19는 시민의 생계를 위협했다. 비정규·간접고용·특수고용·영세 사업장 노동자, 프리랜서를 비롯한 우리 사회 취약계층부터 차례로 쓰러뜨렸다. 수익이 반토막 나고, 실직을 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들은 고용센터로 모여들었다. 이곳에 오면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이며 실업급여며 구직촉진수당이며 최소한의 생계비라도 손에 쥘 무언가가 생겼다. 고용센터 이용객 폭증은 코로나19 위기의 깊이를 방증한다. 아픔의 크기는 가장 아래쪽에 눌린 이들이 컸다. 누군가는 이를 빗대 “이곳에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다 오는 것은 아니다”며 “솔직히 이곳에 삼성 직원들이 올 가능성은 적지 않느냐”고 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2일과 24일 코로나19 사태를 온몸을 맞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 모이는 곳, 고용센터를 취재했다. 고용노동부는 고용복지플러스센터 98곳, 고용센터 2곳, 울진출장소 1곳 등 전국 101곳의 고용서비스 기관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고용센터는 실직자에게 생계안정을 위한 구직급여와 재취업 지원, 교육을 비롯한 종합고용서비스를 제공한다. 노동부는 고용센터를 2014년부터 고용서비스와 사회복지서비스 상담·신청, 서민금융지원까지 한 곳에서 하는 고용복지플러스센터로 전환했다. 서울북부고용센터·서울서초고용센터를 제외한 나머지 고용센터를 고용복지플러스센터로 전환했다.

서울북부고용센터는 서울 노원구·성북구·도봉구·강북구·중랑구 주민·사업장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관할 범위도 넓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즐비한 주거지역이어서 방문객이 많은 편에 속한다. 1·2·4층은 실업급여팀이, 3층은 취업지원팀이, 5·6층은 취업성공패키지팀이, 7층은 직업능력개발·부정수급조사팀이, 8층은 기업지원팀이 사용하고 있다. 다목적 행사장인 10층은 현재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상담·신청 접수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고용센터 방문객은 코로나19 이후 대폭 늘었다. 노의석 소장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방문객 증가율이 많게는 전년 동월 대비 40%까지 높아졌다”며 “요일별로 들쭉날쭉하긴 하지만 하루에 방문하는 인원이 최소 2천명은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 정기훈 기자


특히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온 방문객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정점으로 치닫던 3월에는 실업급여 수급을 위해 방문한 이들이 하루 1천명을 넘을 때도 있었다. 그만큼 실직한 사람이 많았다는 의미다. 음식·숙박업·도소매업을 비롯한 서비스 분야에서 방문객이 늘었다. 노의석 소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특히 대면 업무를 많이 하는 업종에 종사했던 분들이 센터를 많이 찾았다”고 설명했다.

22일 오프라인 접수를 시작한 긴급고용안정지원금에 신청자가 몰렸다. 서울북부센터에만 첫날 600명 정도가 찾았다. 둘째 날과 셋째 날 각각 450명, 500명가량이 방문했다. 고용센터에서는 컴퓨터·모바일 활용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서류를 확인하고 온라인으로 업로드해 준다. 서류를 갖추지 못한 이들에게 보완할 부분을 알려 준다. 지원금 지급업무는 지급센터에서 한다. 공공연대노조 고용노동부지부 관계자는 “노동부가 사무실을 두 달 정도 임대해 지급센터를 만들고, 고용센터 공무원과 계약직이 해당 업무를 맡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취업성공패키지·고용유지지원금을 비롯해 기존 제도 신청을 위해 고용센터를 찾는 이들도 늘었다.

직장 폐업·계약만료·코로나19로 실직

서울북부고용센터를 찾은 민원인들은 대부분 직장 폐업이나 계약만료 같은 이유로 실직했거나, 코로나19로 수익이 반토막 난 이들이었다. 24일 오후 5층 상담실 밖 의자에서 대기하고 있던 60대 남성 ㄱ씨는 지난해 9월 다니던 직장이 폐업해 일자리를 잃었다. 코로나19 때문은 아니었지만 ㄱ씨 생계에 빨간불이 켜졌다. 실업급여 수급 뒤에 취업성공패키지 상담실 문을 두드린 이유다. 취업성공패키지는 저소득 취업취약계층에게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취업한 경우 취업성공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다. 프로그램 참여 기간 동안 저소득층 구직촉진수당이나 참여수당을 받을 수 있다. “3차 상담이 끝나니 15만원을 주더라고요. 다음달 취업이 안 되면 또 수당이 나온다고 했어요. 9월까지 취업이 안 되면 그 이후로는 수당은 없고, 대신 몇 개월간 취업 알선은 해 준다고 해요.”

ㄱ씨가 스마트폰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이야기하다가 무언가를 찾았는지 문득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지금 여기 지원해 보려 해요. 건물 경비. 워크넷에 떴네.” ㄱ씨는 “이곳 직업상담원들이 ‘워크넷’ 앱을 깔아 줘서 그걸로 직장을 알아보고 있다”며 “우리같이 컴퓨터에 약한 사람들한테는 이런 것까지 자세히 알려 준다”고 말했다.

10층 접수장 앞 의자에서 만난 청년 ㄴ씨는 일용직으로 일하던 중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고 한다. ㄴ씨는 “온라인을 통해 혼자 필요한 서류를 챙기는 과정에서 헷갈리는 부분이 있어 전화 상담을 시도했지만 이용객이 많아 번번이 실패했다”며 “이곳에서는 친절하게 상담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층 접수장 안 의자에서 번호표를 뽑고 순번을 기다리고 있던 중년 남성 ㄷ씨는 방과후강사를 하다가 코로나19로 수업이 없어지면서 고용센터를 찾았다고 했다.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제도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도 만났다. 접수처 앞 게시판에 붙은 지원금 소개 포스터를 보고 있던 중년 여성 ㄹ씨는 “1구간 대상자의 경우 소득·매출이 25% 이상 감소하면 받을 수 있다고 나와 있다”며 “설명대로라면 400만원 벌다가 200만원으로 소득이 감소한 사람은 지원금을 받지만, 100만원 받다가 90만원으로 소득이 줄어든 사람은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고용유지지원금 관련 업무를 하는 8층에는 의외로 방문객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 직원은 “기업을 지원하는 팀이다 보니 온라인이나 팩스 등 비대면으로 접수받고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북부고용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고용유지지원금 신청 건수는 한 자릿수였는데, 올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지금까지 지원금 신청이 1천800건 정도로 늘었다. 이 중 실제 지급을 실행한 비율은 55% 정도 된다고 한다.

최일선에서 일하는 직업상담원은 못 받는 ‘민원수당’

고용센터가 실업시대 버팀목 역할을 해내는 동안 직원들 노동강도는 높아졌다. “업무 폭탄을 맞았다”거나 “전쟁통 같다”는 호소가 잇따른다.

지역 고용센터들은 1~3개월짜리 계약직을 투입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고 있다. 서울북부고용센터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시적으로 추가된 업무인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접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센터는 계약직 7명을 추가로 고용해 10층에 배치했다. 고용유지지원금·지급센터 업무 등 코로나19 사태 이후 추가되는 업무를 위해 공무원·직업상담원들이 차출됐다. 기존 부서에 남은 직원들은 인력충원 없이 남은 업무를 떠맡았다. 새 업무에 투입된 직원들 또한 높은 노동강도를 호소했다.

경기도의 한 고용센터 직업상담원 ㅂ씨는 “긴급고용안정지원금 같은 경우 서류가 워낙 복잡하다 보니 직원들이 민원인들 한 분 한 분 붙들고 달려들어서 일일이 설명해 드리고 서류도 스캔해 주고 있다”며 “한 분에게 소요되는 시간이 최소 20분은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해당 지원금 업무엔 처음엔 공무원만 투입됐는데 지금은 직업상담원도 대면 상담이 없을 땐 가서 붙들고 해야 하는 분위기여서 본연의 업무는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업무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지부에 따르면 노동부는 최근 지급센터 업무를 다음달 1일부터 고용센터가 분담하도록 하겠다고 통보했다. 지원금 지급 지연이 속출하면서다. 지부 관계자는 “지부뿐 아니라 다른 노조들도 거부 의사를 밝혔다”며 “다음달부터 시행될지는 그때 가 봐야 안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높은 노동강도는 코로나19로 극대화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고용센터 내부의 “고질적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직업상담원 ㅂ씨는 “실직 등 정서적으로 예민하고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분들인 만큼 행정절차를 이야기할 때도 신경을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한다”며 “감정노동도 심하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로 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직업상담원들도 있었다. ㅂ씨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힘든 사람들이 오다 보니까 조건이 안 돼 지원을 못 받으면 소리 지르고 욕하는 분도 있다”며 “우울증으로 퇴사한 분도 있고 스트레스로 산재를 인정받은 분도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직업상담원은 “대부분 직업상담원들이 크든 작든 비슷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그 힘듦이 좀 크면 아픔으로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력이 부족해 마음대로 휴가나 병가를 내기도 힘든 상황이라는 토로도 나왔다.

그래서일까. 직업상담원 몇 명에게 “노동부에서 자신들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나”라고 물었더니, “고용센터 최일선에서 일하는 사람들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지만 대우를 못 받고 있다”거나 “총알받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직업상담원은 무기계약직이다.

지부는 처우개선을 요구했다. 공무원과 일하고 있지만 급여가 낮고, 각종 수당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지부 한 관계자는 “직업상담원들은 고용센터 상담창구 최일선에 있으면서도 상담담당 공무원들이 받는 민원수당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올해 교섭에서 사측은 0.5% 임금인상안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지부는 지난 5월부터 노동부와 2020년 임금·단체협상을 하고 있다. 지부는 임금인상과 인력충원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같은 상황이 오고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일자리를 연계해 주는 직종의 인력이 많이 필요한데 현재는 부족한 상황”이라며 “직업상담원 같은 직종의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정기훈 기자


“일자리 찾기 늘어나는데…”

노의석 소장은 “사람은 많을수록 좋다”며 “그래야 담당자들도 여유가 생겨 민원인들도 세밀하게 보고 서비스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도 강조했다.

그는 고용센터를 추가 설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코로나19 이후 경제위기 관련 현안을 담당하는 3개 부처(보건복지부·노동부·중소벤처기업부) 중 복지부가 2차관 제도를 신설하고,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기로 한 것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시민들의 접근성과 서비스 질을 위해 고용센터를 늘려야 한다”며 “학교에서 한 선생님당 학생수가 몇 명이냐에 따라 교육의 질이 달라지듯 고용센터도 주민수 대비 몇 곳이 있느냐에 따라 서비스 질이 달라질 수 있다” 말했다. 서울시 25개구에 있는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고용센터는 9곳에 불과하다. 노동부는 하반기 전국 시·군에 중형고용센터·출장소 72곳을 추가 설치한다고 지난 25일 밝혔다. 내년 1월부터 국민취업지원제도까지 추가 담당하려면 인력증원과 서비스 기관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다. 노의석 소장은 “고용센터는 우리 사회 가장 어려운 분들을 위한 버팀목 중 한 곳”이라며 “많은 분들이 오는 고용센터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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