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어도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노동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셨다고 말은 해줄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내가 살려내라고까지는 하지 않겠다. 명예회복만 할 수 있게 해 달라.”

화학노련에서 해고된 뒤 복직투쟁을 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민한홍 조사통계부장의 유가족들이 24일 오후 화학노련을 방문해 박헌수 위원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고 민 전 부장의 둘째형인 준홍씨(42)는 이같이 호소하며 ‘민 전 부장에 대한 복직과 명예회복’을 촉구했다. 그는 “동생이 연봉 2천만원을 받으며 노조활동을 하느라고 죽어서도 남은 건 빚뿐이 없다”며 “이런 뜻을 살려, 죽었어도 가는 길은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다그쳤다.

박헌수 위원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자리에 않아 이같은 항의를 묵묵히 들었으나 끝내 유가족들의 항변에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화학노련은 25일 오전 10시30분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고 민한홍 전 부장의 죽음에 대한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민한홍 대책위, 한국노총 앞 집회

이에 앞서 ‘노동운동가 고 민한홍 동지 명예회복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정오께 여의도 한국노총 건물 앞에서 집회를 열고 ‘화학노련 지도부의 사죄와 민 전 부장에 대한 명예회복’을 촉구했다.

이 집회에서 화학노련 산하 두산산업개발노조 신현만 위원장은 “노동단체에서 결국 한 젊은 노동운동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비난하며 “화학노련은 이에 응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로 힘을 모아 민 전 부장이 편안하게 저 세상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정문주 한국노총 활동가노조 위원장(금속노련 정책실장)도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가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을 갖고 있을 것”이라며 “우리가 그동안 부조리와 비민주적인 일들에 대해 규탄해 왔던 만큼 내부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 스스로가 칼을 대며 반성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에는 화학노련 단위노조 위원장 10여명과 한국노총 중앙 및 산하노련 간부 등 모두 70여명이 참석했으며 이들은 25일 정오에도 재차 집회를 열기로 했다. 또한 대책위는 이날 오후부터 한국노총 1층에 천막을 치고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대책위 한 관계자는 “25일 화학노련 중앙집행위원회가 열리는 만큼 이 회의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촉구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 것”이라며 “만약 중집에서도 이같은 요구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투쟁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 적극적 해결책 마련 못해 '반성'

한국노총도 이날 이에 대한 공식성명을 내어 고 민한홍 전 부장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했다. 한국노총은 성명을 통해 “그가 죽기 전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해 소중한 활동가를 잃도록 만든데 대해 뼈저리게 반성하고 유가족들의 용서를 빈다”며 “그의 죽음을 비통한 마음으로 애도하며 마흔 나이에 젊디젊은 가장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노총 산하 조직에서 이같은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조직 안팎의 문제점을 면밀히 되짚어 볼 것”이라며 “고 민한홍 전 부장의 삶이 정당하게 평가받고 명예롭게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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