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L 평택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끼여 숨진 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강동석 전 SPL 대표이사(오른쪽)가 21일 오후 수원지법 평택지원에서 열린 첫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빠져나가고 있다. <바른미디어 제공>

2022년 10월 SPC 계열사인 SPL 평택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끼여 숨진 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강동석 전 SPL 대표이사측이 첫 공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중대재해 사건의 첫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강 전 대표는 재판 이후 취재진의 수차례 질문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기소조차 되지 않아 법정에 서지 않았다.

5월21일 생산라인 3명 증인신문 예정

강 전 대표측은 수원지법 평택지원 형사6단독(박효송 판사) 심리로 21일 열린 중대재해처벌법(산업재해치사) 위반·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업무상과실치사 혐의 1차 공판에서 “피고인들로서는 이 사건의 경위나, 피고인들이 지휘했던 안전보건행위들 등 사실관계와 관련 법리에 비춰 업무상과실치사·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산업안전보건 위반의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는 상당한 의문”이라며 “사실관계와 법리들이 충분히 반영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업무상과실치사로 기소된 공장장 등 3명도 법정에 섰다.

강 전 대표는 지난해 8월25일 검찰이 기소한 지 약 7개월 만에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재판 내내 갈색 재킷에 마스크를 쓰고 검사를 응시했다. 변호인의 의견 진술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강 전 대표를 변호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는 “피고인들은 인명사고가 발생하게 돼 참담하고 안타까운 심정이며, 피해자의 명복을 빌고 유족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업무 지시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를 부인했다. 박 판사의 “무죄 취지의 주장을 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변호인은 “그렇다”고 답했다.

이에 검찰은 SPL 평택공장의 생산직 노동자 3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피해자와 같은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며 사고를 최초로 발견한 직원과 다른 라인의 근무자 2명이다. 이날 재판은 검사의 공소사실 설명과 변호인의 의견서 진술, 절차 진행 과정 정도만 확인한 뒤 약 17분 만에 종료됐다. 박 판사는 5월21일 공판을 속행하고 직원 3명에 대한 증인신문을 검찰과 변호인측 각각 30분씩 진행하겠다고 했다.

화섬식품노조 관계자들이 21일 오후 수원지법 평택지원에서 열린 강동석 전 SPL 대표이사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첫 공판 직후 강 전 대표를 향해 “사람을 죽여놓고 그렇게 뻔뻔하게 혐의를 부인하느냐”며 항의하고 있다. <바른미디어 제공>
▲ 화섬식품노조 관계자들이 21일 오후 수원지법 평택지원에서 열린 강동석 전 SPL 대표이사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첫 공판 직후 강 전 대표를 향해 “사람을 죽여놓고 그렇게 뻔뻔하게 혐의를 부인하느냐”며 항의하고 있다. <바른미디어 제공>

 

노동자들 “뻔뻔” 대표는 ‘묵묵부답’ 일관

노동자들은 강 전 대표측의 ‘무죄’ 주장에 분개했다. 임종린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 등 노조 관계자 2명은 이날 재판을 방청하며 변호인이 혐의를 부인하는 발언을 하자 “아”하는 탄식을 내뱉었다. 재판 직후에는 퇴정하는 강 전 대표를 향해 “사람을 죽여 놓고 그렇게 뻔뻔하게 혐의를 부인하느냐. 사람이 뻔뻔하면 안 된다”고 외쳤다. 하지만 강 전 대표는 침묵하며 빠르게 법정을 빠져나갔다.

강 전 대표는 취재진의 질문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끼임사고가 12번 있었는데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했나” “검찰 혐의를 부인하는가” “안전조치의무를 다 했나” 등 취재진 질문에 모두 침묵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불기소에 대한 입장 요청에도 아무런 대답 없이 다급히 걸음을 옯겼다. 강 전 대표측 변호사도 “사실관계를 인정하지 않느냐”는 <매일노동뉴스> 질문에 “사건이 진행 중이라 답변하기에 곤란하다”며 자리를 피했다.

‘12번 끼임’에도 허영인 회장은 ‘불기소’ 면피

강 전 대표 기소는 이른바 ‘피 묻은 빵’ 불매 운동을 불러일으킨 사고로 촉발됐다. SPL 평택공장 노동자 A(사망 당시 23세)씨는 2022년 10월15일 야간 근무를 하면서 샌드위치 소스를 배합하던 중 혼합기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검찰은 A씨가 혼합기 사용방법과 안전수칙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은 채 혼합기를 사용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파악했다. 혼합기에는 ‘손접촉 금지’ 등 기본적인 안전수칙과 관련한 스티커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내용물 확인을 위해 덮개가 개방된 채 혼합기가 가동되는 경우가 많았던 점도 사고 위험성을 높였다고 봤다. 특히 최근 3년간 SPL 평택공장에서 발생한 12건의 끼임사고가 ‘설비 작동 중 손투입’이 원인으로 지목됐는데도 작업안전표준서가 없었고, 2인1조 근무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에 검찰은 강 전 대표를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으로 재판에 넘겼다. 구체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4조가 정한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의무 △재발방지대책 수립 및 이행의무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 조치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대표 취임 후 반복적인 끼임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안전수칙 교육이나 가동 정지 방호장치를 설치 않아 근본적인 예방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복 사고에 대해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사유로 기소된 첫 번째 사례다.

하지만 강 전 대표와 함께 고발된 허영인 SPC 회장은 검찰이 무혐의 처분해 논란이 일었다. 검찰은 SPC와 SPL을 별도 법인으로 보고 허 회장이 아닌 강 전 대표를 실질적이고 최종적인 ‘경영책임자’로 봤다. 이날 재판에 참석한 SPC 홍보팀 관계자는 “불기소에 대한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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