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10개월 새 기계 끼임사고로 두 명의 노동자가 숨지면서 ‘죽음의 빵’이라는 비판을 받은 SPC그룹(회장 허영인)이 안전 투자 1천억원을 당초 계획보다 6개월 앞당겨 2년6개월 안에 집행한다. 하지만 사망사고를 부른 장시간·야간노동 문제 해결은 여전히 외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20일 <매일노동뉴스>가 확보한 ‘SPC그룹 안전 강화 방안’에 따르면 SPC그룹은 “교대제 개편 목표시기는 노사합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 시기나 방식이 현재로선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다는 뜻이다. 26일 열리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하는 허영인 SPC그룹 회장에 집중 질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환노위 여당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노동부 국감에서 이강섭 샤니 대표에 의원들의 지적에 대한 답변을 정리해 18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고 SPC그룹은 ‘SPC그룹 안전 강화 방안’이란 문서를 환노위 의원실에 제출했다.

후순위로 밀려난 안전강화 대책 ‘근로환경’

SPC그룹은 재발방지대책 9가지를 제시했는데 이 중 근로환경 개선은 제일 후순위였다. 사업장 내 주야 맞교대 근무를 최소화하기 위한 TFT를 ‘사업장 상황에 따라’ 운영하고 있고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해 해결책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SPC는 “현실상황을 반영해 (현장·노조와) 계속 논의 중”이라며 “교대제 개편 목표시기는 노사합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하겠다고 했다. “근무시간보다 급여수준이 중요" “임금 감소 없는 교대제 개편 요구” “3교대 실행시 인력수급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음” “인건비 부담”과 같은 ‘현장, 노조 의견’을 애로사항으로 들었다. 대안 논의로 “법정 근로시간 준수가 중요”하다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해 10월15일 SPL 평택공장에서 23살 노동자 박선빈씨가 소스 배합기에 몸이 끼여 사망했지만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개선방안을 내놓지 않은 것이다. 박씨의 사고는 야간근무 종료 1시간을 앞두고 일어났고, 사고의 원인으로 장시간·야간노동이 지목됐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장시간 노동과 야간노동을 개선할 비용이나 인력에 대한 검토는 계열사별 추상적인 논의에 맡겨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전 설비 확대하면 사고 안 날 것?
“기술적 사고” 비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SPC그룹이 새롭게 공개한 재발방지대책은 안전관리 투자비 1천억원 조기 집행(3년→2년6개월) 방안이다. 허영인 회장은 지난해 10월 SPL 평택공장 사망사고로 사회적 비판을 받자 3년간 1천억원을 투자해 안전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는데 안전관리 투자비 집행 시기를 6개월 앞당긴다는 것이다.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안전투자 내역 공개 및 중간평가’도 공약했다. 안전투자 집행 내역과 주요 계열사별 투자 사례 등을 그룹사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외부 전문가의 사업장 현장 방문 및 간담회 등을 추진해 안전투자 이행을 점검하겠다는 내용이다. 대표이사의 안전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전 계열사 임원의 평가지표로 ‘법인 재해율’을 반영하겠다고 덧붙였다.

또 △테마별 수시 위험성 평가 진행 △고용노동부 인증 외부 전문기관을 통한 2년에 1번 안전진단, 화재진단 △SPC그룹의 고유한 안전보건관리를 위한 표준 기준(ISR) 개발, 내년까지 확대 적용 △전 사업장 국제표준안전보건 경영시스템(ISO45001) 도입 △안전문화 확립을 위한 교육 등을 밝혔다.

과거보다 개선된 부분은 일부 있지만 SPC그룹의 안전관리 대책이 여전히 안전설비, 안전관리조직 등 기술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권영국 변호사는 “안전센서 등 안전설비를 설치하면 안전해지겠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며 “상명하달식의 안전개선 방안으로 노동자를 안전의 주체로 보고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외부에 안전진단을 맡기거나, 노동자를 교육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전문가 “여전히 생산과 안전 분리
물량 늘면 위험도 증가”

특히 생산과 안전을 분리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권영국 변호사는 “위험을 불러오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생산관리시스템이다. 물량이 늘어나면 위험이 증가하는데, 물량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성찰이 없다”고 꼬집었다. “생산 물량과 속도가 과중하면 안전설비나 장치는 ‘장애물’로 유명무실해지기 쉽상이다”고 지적했다. 기계의 안전조치가 이뤄지더라도 회사가 안전보다 생산을 중시하는 경영시스템을 유지되는 한 노동자 혹은 관리자는 위험을 감수하고 일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는 올해 8월 샤니 성남공장에서 발생한 50대 노동자의 사망사고에서도 드러난다. 샤니는 작업표준서에 고인이 맡은 공정의 위험요소로 ‘볼 리프트 하강 시 끼임 및 충격 위험’을 명시했지만 위험에 대비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현장을 직접 보는 노동자도 대책이 아쉽기만 하다. 강규형 화섬식품노조 SPL지회장은 “SPL 공장은 실제 사고가 난 곳이라 현장이 개선되기는 했다”면서도 “여전히 연차를 제대로 못 쓴다는 이야기는 들리지만 불이익을 받을까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개선됐다고 느끼는 부분 중 상당수는 ‘비정상의 정상화’다. 가령 2시간 일하면 15분 쉬기, 위험작업은 2인1조 구성 등이다. 사고 전에는 3시간 일한 뒤 10분도 채 쉬지 못했다는게 현장노동자의 증언이다.

실제 SPC그룹은 ‘SPC그룹 안전 강화 방안’ 문서에 계열사별 안전경영 주요 개선 사항으로 ‘노동법률 준수 강화’를 버젓이 쓰기도 했다.

 

SPC그룹 안전 투자비 325억원, 어디에 썼나?

SPC그룹(회장 허영인)이 지난해 10월 3년간 안전관리 강화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1천억원 중 지난 9월까지 SPC그룹 계열사에 집행된 금액은 325억3천만원이다. 전체 금액의 3분의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어디에 어떻게 쓰였을까.
22일 <매일노동뉴스>가 확보한 ‘SPC그룹 안전 강화 방안’에 따르면 안전관리 강화 비용 중 가장 많은 금액이 사용된 곳은 안전설비 확충이다. 집행금액 3분의1이 넘는 113억원이 투입됐다. 안전발판·계단·사다리, 안전장비·보호구, 안전난간과 안전센서 등 안전장치 등에 쓰였다.
유해위험 요소가 있는 설비와 공정을 자동화하는 데에는 87억6천만원, 휴게공간 설치 및 이동통로 개선 등 작업환경 개선에 66억6천만원을 썼다. 노후장비 개선에는 37억6천만원이 쓰였다.
지난해 10월 청년 노동자가 업무 중 배합기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SPL은 배합기 상단에 안전난간대를 설치하고, 설비 방호덮개와 인터록을 설치하는 등 ‘뒤늦은 조치’를 취했다.
SPC그룹은 “지난 SPL 사고 이후 진행된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진단 조치 결과에 따라 위반된 477건 등을 모두 시정조치했다”며 “외부진단 업체 등을 통한 자체 개선도 함께 이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영인 회장은 SPL 평택공장 사고 발생 직후 3년간 1천억원을 투자해 안전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고 발생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올해 8월 샤니 성남 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노즐교체 작업 중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또 발생했다. SPC그룹은 여론과 국회의 질타를 받자 안전관리 투자 비용 1천억원을 2년6개월 동안 조기집행하겠다고 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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