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파리바게뜨 빵을 만드는 SPC그룹 계열사 SPL에서 또 끼임 사고가 발생해 50대 노동자 새끼손가락이 골절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8월 SPC 샤니 제빵공장에서 발생한 끼임 사고로 이강섭 샤니 대표이사가 국정감사에 불려 나와 사과한 지 6일 만이다. 끊이지 않는 산재사고 뒤에는 여전히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생산의 후순위로 두는 SPC그룹의 경영 방침이 있다는 비판이 높다. 실제로 매일노동뉴스가 확보한 ‘SPC그룹 안전 강화 방안’에는 두 차례 산재 사망사고의 근본원인으로 지적된 장시간·야간노동 문제 해결은 빠져 있다. ‘근로환경’ 개선 없는 안전대책으로는 산재사고를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22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8일 SPL 평택공장에서 A씨가 포장기계에 새끼손가락이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포장기계에서 작업 중이던 A씨는 장치의 간격이 벌어지자 이를 조정하려 수동으로 기계를 조작하던 중 기계에 장갑이 말려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강규형 화섬식품노조 SPL지회장은 “체인벨트에 말린 새끼손가락이 부서졌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사고가 난 시각은 새벽 3시쯤이다. 주야 맞교대로 운영하는 제빵공장에서 주의력이 떨어지는 심야시간대 발생한 ‘전형적인 SPC식 산업재해’다.

근로환경 개선, 9개 재발방지대책 중 가장 후순위

환경노동위원회의 요구로 SPC그룹이 국회에 제출한 ‘SPC그룹 안전 강화 방안’에 따르면 SPC그룹은 “교대제 개편 목표시기는 노사합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 시기나 방식이 현재로선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다는 뜻이다.

지난해 10월15일 SPL 평택공장에서 23살 노동자 박선빈씨가 소스 배합기에 몸이 끼여 사망했지만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개선방안을 내놓지 않은 것이다. 박씨의 사고는 야간근무 종료 1시간을 앞두고 일어났고, 사고의 원인으로 장시간·야간노동이 지목됐다.

SPC그룹은 산재 재발방지대책 9가지를 제시했는데 이 중 근로환경 개선은 가장 후순위다. 사업장 내 주야 맞교대 근무를 최소화하기 위한 TFT를 ‘사업장 상황에 따라’ 운영하고 있고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해 해결책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SPC는 “현실상황을 반영해 (현장·노조와) 계속 논의 중”이라며 “교대제 개편 목표시기는 노사합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하겠다고 했다. “근무시간보다 급여수준이 중요” “임금 감소 없는 교대제 개편 요구” “3교대 실행시 인력수급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음” “인건비 부담”과 같은 ‘현장, 노조 의견’을 애로사항으로 들었다. 대안 논의로 “법정 근로시간 준수가 중요”하다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담았다.

안전투자 1천억원 중 325억원 집행
2년6개월 조기집행 내세웠지만…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3년간 안전관리 강화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1천억원 중 지난 9월까지 SPC그룹 계열사에 집행된 금액은 325억3천만원이다. 안전설비 확충에 집행금액의 3분의1이 넘는 113억원이 투입됐다. 안전발판·계단·사다리, 안전장비·보호구, 안전난간과 안전센서 등 안전장치 등에 쓰였다. △유해위험 요소가 있는 설비와 공정을 자동화에 87억6천만원 △휴게공간 설치 및 이동통로 개선 등 작업환경 개선에 66억6천만원 △노후장비 개선에는 37억6천만원이 쓰였다. SPL의 경우 배합기 상단에 안전난간대를 설치하고, 설비 방호덮개와 인터록을 설치하는 등 ‘뒤늦은 조치’를 취했다.

이번에 SPC그룹이 새롭게 공개한 재발방지대책은 안전관리 투자비 1천억원 조기 집행(3년→2년6개월) 방안이다.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안전투자 내역 공개 및 중간평가’도 공약했다. 안전투자 집행 내역과 주요 계열사별 투자 사례 등을 그룹사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외부 전문가의 사업장 현장 방문 및 간담회 등을 추진해 안전투자 이행을 점검하겠다는 내용이다. 대표이사의 안전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전 계열사 임원의 평가지표로 ‘법인 재해율’을 반영하겠다고 덧붙였다. 과거보다 개선된 부분은 일부 있지만 SPC그룹의 안전관리 대책이 여전히 안전설비, 안전관리조직 등 기술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안전설비 확충 넘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 만들어야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안전센서 등 안전설비를 설치하면 안전해지겠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며 “상명하달식의 안전개선 방안으로 노동자를 안전의 주체로 보고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외부에 안전진단을 맡기거나, 노동자를 교육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권 변호사는 “위험을 불러오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생산관리시스템이다. 물량이 늘어나면 위험이 증가하는데, 물량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성찰이 없다”고 꼬집었다. “생산 물량과 속도가 과중하면 안전설비나 장치는 ‘장애물’로 유명무실해지기 쉽상이다”고 지적했다. 기계의 안전조치가 이뤄지더라도 회사가 안전보다 생산을 중시하는 경영시스템을 유지하는 한 노동자 혹은 관리자는 위험을 감수하고 일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는 올해 8월 샤니 성남공장에서 발생한 50대 노동자의 사망사고에서도 드러난다. 샤니는 작업표준서에 고인이 맡은 공정의 위험요소로 ‘볼 리프트 하강 시 끼임 및 충격 위험’을 명시했지만 위험에 대비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현장을 직접 보는 노동자도 대책이 아쉽기만 하다. 강규형 SPL지회장은 “SPL 공장은 실제 사고가 난 곳이라 현장이 개선되기는 했다”면서도 “여전히 연차를 제대로 못 쓴다는 이야기는 들리지만 불이익을 받을까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개선됐다고 느끼는 부분 중 상당수는 ‘비정상의 정상화’다. 가령 2시간 일하면 15분 쉬기, 위험작업은 2인1조 구성 등이다. 사고 전에는 3시간 일한 뒤 10분도 채 쉬지 못했다는게 현장노동자의 증언이다.

실제 SPC그룹은 ‘SPC그룹 안전 강화 방안’ 문서에 계열사별 안전경영 주요 개선 사항으로 ‘노동법률 준수 강화’를 버젓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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