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동자 황유미씨가 급성 백혈병을 진단받은 2005년 이후 19년이 지났다. 황씨 이후에도 삼성 전자계열사 노동자의 산재사망은 끊이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될지 모르는 산재사망을 노동자 스스로 끊기 위해 반올림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지난해 7월18일부터 8월18일까지 한 달간 삼성전자·삼성SDI·삼성전자서비스·삼성전자판매 노동자의 건강과 노동환경실태를 조사했다. 연구진의 글을 네 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

2007년 3월6일 고 황유미님이 백혈병으로 사망한 이후 삼성 직업병 문제는 큰 사회적 문제가 됐다. 11년의 긴 투쟁과 1천23일의 농성 끝에 2018년 반올림과 삼성이 직업병 문제 해결방안에 합의하면서 삼성전자의 작업환경에도 여러 변화들이 있었다. 유해화학물질 사용금지·대체 방안이 실행되고 설비차폐와 국소배기시설이 개선되는 등 실질적인 변화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위험작업을 외주화하며 문제를 더욱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기는 일도 동시에 진행됐다. 최근 십여 년간 설비 자동화의 급격한 도입은 제조 생산직군이 급감하는 등 노동자 비율을 변화시켰고, 노동안전보건환경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삼성전자 직업병으로 알려진 것은 주로 암과 희귀질환에 국한돼 있었고, 최근에야 근골격계 질환·뇌심질환 등의 문제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번 연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전반적인 건강실태를 파악해 개선과제를 도출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761명의 설문응답과 6명의 면접조사, 직업병 피해사례 3건을 분석했다. 직군·사업장별 분석을 추가해 위험군을 찾았고, 환경부가 공개한 삼성전자 사용화학물질에 대한 유해성을 조사했다.

임금노동자 평균보다 아프다

조사결과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건강상태가 임금노동자 혹은 일반인구 평균과 비교해보니 심각함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근골격계 질환 유증상자 비율이 81.4%로 임금노동자 평균인 38%의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특히 제조 생산직군과 광주사업장에서는 치료가 필요한 질환의심자(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 기준 3)의 비율이 35%를 넘어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수면장애 비율은 임금노동자 평균에 비해 2.5배에서 3.7배까지 높았다. 우울장애 유병율이 있는 노동자가 절반에 가까워 일반인구 18.4%의 두 배를 훌쩍 넘는 비율이었고, 지원 사무직군(G직군)이 가장 심각했다. 충격적인 것은 자살충동, 자살계획, 자살시도 등 자살 관련 응답의 비율이 일반인구의 5~10배로 높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얼마나 위태로운 수준인지를 알 수 있었다.

고강도 노동·성과 압박에 쉬지 못 해

‘노동강도가 강하다’고 답변한 경우가 절반을 넘었고 제조생산직군과 설비유지·보수 직군에서는 60%를 넘었다. 업무 후에 육체적으로 종종 혹은 항상 지친다는 응답이 30%를 넘었고, 특히 제조생산직군은 절반을 넘었다. 업무 후 정신적으로 종종 혹은 항상 지친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는데, 그중에서도 연구개발직군은 60%를 넘는 위험군이었다. 3분의 2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성과압박을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고, 성과압박 자신의 작업속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노동자가 절반을 넘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25.9%로 임금노동자 72%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아파도 출근하는 프리젠티즘 비율은 임금노동자 11%에 비해 5배가량 높게 나타났다. 자신이 쉬면 일에 차질이 빚어지거나 동료들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질병을 진단받은 뒤 치료받지 않는 비율이 3분의 1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

노동강도 강화 요인으로는 ‘고과제도’와 함께 부족한 인력, 과도한 업무량, 장시간 노동, 업무시간 후 내려지는 업무지시 등 ‘인력부족으로 인한 과도한 업무량’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혔다. 노동환경 개선과제에서도 역시 인력충원, 근무시간 단축, 휴가 확대 같은 요구와 함께 고과제도 개선·폐지 및 ‘노동자의 의견이 존중되는 노사관계 구축’이 가장 많이 선택됐다. 고과제도는 경쟁을 부추기고 노동자들의 제도개선 요구를 통제하며 임금과 노동조건을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삼성노동자들의 위태로운 건강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적정인력을 충원해 노동강도를 줄이고, 징벌적 하위고과를 폐지하는 등 고과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다.

전자산업 ‘위험의 외주화’

화학물질의 유해성 조사 결과, 휴대폰·가전·배터리 부문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이 반도체 부문보다 낮지 않았다. 발암물질 등 독성물질 사용비율은 오히려 반도체 사업장보다 더 높았다. 본인 혹은 가까운 동료 중에 암, 희귀질환 사례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반도체 사업장(4.4%~7.0%)보다 가전(12.2%)과 휴대폰 사업장(15.0%)에서 높다는 점은 눈여겨볼 지점이다. 독성물질 대체·설비차폐·국소배기시설 등 삼성전자의 화학물질 관리는 반도체 부문에 집중돼 있는데, 반도체를 넘어 전 사업장과 계열사로 확대해야 한다.

설비자동화로 설비 차폐와 국소배기시설이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반도체 칩 공장이 아닌 가전, 휴대폰, 배터리 및 전자재료(SDI) 사업장, 반도체 패키지 사업장은 여전히 부족했다. 반도체 칩 공장에서도 분석실, 개발라인, 노후화된 라인 등 자동화의 사각지대가 있었다. 설비를 해체하고 작업하는 설비유지·보수 업무가 진행될 때 화학물질에 고농도로 노출되는 상황에 대한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에서는 가장 위험한 설비유지·보수 업무가 빠르게 외주화되고 있었다. 외주화는 물량압박, 속도압박에 취약해 위험한 작업을 감수하게 한다. 위험소통을 차단해 위험을 키우는 한편, 위험개선 작업을 더디게 만든다. 사고발생시에도 위험을 키우는데, 최근 삼성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의 희생자는 모두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위험작업은 외주화가 아니라 관리강화로 대처해야 한다.

 

자동화와 노동자 감소, 인력부족으로 과로

삼성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기반으로 2009년에서 2022년까지 노동자 구성의 변화를 살펴봤다. 이 기간에 삼성전자의 매출은 139조원에서 281조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고, 영업이익은 11조6천원에서 36조6천원으로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제조노동자는 계속 증가하다가 2015년에서 2017년 정점을 찍은 후 꾸준히 감소추세에 있다. 2017년 20만명을 넘었던 제조노동자는 2022년 말 12만명 아래로 감소했다. 특히 여성 제조노동자는 7만명에서 2만명으로 감소했다. 설비를 가동하며 제품을 생산하던 여성 제조노동자들이 설비자동화로 인해 가장 많이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평택의 최신 반도체공장에서는 한참 돌아다녀도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자동화는 노동강도를 줄일 수 있는 기회였지만, 삼성은 고용을 줄였을 뿐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인력부족에 따른 과로로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고과제도는 고통에 대한 항의를 막고 있다. 삼성은 고용을 늘려 노동자들의 과로를 해결하고, 고과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지난 3일 속초에서 고 황유미 17주기 및 반도체 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제가 있었다. 유미씨가 계신 울산바위 옆 작은 언덕에는 눈이 무릎 높이까지 쌓여 있었고, 유미씨 영정 앞에 ‘삼성 노동안전보건실태 보고서’를 놓고 추모와 다짐의 마음을 나눴다. 지금까지 삼성노동자들의 건강권 투쟁은 직업병 피해자와 가족, 법률·의학, 산업보건 전문가들, 활동가들과 연대하는 시민들이 만들어 왔다. 이제 삼성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삼성노동자들의 건강권 투쟁 시즌2는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삼성노동자들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반올림은 그 옆에서 조력자로서 역할을 다할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