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청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삼성전자 노동자 황유미씨가 급성 백혈병을 진단받은 2005년 이후 19년이 지났다. 황씨 이후에도 삼성 전자계열사 노동자의 산재사망은 끊이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될지 모르는 산재사망을 노동자 스스로 끊기 위해 반올림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지난해 7월18일부터 8월18일까지 한 달간 삼성전자·삼성SDI·삼성전자서비스·삼성전자판매 노동자의 건강과 노동환경실태를 조사했다. 연구진의 글을 네 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삼성전자서비스 소속으로 직접 고객의 집을 방문하거나 센터에서 고객의 가전제품을 수리하는 노동자, 자재 업무 및 상품 판매노동자, 방문고객의 휴대폰 수리 접수를 담당하는 노동자, 일반 행정업무를 담당하며 기술력 향상 교육 및 현장업무 보조를 담당하는 노동자, 그리고 고객 문의사항 상담 및 방문수리 접수를 하는 콜센터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했다. 총 894명의 응답을 분석했고, 4명을 면접조사했다.

근골격계 질환 유증상자 93.1%
노동자 대부분 고객 대면·상담, 감정노동 ‘주의군’

조사결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육체적·정신적으로 매우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음을 확인했다. 높은 노동강도는 이들의 몸 전신에 걸쳐 통증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목, 어깨, 팔·팔꿈치, 손목·손가락, 허리, 무릎·다리, 발·발목 각 부위에 느끼는 근골격계 통증 유무를 조사했다. 또 통증의 지속 기간, 빈도, 강도, 최근 증상 유무를 확인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허리, 어깨, 목 순으로 통증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허리는 응답자의 약 27%, 어깨는 19%, 목은 16%에게서 질환을 의심할 정도로 심각한 근골격계질환 증상을 보여 즉각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 집에서 에어컨 수리를 할 때 용접 장비, LPG, 용접봉, 마스크, 헬멧, 안전띠까지 20kg이 넘는 장비를 들고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냉장고·세탁기·건조기 등 대형 가전제품을 수리할 때 특히 부담이 크다. 쪼그려 앉거나 누워서, 기어 들어가서도 제품을 확인하는데 “공간이 안 나오는 고객 집에서 불편한 자세로 오래 작업하면” 특히 아프다고 호소했다. 이들이 요통·상지통증·하지통증 중 1개 이상 통증을 느끼는지 물은 결과 93.1%가 유증상자로 나왔다. 전체 임금노동자들의 비율 38%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한편으로는 응답자 중 대다수가 직접 혹은 전화상 고객을 응대하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조절해야 하고, 고객이 부당하거나 폭력적인 언행을 보여도 참고 일하는 때가 많다. 노동자들은 감정조절 노력 및 다양성, 고객응대 과부하 및 갈등, 감정부조화 및 손상, 조직의 지지 및 보호체계 등에서 높은 비율이 ‘주의’군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 경험 역시 심각하게 나타났다. 노동자들은 고객의 정신적·성적 폭력과 직장내 정신적·성적 폭력에도 상당 수준 노출된다는 점이 확인됐다. 면접 참가자들에 따르면 고객 중 폭언을 하거나 부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의 비율이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니다. 한 면접자는 체감상 10% 정도 되는 고객이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지만 그런 고객을 응대한 뒤에는 ‘데미지’가 남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서비스 콜센터 노동자들은 경고 후 전화를 끊을 수 있다. 이런 조치에 더해 그런 고객을 응대한 뒤 업무를 멈추고 잠시라도 휴식을 취해 환기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직접 대면 노동자에게도 전화 상담노동자에게도 필요한 조치일 것이다.

절반 가까이 우울 증세, 10명 중 7명 수면장애

수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비율이 72.32%로 전체 임금노동자 15%에 비해 5배 가까이 높았고, 우울 증세 역시 46.37%로 일반 인구 18.4%에 비해 높았다. 자살 생각, 계획, 시도에서도 일반 인구보다 비율이 높아 위험 신호를 보이고 있었다. 한편 노동자들은 자신의 업무가 제대로 평가받고, 고객의 예측할 수 없는 평가 등 노동자 귀책이 아닌 것은 평가에 포함하지 않는 방향으로 평가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동자들이 회사에 의견을 개진하기 어려운 현실, 적절히 평가받지 못하는 문제 등을 개선해 직무 스트레스나 우울증으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육체적·정신적으로 고된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업무상 원인으로 사고나 질병을 경험하지만, 산재신청을 한다는 응답률은 매우 낮았다. 산재신청을 했다는 응답은 사고에서 3.82%, 근골격계질환에서 1.21%였다. 반면 본인 부담은 사고에서 58.78%, 근골격계질환에서 66.75%로 나타났다. 결국 노동자 스스로, 또는 회사의 다른 제도를 이용해 치료비를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자들에게 산재신청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한 노동자의 권리임을 알리고, 절차도 설명해야 한다.

이와 함께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하기 위한 방법을 배울 안전보건교육이 충실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답이 57.82%로 높게 나왔다. “온라인 교육의 한계, 교육 내용이 적절하지 않거나 교육에 집중할 시간을 내기 어려워서”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노동자들은 답했다. 한 면접 참가자의 말처럼, 센터별로 시간을 정해 함께 모여 진행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 업무에 필요한 교육내용을 정하고 강사를 선정할 때 노동조합이 사측과 적극적으로 논의하는 것도 필요하다.

노동자들 2인1조 작업 원해, 인력충원 시급

현재 방문 수리노동자들은 60분에 1개 가구를 방문하고 있다. 갈수록 제품이 커지고 복잡해져 수리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한 가구당 수리시간을 현실에 맞게 더 늘려야 한다. 또 성수기에는 노동강도가 심각하게 올라가는데, 이때 노동강도를 낮추기 위해 성수기를 기준으로 인력충원 등 방안이 필요하다. 성수기에 손상된 건강이 비성수기에 갑자기 좋아질 수 없고 노동자 몸에 남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자들이 강조한 것은 상시 2인1조 작업이었다. 지금은 1인 작업이 기본이고 필요할 때에만 2인이 출장하고 있는데, 에어컨 실외기 수리 중 추락 위험을 방지하고 고객의 부당한 요구나 폭언·폭력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상시 2인1조 작업이 중요하다. 노동자들이 아플 때 충분히 치료받고 휴식을 취하기 위한 방안으로도 인력충원은 가장 시급한 사안이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 삼성전자서비스 현장은 노동강도는 매우 높지만 건강권을 우선으로 삼는 노동현장은 아니라는 점이 확인됐다. 노동강도와 작업환경의 기준은 노동자의 몸이 돼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직접 참여해 스스로의 위험을 제거하고 작업방식을 개선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이 실태조사 결과를 발판 삼아 노동조합과 사측이 함께 바꿔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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