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동자 황유미씨가 급성 백혈병을 진단받은 2005년 이후 19년이 지났다. 황씨 이후에도 삼성 전자계열사 노동자의 산재사망은 끊이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될지 모르는 산재사망을 노동자 스스로 끊기 위해 반올림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지난해 7월18일부터 8월18일까지 한 달간 삼성전자·삼성SDI·삼성전자서비스·삼성전자판매 노동자의 건강과 노동환경실태를 조사했다. 연구진의 글을 네 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이종란 반올림 상임활동가
▲ 이종란 반올림 상임활동가

3월6일은 고 황유미님의 17주기 추모일이었다. 2007년, 스물세 살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삼성반도체 노동자 황유미의 억울한 죽음에 응답하며 같은해 11월 반올림이 발족했다. 그 뒤로 17년이 흘렀고, 반올림의 직업병 투쟁은 반도체 사업장을 넘어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건강권 확보를 위한 활동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중이다. 노동자들의 단결 역사에도 큰 진전이 생겼다. 삼성의 무노조경영이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무너지고 민주노조가 세워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삼성의 전자계열사 노조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고자 공동 노동안전보건사업을 시작했다. 실태조사의 결과는 믿기 힘들 정도로 심각했다. 이 글에서는 삼성SDI 조사결과를 소개해 본다.

배터리사업장 화학물질 43종 중 발암물질 10종

삼성SDI는 천안·울산사업장에서 IT기기·전기차 등에 사용되는 배터리(2차전지)를, 청주와 구미사업장에서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용 전자재료(소재)를 생산한다. 생산·사무·연구개발 직군 등 국내 외 3만여명(국내 1만1천여명)이 고용돼 있다. 이번 조사에는 비록 많은 수는 아니지만 10~20년 경력의 제조직군 노동자들이 설문 및 면접조사 방식으로 주로 참여했다. 소수이지만 여성 비생산직 노동자도 있었다. 사용 화학물질 유해성 조사도 실시했다.

조사결과 삼성SDI는 인체에 치명적인 발암성·생식독성·생식세포변이원성(CMR) 물질 사용 비중이 높았다. 취급 비율로만 보면 반도체 사업장보다도 높다. 배터리 사업장은 총 43개의 단일 화학물질을 사용하는데(2020년 화학물질종합정보시스템 등록 물질 기준), 발암물질만 10종이다. 핵심 재료는 폐에 치명적인 물질들로, 니켈(불용성무기화합물), ‘산화 코발트 리튬 망간 니켈(NMC)’등 폐암 유발 발암물질들이다. 반도체 공장에서 사라진 아세톤을 포함해 NMP(1-메틸-2-피롤리디논), 카보네이트 계열 용매 같은 생식독성 물질도 8종이나 사용한다. 편광필름을 제조하는 청주사업장에서는 삼성전자에서는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노말헥산(N-헥산)과 사용제한 물질인 톨루엔 등을 취급하고 있다.

삼성은 이번 조사결과가 공개되자 급히 뉴스룸을 통해 배터리 생산에 “필수불가결하게 사용되는 화학물질”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다. 또 “사용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엄격히 통제된 작업환경에서 안전하게 사용되고 있느냐가 문제”라며 “관련 규정과 법률을 철저히 준수해 임직원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CMR 물질 노출로 코피·두통·어려움증 호소

하지만 엄격하게 사용한다는 삼성의 주장과 달리 노동자들은 분진이 사방에 날리고 화학용액에 심각하게 노출되는 환경을 증언하고 있다. NMP·전해액 등 CMR 물질 노출 실태는 심각했다. 심한 냄새로 코피도 나고, 유지·보수시 NMP에 노출돼 신발과 라텍스 장갑이 녹았다. 전해액 노출로 역한 냄새와 함께 두통·어지럼증이 나타나고 살갗이 벗겨지고 지문이 없어졌다. 전해액은 흘러넘치고 분진형태의 활물질은 사방에 퍼져서 작업복이 시커멓게 되는 현실이다. 이외에도 용접 흄, 고온 작업, 마킹 용액 등 노출원도 다양했다.

밀도계·엑스레이 등 방사선 기기 사용, 노후 설비 위험(고온 건조로 배기 역류), 추락 위험(10년 전 협력업체 노동자 사망, 현재도 안전장치 미비), 끼임, 베임, 절단, 지게차 충돌, 빠른 로봇 속도에 의한 충돌 등 크고 작은 안전사고 경험들도 많았다.

직업성 암 의심 사례나 사망 사례도 적지 않았다. 배터리 공정 담관암 사망, 양극공정 암 사망, 연신공정 암 사망, 배터리 공정 폐암 발병, 해외 근무 중 과로로 인한 심혈관질환 사망, 협력업체 추락 사망, 성과압박으로 인한 연구개발 노동자의 자살 등 심각한 중대재해 의심 사례들이 산재신청조차 안 된 채 묻히고 있었다.

근골격계질환 발생도 임금근로자 평균보다 두 배나 높았다. 무거운 배터리 등 중량물 취급으로 어깨연골 파열, 허리디스크, 손목터널증후군과 같은 근골격계질환이 발생해도 산재신청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리튬이온배터리 제품 특성상 화재 발생과 연기 흡입 같은 경험도 상당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불이익이 우려돼’ 산재를 신청하지 못했다. 특히 병가나 산재를 신청하면 하위 고과를 받아 왔다. 그 결과 삼성SDI 지속가능경영보고서(2023년)에서 공표하는 2022년 재해건수는 국내외를 합해 총 2건(국내 2건, 국외 0건), 재해율은 0.007%로 극히 낮았다. 대부분의 산재가 은폐되고 있는 것이다.

‘아프면 쉬기’는 남일 프리젠티즘 64.5%

노동강도 체감도 또한 높았다. 노동자들은 노동강도 강화 원인으로는 성과압박을 가져오는 ‘고과평가’ 문제와 ‘인력부족’ 문제를 꼽았다. 특히 제조직군은 인력부족으로 장시간, 불규칙한 역방향 교대 등 무리한 교대근무로 힘들어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수면장애, 우울증세, 자살 관련 경험 비율이 임금근로자(2020년 근로환경조사) 평균보다 월등히 높았다. 아프지만 출근하는 ‘프리젠티즘’도 64.5%로 임금근로자 평균(11%)을 웃돌았다. 수면장애는 응답자의 77%가 호소할 정도로 심각했다. 이는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 직무스트레스 요인들에 더해 무리한 주야간 교대근무로 생체리듬이 파괴돼 얻게 된 산업재해다.

삼성SDI 노동자들이 처한 유해·위험요인들이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확인한 만큼 회사는 종합적인 개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작업환경상 문제 개선뿐 아니라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서 너무도 절실한 적정인력 확보, 충분한 휴식의 부여, 아프면 쉴 권리의 보장, 고과제도 개선이 수반돼야 한다. 삼성이 대외적으로 표방하듯이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영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무엇보다 회사는 노조를 더 이상 배제하지 말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 각종 안전보건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끝으로 삼성SDI가 주력으로 생산하는 2차전지는 제조과정에서 화재·폭발 위험이 크고 유해물질 취급 비율도 높다. 전기자동차·IT기기 수요 급증으로 2차전지 산업 비중은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그런데도 2차전지 제조공정 노동자들을 위한 안전보건 매뉴얼이 국가 차원에서 마련되지 않았다. 노동자들에게 꼭 필요한 안전보건 매뉴얼 개발을 서둘러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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