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삼성전자에서 일하던 노동자 ㄱ씨는 과거 납품업체의 공장을 돌리기 위해 특근을 간 경험이 있다. 부도 난 해당 업체의 라인이 멈춰 급파됐다. 단순한 작업으로 알았는데 ㄱ씨와 함께 간 노동자 3명이 모두 다쳤다. 심지어 ㄱ씨는 손가락이 잘렸다. ㄱ씨는 붕대를 감고 출근을 했는데, 다른 작업을 하기 어려워 야간 청소만 2~3주를 도맡아 했다. 그랬더니 인사고과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등급(Need Improvement·NI)을 연거푸 받았다. 안전사고를 당해 일을 제대로 못했는데도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은 셈이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사업주가 산업안전 책임을 다하지 않은 수준을 넘어 노동자의 정신을 시나브로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3일 <매일노동뉴스> 취재 결과 직업성 암과 유해물질, 근골격계질환에 노출된 삼성 전자계열사 노동자들이 심각한 자살위험에도 시달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과도한 성과 압박과 이에 따른 정신건강 위협이 삶의 포기라는 극단적 결과까지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4개 사업장 노동자 절반 ‘우울증’
삼성전자 자살 충동 일반 시민 9배

반올림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지난해 8월8일~9월15일 진행한 ‘삼성 전자계열사 노동안전보건실태 조사연구보고서’를 보면 삼성전자 노동자 가운데 9.3%는 최근 1년간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했고, 2.5%는 자살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세워봤고, 1%는 실제 자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편차는 있지만 삼성SDI·삼성전자서비스·삼성전자판매도 유사하다.<그래프 참조>

자살률이 높기로 유명한 우리나라 평균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국립정신건강센터(2021)의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반 인구 기준 1년간 자살을 생각한 비율은 1.3%, 계획을 세운 비율은 0.5%, 실제 시도는 0.1%로 편차가 크다. 특히 삼성전자 내 지원 사무직군만 떼어 보면 1년 내 자살 고려 비율은 4명 중 1명(28.1%)으로 일반 임금노동자 21.6배에 달했다. 왜 이럴까.

우선 삼성 전자계열사 4곳 노동자의 정신건강이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우울증세를 느끼는 노동자 비율이 절반을 넘거나 육박했다. 삼성전자서비스 46.4%, 삼성전자판매 69.5%, 삼성SDI 46.7%, 삼성전자 45.8%다. 이는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에서 나타난 일반 시민 우울장애유병률 7.7%를 훨씬 상회한 수치다.

서비스·제조 모두 성과 압박 시달려

삼성전자서비스와 판매쪽 노동자는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ㄴ씨는 “제품이 고장 났는데 화가 나니까 기사를 불렀고, 그러니 기사에게 화풀이를 한다”며 “(고객의 폭언에 대해) 맞대응하면 말꼬리를 잡기 때문에 무표정하게 응대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힘들고 긴 업무도 원인이다. 삼성SDI 한 노동자는 “생산설비 입고 뒤 안정화와 설비 개선, 같은 생산설비 셋업 작업시 거의 하루 종일 현장 근무를 한다”며 “평일 12시간, 주말 9시간 주 6일을 일하는데 일부는 일요일에 출근해 주 7일을 일하기도 한다”고 장시간 노동을 호소했다.

그런데 이것만으론 삼성의 ‘특별함’을 설명하기 어렵다. 원인은 더 있다. 4곳 계열사 노동자들이 가리키는 것은 성과 압박이다.

삼성전자 매장에서 일하는 또 다른 노동자 ㄷ씨는 “판매 매출 인센티브와 판매 품목 인센티브가 있고 성과가 나쁘면 인사고과가 낮아져 관리자의 압박이 심하게 들어온다”며 “물건 구매 뒤 온라인 쇼핑몰 후기 작성을 고객에게 요청해야 하고 다른 상품과 연계한 상품 판매를 종용해 판매실적을 압박한다”고 설명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성과 압박의 대상이다. 매출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공장노동인데도 삼성전자와 삼성SDI의 성과급 비중은 각각 26%와 16.2%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이 체감하는 수준은 다르다. 한 노동자는 “임금과 고과제도에서 성과에 따른 격차가 너무 심하고, 고과가 임금과 연결돼 사람들 간 ‘집안싸움’이 일어나고 불화가 생겨 능률이 더 떨어진다”고 말했다.

“‘4시간 노동, 30분 휴게’도 몰랐다”

실제 삼성전자서비스와 삼성전자판매 노동자 대다수(각각 86.6%·92.9%)가 업무 성과 압박을 느꼈지만 삼성SDI와 삼성전자 노동자도 절반 이상(각각 64.7%·68.8%) 같은 압박을 받았다. 성과 압박 때문에 제대로 일하기 어렵다는 노동자도 삼성전자서비스 57.1%, 삼성전자판매 67.1%, 삼성SDI 58.9%, 삼성전자 58.4%로 모두 절반을 넘겼다.

이런 성과 압박은 휴식도 어려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ㄷ씨는 “4시간 일하면 휴식시간 30분이 있다는 것을 최근 처음 알았다”며 “점심시간 1시간도 안 지켜지는데 휴식시간 30분을 근무시간에서 빼 일찍 퇴근하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2년째 공회전”이라고 털어놨다.

휴식이 어려운 것은 아플 때도 마찬가지다. 삼성 전자계열사 4곳에서 아파도 출근하는 노동자 비율을 살펴보면 삼성전자서비스 78.7%, 삼성전자판매 77.7%, 삼성SDI 64.5%, 삼성전자52.8%다. 정부가 3년마다 조사하는 근로환경조사(2021) 임금근로자 평균 11%와 비교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노동자들은 고과제도를 개선해 달라고 호소했다. 특히 징벌적 하위고과제도를 꼽았다. 징벌적 하위고과제도란 ㄱ씨 같은 사례다. 안전사고를 당하고도 산재는커녕 인사고과에서 낮은 등급을 받는 일이 반복되면서 산재를 신청할 수 없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는 산재를 신청하지 않는 이유로 “불이익을 우려해서”라는 답을 47.4%로 가장 많이 꼽았다. 삼성전자·삼성SDI·삼성전자판매 노동자는 산재를 신청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로 “불이익을 우려해서”(각각 26%·47.4%·33.3%)라고 답했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이런 징벌적 하위고과는 삼성 전자계열사 곳곳에서 문제로 지적됐다. 한 삼성전자 판매노동자는 “점장이 직원들에게 대놓고 ‘너 이렇게 하면 고과 점수 안 줘’라고도 한다”고 털어놨다. 삼성SDI 노동자도 “로봇에 손등이 찍혀 핏줄이 드러날 정도로 다쳤지만 병원 가서 꿰메고 병가 없이 출근했다”며 “당시 분위기나 안전의식에서 그 이상 조치는 어려웠고, 지금도 고과에 신경을 쓰면 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병가와 출산휴가, 육아휴직 사용자에게 하위고과를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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