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상시근로자 50명(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건설현장)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2년간 적용유예하는 개정안은 25일 본회의에 오르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법은 27일 전면 시행된다.

여야 원내대표는 본회의 중에도 회의장을 나와 김진표 국회의장실에서 회동했지만 입장은 평행선을 그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요구하는 연내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를 국민의힘이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노동계는 “여야가 작은 사업장 노동자 생명을 가지고 정치 공방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야는 법 시행 이후인 다음달 1일까지도 적용유예 가능성을 열어놔 현장의 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본회의 중에도 만나 협상했지만 ‘평행선’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계속해서 만나 협상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본회의가 열리기 전인 오전 회동에서 결론을 내지 못한 이들은 오후에 본회의가 열리고 난 후에도 만나 회동했지만 협상은 불발했다.

불발된 핵심 이유는 민주당의 법 적용유예 논의 조건으로 내건 연내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11월부터 정부의 사과와 산업안전보건청의 연내 설립을 포함한 정부의 구체적 안전계획, 2년 뒤 적용유예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재계의 약속을 들고 나왔다. 국민의힘은 연내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는 무리한 요구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여야가 갈등을 빚은 본질은 ‘책임소재 공방’이다. 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중소기업과 노동자 표심을 잡아야 하는 민주당으로서는 ‘민주당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전면적용으로 기업에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평가와 ‘민주당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또 2년 유예해 노동자 안전을 방기했다’는 평가 모두를 피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중소기업과 노동계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는 ‘조건부 논의’ 카드를 던진 것이다.

정부가 산업안전보건청 안을 받는다면 중소기업계에는 2년간 적용유예로 부담을 덜어주고, 노동계에는 노동자 안전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외피를 덮어쓸 수 있다. 정부가 안을 받지 못해도 민주당으로서는 ‘정부 책임’을 더 크게 부각할 수 있기 때문에 손해볼 게 없다. 다만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을 보이려면 마지막까지 협상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재계 표심을 살피는 여당 역시 마지막까지 협상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을 취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협상을 하려는데, 먼저 대화의 문을 닫아버렸다는 평가를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당 원내대표는 이날 회동 이후에도 협상은 이어진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양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본청에서 회동 직후 기자들의 ‘산업안전보건청 안을 못 받겠다는 거냐’ ‘협상에 진전은 있느냐’ ‘오늘이라도 여야 합의가 타결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의에 모두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국회의장, “대통령 경호원 과도한 대응”
입장표명에 국민의힘 반발

한편 이날 본회의 시작 전 김진표 국회의장이 강성희 진보당 의원 사태에 대통령 경호처를 비판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국회의원은 한 사람이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으로, 대통령 경호원들의 이와 같은 과도한 대응이 재발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와 정부는 국정운영 파트너인데도 서로를 배타적으로 적대하는 정치문화가 극심해지고 있다”며 “국회도 정부에, 정부도 국회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실망스럽다” “뭐가 과도하다는 것이냐”는 야유가 나왔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후 기자들에게 “특정 정당을 중심으로 국회의장이 나서서 발언하는 게 바람직한지, 국회의장의 중립 의무를 지키는 것인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성희 진보당 의원은 신상발언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의원 입을 막은 게 아니라 국민의 입을 막은 것이다”며 “사과하고, 국정 기조를 바꿔 이념과 정쟁 아닌 민생 살리는 힘을 모으겠다고 말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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