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균재단이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인근에서 고 김용균 산재사망 책임자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원청에 사실상 ‘면죄부’를 준 법원 판결에 가장 힘이 빠지는 이들은 여전히 위태로운 노동환경에 처해 있는 김용균의 동료들이다. 당정이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경상정비 분야는 고용안정성을 강화한다는 내용의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을 발표한 지 2년2개월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한전산업개발 재공영화, 예비실사도 마무리 못해

13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전력이 자유총연맹 보유 한전산업개발㈜ 지분 31%를 인수하는 과정은 아직까지 예비실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 노·사·전문가 협의체는 2020년 5월 한전산업개발 재공영화를 통한 정규직화 방안을 결정했다. 한전은 지난해 1월 한전산업개발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자유총연맹에 기업가치 실사를 제안했다. 하지만 자유총연맹이 ‘실사 전 가격제시’를 요구하면서 협상은 한동안 교착 상태에 빠졌다.

한전과 자유총연맹은 예비실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하고 지난해 12월7일 주식 양수·양도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당초 지난달 7일까지 예비실사와 가치평가를 진행하고 같은달 14일까지 본실사와 가격협상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예비실사도 마무리하지 못했다. 양측이 올해 상반기 내에 가치평가와 본실사를 거쳐 가격협상까지 끝낼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한전 관계자는 “변수가 많아서 일정을 맞추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는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노무비 중간착취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이유로 발전산업 적정노무비 지급 시범사업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규직 전환 과정이 지체되면서 노무비 착복 문제가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발전 5사와 기존 업체들이 정규직 전환을 이유로 3·6개월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면서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용불안도 가중되고 있다.

발전 5사 ‘공동수급 의무화’ 추진
“영세업체 난립으로 위험의 외주화 초래”

경상정비 분야는 공동수급 의무화라는 암초에 부닥쳤다. 경상정비용역 입찰에 2개 이상 사업자가 공동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공동수급 의무화 제도가 위험의 외주화를 확산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상정비 분야 노·사·전 협의체는 지난해 2월 기본 계약기간을 기존 3년에서 6년으로 연장하고 노무비 전용계좌를 활용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이때만 해도 공동수급 의무화 문제는 쟁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신규·후발 업체가 경상정비 분야에 진입하기 위한 방편으로 공동수급 의무화를 요구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공동수급 의무화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노·사·전 협의체 합의사항을 반영한 신규 입찰도 지연되고 있다.

발전 5사는 최근 경상정비용역 입찰시 신규·후발업체와 공동수급체를 구성하는 업체에 가산점 2점을 부여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지난달 25일에는 신규·후발업체들을 상대로 입찰 방식에 대한 설명회도 열었다. 노·사·전 협의체에 참여 중인 한 노동자대표는 “발전 5사는 공동수급을 의무화하는 게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전체 점수에서 2점이라는 가산점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사실상 공동수급을 강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영세업체들은 안전을 위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할 여건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공동수급 의무화를 통해 현장에 영세업체가 난립하면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청년 노동자 목숨값이 2천500만원에 불과하나”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건 원·하청 책임자가 1심에서 사실상 ‘면죄부’를 받으면서 반발도 확산하고 있다. 법원은 지난 10일 원청 한국서부발전과 하청 한국발전기술 법인에 각각 벌금 1천만원과 1천500만원을 선고했다. 김병숙 전 서부발전 대표에게는 무죄를, 백남호 전 한국발전기술 대표에게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에 “청년 비정규 노동자의 목숨값이 2천500만원에 불과하냐”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노총은 “정부 차원의 특조위가 밝혀 낸 진상조사 결과를 철저히 무시하고, 법 위반은 있으나 대표이사는 무죄라는 판결을 내린 법원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사법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대부분 피고인들에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나 업무상과실치사죄로 유죄가 선고됐지만 정작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김병숙 전 대표는 두 혐의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고 비판했다.

서부발전 관계자들은 재판 내내 원청의 책임을 부인했다. 공공운수노조는 “피고인들은 반성은커녕 자신들의 잘못을 부정하고 책임을 회피했다”며 “이들은 사업장에서 사람이 죽었는데도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반성의 기미도 없는 파렴치한 피고인들을 엄중하게 처벌해야 했다”며 “엄중 처벌만이 제2의 김용균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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