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전산업개발 유튜브채널 홍보영상 갈무리

발전소 하청업체 중 가장 큰 규모인 한전산업개발이 발전소 운전·정비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노조간부들을 해고했다가 법원에서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 판결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발전소들이 한전산업개발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면 용역이 어려워져 경영위기에 처할 것을 우려해 노조를 억압했다는 취지다.

지부장 2명 ‘발전소 직접고용’ 지지

11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이상훈 부장판사)는 지난달 7일 한전산업개발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한전산업개발은 1심에 불복해 지난 1일 항소했다.

한전산업개발은 2020년 2월 한국노총 산하 한국산업개발노조의 서해지부 위원장 A씨와 당진지부 위원장 B씨를 해임했다. 이들이 회사의 교육업무를 방해하고 업무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근태불량과 시간외근무수당 부당수령도 A·B씨의 징계사유 목록에 담겼다.

사건은 발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식에 노사 이견이 생기며 시작됐다. 발전 5개사는 정부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2019년 1월부터 ‘발전5사 통합 협의기구’를 구성해 한전산업개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논의했다. 정규직 전환 방안으로는 △발전 5사가 운전·정비 용역회사 노동자를 직접고용 △한전이 100% 또는 발전 5사가 각각 20%씩 출자해 별도 자회사를 설립해 고용 △한전산업개발 활용 등이 물망에 올랐다.

서해지부와 당진지부는 발전 5사의 ‘직접고용안’을 지지했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A·B씨는 발전 5사 통합협의기구 근로자대표위원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노조 본부와 발전부문의 나머지 4개 지부는 의견이 달랐다.

회사 ‘특별교육’ 불참 독려에 해고

그러자 사측은 2019년 9월께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 관련 교육(특별교육)’을 실시했다. 회사는 ‘한전산업개발 활용’ 방안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사측은 “연료·환경설비 운전은 시장점유율 77%인 한전산업개발 위주의 발전회사로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며 “특조위 발표는 현실과 다르다. 권고안으로 진행된다면 오랜 시간과 송사에 휘말릴 수 있다”고 교육했다.

이에 A씨는 지부 대의원들과 논의한 후 네이버밴드에 “서해지부 입장은 (특별교육에) 우선 반대하며 조합원들의 불참을 바란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B씨도 당진지부 밴드에 “몇 년 전 연봉제 찬반투표 전 회사설명회에서 감언이설로 조합원들을 설득해 연봉제 70% 찬성을 끌어냈던 회사”라고 적었다. 그러나 당진사업처의 특별교육은 예정대로 진행돼 대부분 참석했다. 다만 B씨는 참석자 명단에서 빠졌다.

그러자 회사 감사실은 이들이 교육업무를 방해했다며 조사를 진행했다. 근태불량도 문제 삼았다. A씨가 무단으로 사업장을 이탈하고, 사적인 용무로 조기퇴근했다고 봤다. B씨 역시 조합활동을 이유로 현장업무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감사실은 B씨 부서의 사무직원이 부탁을 받고 시간외근무명령서를 작성한 부분도 적발했다고 했다.

하지만 사측이 2017년 5월 이틀간 ‘노조 근태 관련 현장점검’을 실시한 결과 A씨와 B씨는 근태사항 지적을 받지 않았다. 게다가 ‘직접고용안’을 지지하지 않는 다른 지부 위원장들에게는 감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회사는 감사 결과를 토대로 A·B씨의 해고를 결정했다. 그러자 이들은 부당해고와 불이익 취급 및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2020년 5월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충남지노위는 부당해고는 인정하면서도 나머지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중노위는 불이익 취급의 부당노동행위는 맞다고 판단했다. 이에 회사는 그해 12월 소송을 냈다.

법원 “노조활동 억압 위해 감사 실시”

법원은 징계사유 일부만 인정하면서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A·B씨의 교육업무 방해와 B씨의 특별교육 불참이 징계사유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다만 A씨의 근태불량·근로제공의무 불이행, B씨의 예방점검 업무지시 불이행과 시간외근무수당 부당수령은 정당한 징계사유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지부장들이 밴드에 작성한 ‘특별교육 불참’ 독려 글은 노조의 정당한 활동 범위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이들이 지지한 ‘직접고용안’은 정부가 구성한 특조위의 권고안이라는 뚜렷한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법적 판단이다. 재판부는 “정규직 전환 방안에 관해 회사와 대립되는 조합활동을 한 것을 이유로 해고한 것은 불이익 취급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고, 부당노동행위 의사도 인정된다”고 밝혔다.

특히 ‘직접고용안’으로 정규직 전환이 이뤄져 발전 5사가 직접고용하는 경우 한전산업개발은 용역 수행이 어려워져 경영상 큰 어려움에 부딪힐 가능성이 커 이를 이유로 노조활동을 억압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A·B씨가 밴드에 게시글을 올려 감사가 진행됐는데 이는 직접고용안 지지를 위한 조합활동을 무력화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해고를 위한 수단 또는 방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노조간부 근태 관련 현장점검에서 A·B씨에게 별다른 지적사항이 없었던 사실도 근거가 됐다. 또 재판부는 “근무시간 중 조합활동이 다른 지부와 비교해 과도한 것으로 보이지 않으나 회사가 그간 묵인해 오던 조합활동을 감사를 통해 발견하고, 이를 이유로 삼아 지나친 양정의 징계를 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A·B씨에 대한 감사는 정당한 조합활동을 억압하기 위해 시작됐고, 조합활동이 없었다면 해고가 이뤄지지는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 한전산업개발 홈페이지 갈무리
▲ 한전산업개발 홈페이지 갈무리

직접고용 논의 과정에서 ‘무더기 해고’ 논란

한전개발산업은 무더기 징계와 해고가 이뤄져 논란이 되고 있다. 정규직화 추진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징계해고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전산업개발의 신성장사업처와 ESS팀(에너지 저장장치 관리)에서 근무했던 직원 2명도 사업계약을 진행하면서 이사회 보고 없이 계약을 체결하고 단가를 할인하는 등 비위행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2020년 12월 해고됐다. 중노위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지만, 사측이 소송을 이어 가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이들은 “회사의 전 대표이사가 정부의 정규직화 방안을 준수하기 위해 자유총연맹 지분을 공기업에 매각하는 것을 추진하자 반대하는 대주주측에서 자신들의 영향권에 있는 임원을 통해 비리 혐의를 씌우기 쉬운 신사업 추진 부분을 타깃으로 감사를 진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1년6개월여간 일상적인 감사에 시달린 끝에 해고됐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감사실 직원에게 인격을 모독하는 언행도 들어 정신적 충격이 컸다고 호소했다. 특히 해고자 1명은 업무상배임 혐의로 고소되기도 했다. 경찰은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했다.

정규직 전환 논의도 더딘 상태다. 한전산업개발의 경우 노·사·전문가 협의체가 지난해 5월 재공영화를 통한 정규직화를 결정했다. 정부와 여당이 2019년 2월 공공기관 한 곳에 발전소 연료·환경 운전원을 고용하기로 제안하며 발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연료·환경 운전은 2018년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서부발전 하청노동자 고 김용균씨가 했던 업무다. 하지만 한전이 자유총연맹의 한전산업개발 지분 31%를 매입하는 작업에 난항을 겪으면서 정규직 전환이 지연되고 있다. 자유총연맹은 ‘실사 전 가격제시’를 요구하며 몸값 높이기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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