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석영 기자

필리핀에서 온 계절노동자 A씨는 일 평균 12시간씩 일하면서도 월평균 75만~95만원을 받았다. 근로계약서상 월급은 200만1천원이다. 하지만 송출 브로커가 각종 수수료 명목으로 세 차례 걸쳐 총 285만원을 가져갔고 고용주는 숙식비로 매달 30만원을 공제했다.

또 다른 계절노동자 B씨는 농업노동자로 입국했지만 고용주 요구에 따라 어업·제조업·건설업 등 직종에서 일했다. 인력시장에서 일하는 경우 하루 일당이 12만~15만원이었는데도 B씨는 7만원만 받고 나머지는 고용주가 가져갔다. 지각하면 하루 일당을, 아파서 결근하면 3일치 급여를 공제해 쉬고 싶어도 쉬지 못했다.

전남 해남에서 일하던 외국인 계절노동자들에게 일어난 일이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갈 수 없었다. 여권과 통장을 브로커가 회수해 해남군 관계자에게 전달했기 때문이다. ‘인신매매성 강제노동’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등 81개 이주노동단체는 15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에 계절노동자 긴급구제 요청 진정서를 제출했다. 계절노동자 운영 관련 해남군·전라남도·법무부 진상조사도 요구했다. 해남군은 사건이 커지자 계절노동자 도입 프로그램을 중단한 상태다.

막대한 중간착취, 무단이탈률 높여

해남만의 일이 아니다. 외노협은 지난해 말 인권위와 함께 발표한 ‘2023 계절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서 브로커의 임금착취와 고용주의 불법파견으로 인한 피해가 만연했고, 여권 등 신분증 압류가 브로커와 지자체에 의해 벌어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설문조사는 6개국 계절노동자 89명을 대상으로 진행됐고, 네팔·베트남·필리핀 등 해외실태조사와 FGI를 통한 국내실태조사도 이뤄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계절노동자들이 본국 지자체나 민간 브로커 등에게 수수료 명목으로 추가 비용 부담을 하는 경우는 34.4%에 달했다. 막대한 중간착취 비용은 무단이탈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송출 브로커에게 송출 비용으로 1인당 800만원에서 1천300만원까지 지불했지만, 계절노동으로 얻은 실질 소득은 1천만원에 그쳐 계약기간 만료 뒤에도 귀국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전문성 없는 지자체, 이탈률만 관리하는 법무부

계절노동제도의 취약점은 전문성 없는 지자체와 이탈률 잡기에만 몰두하는 법무부에서 비롯된다. 계절노동제는 국가 간 업무협약인 고용허가제와 달리 지자체 간 업무협약이다. 국제협력 역량이 미비한 지자체가 별다른 지원 없이 법무부로부터 쿼터만 배정받으니 송출 브로커가 개입할 수밖에 없고, 중간수수료 등 임금착취가 일상화됐다는 지적이다.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출입국 관리 관점에서 계절노동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탈률을 낮추겠다며 2022년 6월 귀국보증금 예치를 지침에 명시했다가 비판 여론에 부딪혀 폐지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법무부 주도 아래 고용노동부는 아예 손을 놓고 있어 근로감독은 부재하다. 법무부는 매해 계절노동자 도입 규모만 키우고 있다.

외노협은 보고서에서 “국가나 지자체가 농어촌을 위한 지속가능한 산업 비전은 없고, 값싼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면 농어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외국인력 만능주의에 빠진 건 아닌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며 “송출 투명성 확보와 이권 목적 송출 브로커 개입 차단,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국내외 시스템 구축 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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