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인구와 산업변화, 무엇보다 낮아진 출산율을 만회하겠다며 이민청 논의를 꺼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고용허가제의 규제를 강화하고 양과 범위를 확대하는 계획만 내놓는 실정이다. 이주노동자 정책의 현재와 앞으로 필요한 변화를 짚어봤다. <편집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고용 분야 ‘킬러규제’로 고용허가제를 지목했다. 일할 외국인 노동자가 있고, 이들을 원하는 기업이 있는데, 외국인력 규모와 업종을 제한한 고용허가제가 걸림돌이 된다고 했다. 외국인력 확대를 주문한 것이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인구절벽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3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역대 최저다. 4분기 0.6명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외국인력 확대가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진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에 비해 외국인력을 3배 늘렸다. 빈 일자리를 채운다는 명목이다. 하지만 지금의 미스매치 원인은 인구 변화보다 내국인 기피에 가깝다. 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쉬는’ 청년 43만명이 이를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외국인력 도입 원칙인 내국인 구인노력을 성실히 했냐고 묻는다. 나쁜 일자리를 내버려 둔 채 손쉬운 해결책을 택했다는 비판이다.

정부는 건설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에 앞장선 건설노조를 때리고, 한편으론 건설업 외국인력 도입 규모를 늘리고 있다. 값싼 노동력으로 건설업 불황을 견디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정부는 건설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에 앞장선 건설노조를 때리고, 한편으론 건설업 외국인력 도입 규모를 늘리고 있다. 값싼 노동력으로 건설업 불황을 견디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내년 고용허가 규모·업종 모두 ‘역대급’

내년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비전문취업 E-9 비자)는 역대 최대 규모인 16만5천명이다. 사업장별 고용한도를 2배 이상 늘리면서 확대됐다. 총 규모뿐 아니라 기업·업종도 확대했다. 신규 업종을 허용하거나, 외국국적 동포(방문취업 H-2 비자)에게만 허용했던 업종을 이주노동자에게 개방하는 식이다. 지난 4월 제조업에서 외국인력을 배정받던 조선업을 별도 쿼터로 신설한 것이 시작이었다. 윤 대통령의 킬러규제 발언 직후 정부는 비수도권 뿌리산업 중견기업과 일부 서비스업 상하차 직종에 대해 고용허가제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광업·임업도 내년 하반기부터 새롭게 허가됐다. 음식점업은 100개 지역 한식당 주방보조 업무에 대해 시범도입된다. 플랜트건설업 고용허가와 호텔·콘도업 시범사업도 곧 발표될 예정이다. 올 하반기로 예외했던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은 송출국 협의 문제로 사실상 무산됐다.

외국인력 확대 배경으로 기업의 수요를 대폭 받아들였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주노동자 도입 규모·업종 등은 국무총리실 산하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 결정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외국인력정책위에서 활동한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그동안 정부는 사용자의 수요 요청에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도입 규모를 결정해 왔다”며 “이번 정부는 그런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런 규모는 과연 적절할까. 명쾌한 답은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규모 자체에 대한 평가는 신중한 편이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 본부장은 “인력 부족현상이 심각한 것은 맞다”면서도 “외국인력 공급시 핵심인 내국인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그때그때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조 중소기업 인력난, 이대로 방치할 건가

내년 외국인력 규모는 이주노동자 80%가 일하는 제조업에서 가장 많이 늘었다. 매년 4만~5만명을 유지하던 규모는 올해 7만8천명에서 내년 9만5천명으로 급증 추세다.

제조 중소기업의 인력난은 오래된 문제다. 제조업 고용허가 사업장은 300명 미만 또는 자본금 80억원 이하 사업장, 즉 중소기업이다. 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제조 중소기업 빈 일자리는 지난 10월 기준 5만6천여개다. 빈 일자리율은 1.5%로 전 산업 평균(1.1%)을 상회한다. 특히 제조업의 근간인 뿌리산업 빈 일자리율은 2021년 기준 2.8%에 달한다.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싶은 구직자가 없는 탓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구직을 포기한 청년은 지난 1~9월 월평균 41만4천명을 기록했다.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32.5%)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일할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 중 절반 이상(65.1%)은 ‘1년 이내 구직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다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조업 생산기능직을 저임금 일자리로 단정 짓고 사양산업으로 방치하고 있다”며 “어쩔 수 없이 외국인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하기엔 정부가 한 일이 너무 없다”고 비판했다. 박 연구위원은 “인적 경쟁력을 높일 업종을 전략적으로 구분해 내국인이 찾는 일자리로 만들어야 한다”며 “인력부족 문제로 접근하면 기업의 외국인력 요구에 따라 공급 확대라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철강·석유화학·조선·신발·식품·가구 등에서 생산기능직과 설계·디자인·엔지니어링의 협력을 통해 제품 경쟁력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단계 하도급’ 조선·건설 숙련공 떠나는데
저임금 노동력 확보만 혈안

조선·건설업도 청년 기피대상 업종인 건 마찬가지다. 조선업계 구인난 호소에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8월 용접·도장공 등 외국인 전문인력(특정활동 E-7 비자) 9천명 도입을 결정했다. 기존 전문인력 인원 제한을 폐지해 허용인원 10배를 고용할 수 있게 했다. 더 나아가 고용허가제 외국인력에 대한 조선업 전용 쿼터를 신설했다. 올해 2천340명, 내년엔 두 배 넘게 늘어난 5천명의 이주노동자가 조선업에 투입된다. 2천명 전후로 유지되던 건설업 외국인력 규모는 올해 3천220명으로 뛰었고, 내년 6천명으로 배가 늘어난다.

두 산업 모두 극악한 고용구조로 손에 꼽힌다. 다단계 하도급 속에서 더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는 하청노동자가 원청 정규직보다 절반 이하의 임금을 받는다. 만성적으로 임금체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지만 하청노동자란 이유로 노동 3권마저 온전히 보장받지 못한다.

청년 유입은커녕 숙련공들조차 손을 털고 떠나고 있는데, 정부는 저임금 노동력 확보에만 열을 올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용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은 “정부는 올해 조선업에 외국인력 포함 생산인력 1만4천명을 투입했다고 지난달 초 자화자찬했지만 또다시 인력난 이야기가 나온다”며 “핵심은 숙련 노동력”이라고 지적했다.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이 뒤따르지 않으니 그나마 있던 숙련공들도 다 빠져나가는 상황이라는 진단이다. 정부는 ‘조선업 상생협약’을 맺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는 상태다.

정부는 조선업을 떠난 이들이 정착한 플랜트건설마저 새롭게 외국인력을 도입할 방침이다. 조경숙 플랜트건설노조 교선국장은 “전체 20만여명 플랜트건설 노동자 중 12만여명이 만성 실업 상태로 추산된다. 숙련공도 1년에 9개월 이상 일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내국인이 일할 환경을 조성하지 않고 저임금 노동자만 유입하면 숙련공은 떠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고강도·저임금 서비스업에
이주노동자 밀어넣기 처방

서비스업 일자리 상황도 비슷하다. 외국인력 도입 증가율로 따지면 서비스업이 가장 크다. 100명으로 유지되던 서비스업 이주노동자 수는 윤석열 정부 들어 올해 2천87명, 내년 1만3천명으로 10배 넘게 증가했다. 서비스업 고용허가 업종은 폐기물수집·재생, 신선식품도매, 음식료품중개, 식육운송, 택배, 공항지상조업, 재생용 재료수집·판매, 냉장냉동창고, 인쇄출판, 오디오출판, 건설폐기물처리 등이다.

중노동으로 꼽히는 택배 상하차 직종은 외국국적 동포에 이어 이주노동자까지 확대됐다. 고강도 업무가 야간에 이뤄지는 데 비해 임금이 낮아 ‘지옥의 아르바이트’라고 불리는 일이다. 외국인력정책위가 2019년 개방을 시도했다가 국토교통부가 작업환경 개선을 우선해야 한다고 반대해 무산됐다. 그 사이 노동조건이 변한 건 없지만 정부는 외국인력 도입을 결정했다.

가사근로자법 도입 1년과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 논의가 맞물린 점도 상징적이다. 가사근로자법은 그동안 비공식 노동시장에서 거래됐던 가사서비스를 공식화하고 가사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6월 제정됐지만 혜택을 받는 이들은 소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서울시는 값싼 노동력을 강조하며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을 상대국 양해 없이 밀어붙이다 결국 무산됐다.

음식업점도 윤석열 정부 들어 새롭게 허용된 업종이다. 전국 100개 지역(기초자치단체 98개, 세종·제주)의 한식당 주방보조 업무에 대해 시범적으로 도입된다. 고강도 저임금 노동으로 인해 음식점업 인력난은 특히 심각하다. 올해 상반기 기준 빈 일자리율은 2.6%로 전 산업(1.1%)의 2.4배다. 외국인력정책위도 설거지·주방보조 등 단순반복적 육체노동을 필요로 하는 업무는 노동강도가 높아 내국인이 취업을 기피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호텔·콘도업의 청소원과 주방보조원도 윤석열 정부에서 개방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서비스업 중심으로 노동 수요가 증대된 점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숙박 및 음식점업 빈 일자리 수는 지난 9월 기준 3만886개로 제조업 다음으로 많다. 하지만 나쁜 일자리에 이주노동자를 밀어넣는 건 마찬가지다.

노용진 과학기술대학교 교수(경영학)는 “고학력층이 많아지고 플랫폼·프리랜서 일자리도 늘어나 숙박 및 음식점업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줄고 있다”며 “코로나19를 계기로 인력부족 현상이 심각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숙박·음식점업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많이 포진돼 있던 일자리”라며 “고령자나 고용단절여성의 일자리를 잠식하지 않는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국국적 동포도 기피하는 일자리에
이주노동자 들어가라?

외국인력으로 한계산업을 연명하려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에서 외국인력 도입 시범사업으로 진행 중인 광업·임업이 대표적이다. 광업의 경우 외국국적 동포에게 먼저 개방됐지만 올해 지원 인력은 3명뿐이었다. 임업은 농어업보다 노동조건이 더 열악하다. 민경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농촌보다 (오지로)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할 뿐 아니라 노동강도도 더 세다”며 “유럽의 경우 돈이 많이 들어 우리나라처럼 나무를 인위적으로 심고 베는 작업을 하지 않는 추세”라고 말했다.

외국인력 규모 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인숙 한국노총 정책2부 부본부장은 “노사정이 모여서 빈 일자리가 발생했다면 원인은 무엇인지, 규모는 얼마나 필요한지 논의해야 하는데 정부와 전문가끼리 규모를 산정한다”며 “현장을 제일 잘 아는 건 노동자다. 노동자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 몇 명이 있어야 굴러가는지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내국인 구인노력을 우선해야 한다’는 고용허가제 원칙에 맞게 운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장 부본부장은 “재계 요청에 따라 외국인력을 확대하고 새 업종을 하나둘 허용하면 전 업종으로 번지는 건 시간 문제”라고 우려했다.

20년 된 고용허가제
현재 인구변화 대응 못해

저출생·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건 사실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20년 3천738만명이던 15~64세 생산가능인구는 2070년까지 현재 46% 수준인 1천737만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당장 10~15년 동안 총량적인 노동인력 부족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학계는 보고 있다. 이철희 서울대 미래전략연구원 교수(경제학)는 “인구변화의 구체적 추이를 고려하면 가까운 장래보다 20년 뒤 (청년·여성·고령자·외국인력 등) 노동투입 증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향후 5~6년 뒤 청년인력 의존도가 높은 업종에서 급감하게 될 노동시장 신규 진입인력을 대체하지 못할 경우 심각한 노동수급 불균형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올해로 20년 된 고용허가제 변화를 꾀하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해 12월 고용허가제 개편방안을 발표하며 비숙련노동자 단기순환 정책에서 숙련노동자 정주 정책으로 대전환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여전히 들어오는 인력은 과거 고용허가제의 비숙련 비전문 인력”이라며 “앞으로 산업구조나 수요가 변할 텐데 중숙련 이상 사람들을 지금 시스템으로 많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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