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인구와 산업변화, 무엇보다 낮아진 출산율을 만회하겠다며 이민청 논의를 꺼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고용허가제의 규제를 강화하고 양과 범위를 확대하는 계획만 내놓는 실정이다. 이주노동자 정책의 현재와 앞으로 필요한 변화를 짚어봤다. <기획취재팀 : 이재·강석영·정소희 기자>

지구인의 정류장에 들어서자 밥 짓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이곳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인권 상담소다. 이제 막 식사를 마친 6명의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이 눈을 맞추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곳은 국적·성별에 관계없이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정류장. 누구든 환대한다.

지난 15일 <매일노동뉴스>는 캄보디아 여성 농업 이주노동자 티다(30·가명)씨를 만나기 위해 지구인의 정류장을 찾았다. 티다씨는 임금체불 문제로 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장 대표와 김혜나 활동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

“휴대폰 쓰겠다고 말한 뒤 해고당해”

티다씨는 8월17일부터 경남 밀양의 채소 농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하는 사람은 티다씨 혼자였다.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1시간의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9시간을 꼬박 일했다. 사장 부부는 일이 바쁠 때는 함께했지만 대개 티다씨 혼자 일하곤 했다. 휴일은 한 달에 이틀만 허락됐다. 최저임금을 받았고 10일 남짓 일한 첫 달의 월급은 60만원이었다.

농장 일은 고됐지만 티다씨는 묵묵히 해냈다. 해고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10월25일 오후 티다씨는 평소처럼 점심을 먹고 일을 했다. 그날따라 일이 유독 무료하고 힘들었다. 농장주에게 농장에서 휴대전화로 음악을 틀어도 되는지 물었다. 티다씨는 그날까지 비닐하우스 안에 휴대전화도 들고 가지 못했다. 질문 끝에 사장의 언성이 높아졌다. “일하는 데 왜 심심하냐”며 “일은 안 하고 휴대폰이나 쓰려 한다”는 말이 뒤따랐다. 사장은 티다씨 숙소로 가더니 “짐을 꺼내라”며 “캄보디아로 돌아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겁에 질린 티다씨가 휴대폰을 꺼내 사장의 행동을 녹화했다. 사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티다씨를 집 밖으로 쫓아냈다. 이후 티다씨는 경남 김해의 고용센터를 찾아갔다.

고용센터 직원에게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꼈다. 상황이 잘 전달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직원은 일주일 뒤 연락할 테니 기다리라고 말했고 티다씨는 주변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한 친구가 지구인의 정류장을 소개했다. 지난달 초에 안산에서 김혜나 활동가와 김이찬 대표를 만났다. 캄보디아어를 구사하는 둘에게 티다씨가 해고 경위를 알렸다.

▲ 티다(가명·가운데)씨는 8월 채소 농장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농장주에게 쫓겨났다. 임금체불과 부당해고 등 피해가 산적하다. 그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될까 봐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정기훈 기자>
▲ 티다(가명·가운데)씨는 8월 채소 농장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농장주에게 쫓겨났다. 임금체불과 부당해고 등 피해가 산적하다. 그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될까 봐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정기훈 기자>

임금체불·이면 계약 문제도

두 활동가는 티다씨가 부당해고를 비롯해 임금체불도 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티다씨는 하루 9시간 일했지만 지급된 시급은 하루 8시간에 불과했다. 근로기준법 26조에 따라 받을 수 있는 해고예고수당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근로계약서에 위배된 계약 내용도 확인했다. 티다씨의 근로계약서에는 급여에서 숙식비 명목으로 월 10만원을 공제하기로 돼 있다. 하지만 농장주는 입국 초기 티다씨에게 별도의 ‘숙식비 공제동의서’를 내밀어 서명하도록 했다. 사정을 잘 모르던 티다씨는 숙식비 명목으로 ‘월 28만원을 공제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서류에 서명하고 말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농장주와 해고 사유를 두고 다투게 됐다. 농장주는 고용센터에 “근로자 태업으로 인해 근로계약을 해지한다”고 밝혔다. 해고의 책임이 티다씨에게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만약 해고 책임이 티다씨에게 있다고 인정되면 티다씨는 추후 재입국할 수 있는 성실근로자 자격을 포기해야 한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이나 임금체불 진정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티다씨는 현재까지도 사업주와 사업장 변경 사유에 대해 합의하지 못한 상태다.

험난한 사업장 변경의 길

고용허가제에서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바꾸려면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우선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 25조에 명시된 사유에 한해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사업장은 체류기간 동안 3번만 바꿀 수 있는데 사업장을 바꾸지 않으면 고용허가제가 허용하는 국내 취업활동 기간(4년10개월)에 더해 4년10개월을 더 일할 수 있다. ‘성실근로자 제도’다. 이 때문에 이주노동자 대다수는 가능하면 사업장 변경을 피하려고 한다.

물론 고용센터가 임금체불이나 폭력 등 사업주가 명백히 잘못한 행위를 한 사실을 확인하면 사업장 변경 횟수가 차감되지 않고 사업장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임금체불이나 폭력 등의 증거를 이주노동자가 제시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문 데다가 수사기관이나 지방노동관서에서 이를 확인하기까지 수일이 소요된다. 조사가 종료될 때까지 무임금을 감내하면서 지구인의 정류장이나 이주노조, 지역 외국인지원센터 등의 도움을 받으며 지낸다.

사업장 변경 과정에서도 어려움은 발생한다. 노동자와 사업주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게 되면 사업주는 ‘사업장 변경 사유 확인서’를 고용센터에 제출한다. 티다씨의 경우처럼 사업주는 대개 근로계약 해지의 이유가 노동자에게 있다고 센터에 보고한다.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변경을 허가받기 위해 또 성실근로자 제도를 고려해 사업주에게 귀책이 있다고 보고한다. 대개 ‘말 잘 듣는’ 이주노동자를 놓치고 싶지 않은 일부 사업주들은 근로계약 해지와 사유 확인에 동의해주지 않는다. 때문에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변경 횟수 차감을 각오하며 지옥 같은 일터를 벗어나기 위해 사업주가 고용센터에 제출한 대로 ‘합의’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 지구인의 정류장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이주노동자 노동·인권 상담소다. 정부가 관련 예산을 삭감하면서 전국 44개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가 문을 닫게 되면서 이런 상담소는 더욱 절실해졌다. <정기훈 기자>
▲ 지구인의 정류장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이주노동자 노동·인권 상담소다. 정부가 관련 예산을 삭감하면서 전국 44개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가 문을 닫게 되면서 이런 상담소는 더욱 절실해졌다. <정기훈 기자>


“내년에는 좋은 사장님 만날 수 있을까요”

티다씨는 김이찬 대표, 김혜나 활동가와 함께 고용노동부 양산지청에 부당해고 구제신청과 임금체불 진정을 접수했다. 티다씨의 경우 사업주가 해고 사실은 인정했기 때문에 근로계약이 종료돼 현재 구직활동 중이다. 규정에 따라 3개월 이내에 직장을 찾지 못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티다씨는 초조하다고 말했다. 2월22일까지 남은 시간은 두 달여다.

“지금 일 찾기가 힘들어요. 특히 사장님들이 (한국 상황을 잘 모르는) 새로 온 노동자를 고용하기 원하는 경우가 많아요.”

11월22일부터 한 달 동안 구직활동을 했지만 고용센터를 통해 받은 일자리 알선 문자메시지는 단 2개. 그마저도 빠르게 마감됐다. 티다씨는 불안하다. 한국 정부가 올해 이어 내년에도 비전문취업(E-9) 비자 발급 규모를 역대 최대로 늘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될까 봐 걱정돼요. 지금도 직장 구하기가 너무 힘든데 내년에는 더 힘들어질 것 같아요. 사장님들은 더 쉽게 해고하고 더 쉽게 사람을 갈아치우겠죠.”

그래도 티다씨는 “한국행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티다씨는 2018년부터 4년간 준비한 끝에 한국에 오게 됐다. 그는 내년에 더 좋은 일터와 더 좋은 사업주를 기대하고 있고, 그래야만 한다.

“제겐 희망이 있어요. 지금까지는 좋은 사장님은 못 만났지만 내년에는 꼭 좋은 사장님을 만나고 싶어요.”

늘어나는 분쟁, 사라지는 이주노동자 권리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규모는 올해 1천억원대를 웃돈다. 전체 임금체불자 중 이주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7년 7.3%에서 2022년 9월 기준 11.8%까지 증가했다. 이런 추세는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2019년 5만명 수준이던 외국인력 도입 규모가 올해 12만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는데 내년에는 이보다 4만명 이상 늘어난 16만5천명이 들어온다. 이주노동자가 늘어난 만큼 일터 안에서의 분쟁도 늘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갈등을 해결하고 조정하고 상담할 기구들은 사라진다. 올해 71억원인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은 내년 0원으로 책정됐다. 전국 44개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내년부터 문을 닫는다.

정부는 지방노동관서에서 센터가 하던 일을 이어가겠다며 공무직 60명을 상담인력으로 신규채용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44개 지원센터마다 10여명의 인력이 상주해 소화했던 연간 수만 건의 실적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상담지원센터는 노동자들의 임금체불이나 사업장 변경 문제뿐 아니라 의료 지원부터 한국어 및 한국문화 교육까지 맡아 왔다. 센터마다 통번역가를 두고 상담을 진행해 전문성도 갖추고 있다. 지역에 오랫동안 터를 잡아 온 이주노동자 공동체도 센터와 함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센터는 주중에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토요일과 일요일 같은 주말에 상담창구를 열어놨다. 하지만 업무가 노동관서로 이관될 경우 주말에는 문이 닫혀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주노동자가 근무시간에 지방노동관서를 찾아가기란 쉽지 않아 접근성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노동계는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을 지역 내로 제한한 정책도 문제라고 보고 있다. 정부는 10월19일부터 입국하는 이주노동자를 전국 5개 권역으로 나눠 사업장 변경을 지역 안으로 한정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수도권에 직장을 구한 이주노동자는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지역 일터로 이동이 불가능하다. 지역 소멸과 인력 유출을 막는다는 명분이다. 양대 노총은 “정부 정책은 거주이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하면서도 아무런 법 개정 없이 입국하는 노동자에게 동의서를 받아 지역 이동 제한을 시행하려 한다”며 “이주노동자를 대폭 늘리면서도 권리침해는 더욱 심해졌다”고 꼬집었다.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국제노동기구(ILO) 29호 협약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이찬 대표는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국민으로 받아들일 생각은 없고, 그저 값싸게 젊은 노동력을 (정주민의) 빈 자리에 채워 넣으려고만 한다”며 “5~10년을 ‘지역도 떠나지 말고 일만 하라’고 말하는 정부는 인구문제를 앞으로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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