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파주시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3명 중 1명은 컨테이너와 조립식 패널 같은 가설 건축물에서 주거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2020년 12월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난방이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 실태를 개선하라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곰팡이 뒤덮인 부엌, 누수와 결로 있는 숙소

9일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파주시 거주 외국인 노동자 주거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참여자 142명 중 27명은 컨테이너, 16명은 조립식 패널에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는 경기도와 파주시 의뢰로 파주노동희망센터가 지난해 6~8월까지 파주이주노동자센터 샬롬의 집과 천주교의정부교구 파주 엑소더스의 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주노동자 142명을 상대로 진행했다. 파주시에는 2021년 기준 5천894명의 이주노동자가 거주 중이다. 조사 참여자 중 다수인 75.2%가 비전문취업(E-9) 및 방문취업(H-2)자였다. 전문취업자(E-7)는 5.3%, 장기거주자는 3%,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12.7%, 기타는 3.8%였다. 조사 참여자의 91.7%는 제조업에 종사했다. 농업은 3.7%, 기술직은 1.9%를 차지했고 설치업·아이돌보미·일용직이 각각 0.9%씩 차지했다.

대개 제조업 종사자인 만큼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인 43%가 기숙사에 거주하고 있었다. 공장과 산업단지가 있는 곳에서 근무하는 제조업 종사자는 농업 종사자보다 상대적으로 주거 환경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기숙사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30.3%(컨테이너 19%·조립식 패널 11.3%)에 해당하는 가설 건축물 거주자였다. 나머지 26.7%는 주택에 산다고 답했다.

조사를 담당한 파주노동희망센터는 설문조사 외에 파주시 거주 이주노동자 8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도 시행했다. 기숙사 명목으로 지어진 숙소들 역시 가설 건축물에 지나지 않았고 화재와 소음에 취약했다. 곰팡이가 벽으로 뒤덮인 주방에서 조리와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세면·목욕시설에도 곰팡이가 서식해 위생이 나빴다. 연구진은 “화장실 문은 부서져 있거나 고장난 상태였고 위생상태가 매우 불량했다”며 “누수와 결로로 곰팡이 낀 침실과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 숙소도 많았다”고 밝혔다. 이어 “창문을 닫을 수 없어 종이박스로 창을 막아 버려 환기조차 되지 않는 숙소와 비가 새는 천장으로 누수와 누전 위험이 있는 숙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가설 건축물 전면 금지해야”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은 숙소비를 지불하고 있었다. 공과금과 숙소비를 함께 지불하는 이는 14.3%였고, 숙소비만 낸다고 답한 사람은 40%였다. 숙소비를 지불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소비를 조사한 결과 월평균 16만5천원을 지출하고 있었다. 숙소비를 지불하는 이들 중 동의서를 쓰지 않은 이는 절반인 49.5%였다. 고용노동부는 ‘외국인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을 통해 사용자가 이주노동자에게 숙식비를 사전 공제할 경우 동의서를 받는 것이 의무라고 안내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절반 가까이의 노동자가 이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파주노동희망센터는 조사를 바탕으로 “이주노동자 주거 정책에서 시급히 시정해야 할 부분은 주거용으로 가설 건축물을 허용하는 점”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가설 건축물은 건축물 시행령 15조에 명시된 건축물로 존치 기간을 3년 이내로 한정하는 ‘임시 건축물’에 불과하다. 노동부는 속헹씨 사망 이후 비닐하우스 내 가설 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 고용주에게 비전문비자(E-9)발급을 불허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해 가설 건축물 축조신고 필증을 받는다면 가설 건축물이라도 숙소로 사용하도록 예외 조항을 뒀다.

연구진은 “노동부는 가설 건축물을 전면금지하고 소음·분진·화재 등 각종 위해요인에 노출된 사업장 내 숙소도 금지해야 한다”며 “특히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이주노동자 정책이 한계를 보이는 만큼 지역별 맞춤형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개선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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