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산재 카르텔’이 논란이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산재 추정의 원칙’과 ‘산재 환자 전용 특별수가’ 도입 등이 산재 부정수급자 증가, 산재기금 부실화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했다. 고용노동부는 국감이 끝난 직후 근로복지공단 특정감사에 나섰고 공단은 경영 적자 때문에 ‘부정한’ 특별수가를 개설한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리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 13일 “산재 카르텔을 뿌리뽑기 위해 감사 강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감사 범위도 “산재승인 및 요양 업무 전반의 제도·운영상 적정성”까지 넓혀 광범위하게 살피고 있다. 최종 감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산재 카르텔의 존재를 확정한 것이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국경총은 “묻지마식 보상으로 산재보험제도 근간 흔들린다”며 ‘산재보험 업무상질병 제도운영 개선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일련의 흐름을 보면 ‘산재 카르텔’의 종착점은 산재보험 제도 후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매일노동뉴스>가 ‘산재 카르텔’ 주장의 주요 근거들을 분석하고, 우리나라 산재보험 제도가 나아갈 길에 대해 세 편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주>

‘산재 카르텔’ 문제가 처음 제기된 것은 지난달 26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동부 국정감사에서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산재 추정의 원칙 도입·산재 환자 전용 특별수가 도입·산재병원 진료계획서의 의학자문 절차 생략 등으로 ‘나이롱환자 견제 장치’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근로복지공단 차원의 부정행위도 주장했다. 산재 지정기관에서 치료 중인 산재 환자를 공단이 직접 운영하는 산재병원에 전원시켜 부당한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 근거로 급증하는 업무상질병 신청자, 개선되고 있는 산재병원의 영업이익 등을 들었다.

과연 산재 카르텔은 존재할까. 19일 <매일노동뉴스>가 ‘산재 카르텔’ 주장과 이를 뒷받침 하는 근거의 타당성을 검토했다.

2001년 근골격계 질환 산재 승인율 91.7%
→ 올해 1분기 66%로 곤두박질

여당이 산재 재정 부실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산재 추정의 원칙은 2017년 9월 도입됐다. 작업 기간과 위험 요소 노출량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반증이 없는 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다. 2019년 5월 근골격계질환 일부로 확대됐고, 지난해 7월 노동부 고시로 법제화 됐다. 

하지만 업무상질병 산재 인정률은 최근 감소하고 있다. 올해 5월 공단이 펴낸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2023년도 1분기 심의현황 분석’ 자료를 보면 산재 인정률은 2019년 64.6%로 정점을 찍은 뒤로 63%대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산재 인정률은 61%로 오히려 떨어졌다.

2017년 추정의 원칙 도입 후 질병 산재신청과 승인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정상을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지적이다. 2001년 근골격계질환 산재 승인율은 91.7%, 2002년과 2003년에는 각각 93.3%와 93.7%를 기록했다. 산재 승인율이 높아지자 2007년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그해 승인율은 55.1%로 주저앉았다. 이후 2011년 46%까지 낮아졌다. ‘산재보험 제도 개혁을 위한 노사정 TF’가 꾸려져 근골격계 질환 인정기준 등이 개선된 후에야 산재 승인율이 2014년 54.1%로 다시 늘기 시작해 지난해 65.7%, 올  1분기 66%를 기록했다. 하지만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 근골격계 질환 산재 승인 자체가 매우 적다.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 산재는 한 해 1천건 아래다. 2022년 근골격계 질환 산재 신청은 모두 1만2천491건인데, 그 중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 것은 3.7%(468건)에 불과했다.

산재환자 증가가 산재보험 제도 부실화 탓?

자료사진 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매일노동뉴스

최근 업무상질병 요양자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2012년 6천742명이던 업무상질병 요양자는 2021년 1만9천183명으로 증가했다. 전체 노동자 1만명 중 업무상질병 요양자수를 나타내는 업무상질병 요양 만인율은 같은 기간 4.34명에서 9.90명으로 늘었다. 이를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업무상질병 재해자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는 방증이고, 산재 문턱이 낮아졌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문턱이 낮아진 이유는 복합적이다. 2017~2018년 이후 산재보험 제도는 다방면으로 개선됐다. 노동자가 산재보상을 신청할 때 신청서에 사업주 날인을 받아 공단에 제출해야 했던 사업주 날인제도가 2018년 폐지됐다. 사업주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신청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효과는 분명했다. 2015년부터 2017년 상반기 기준 5만4천여건에 머물던 산재 신청은 1만여 건이 증가해 2018년 6만5천390건 기록했다. 2017년 대비 19.4% 증가한 셈이다.

2019년에는 사업주의 보험료 부담 완화를 위해서 과거 3년간 산재 발생실적(보험수지율)에 따라 산재보험요율을 할증해 최대 50%까지 보험료율이 오르던 제도도 손봤다. 이후 모든 업무상질병은 산재처리시 개별실적요율에서 제외해 보험료가 인상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사업주의 눈치를 보며 고통을 숨기던 재해자가 아픔을 드러내기 시작한 배경이다.

관련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업무상 사고 사망자 수를 고려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업무상질병자가 터무니없이 낮다고 본다. 독일의 산재보험운영기관 통계를 보면 2021년 직업병유소견 신고는 23만2천206건으로, 이 중 12만6천213건이 인정됐다. 같은 시기 한국의 업무상질병 요양자는 1만9천183명으로 6분의 1에 불과했다. 한국의 취업자수가 독일의 취업자의 60% 수준임을 감안해도, 국내 업무상질병 요양 승인이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은 의사가 환자의 질병이 업무상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면 의사가 직업병 가능성을 직접 신고할 수 있다. 신고건수가 많아 직업병 인정률은 한국보다 적다.

비급여 항목, 산재병원만 지원했다?

여당과 보수언론은 건강보험에서는 비급여 항목으로 지원하지 않는 진료비를 산재병원에서 특별수가로 지원한 것이 마치 근로복지공단 영업이익을 개선하기 위한 ‘부정한 행위’로 거론한다. 하지만 이는 법에서 보장하는 제도다.

산재보험은 원칙적으로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한다. 다만 산재노동자의 진료비 본인 부담을 최소화하고 직장·사회 복귀를 위한 재활치료에 필요한 수가를 추가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2007년부터 이어져 온 흐름이다. 당시 공단은 “그동안 산재보험 요양급여 대부분 건강보험에서 정한 기준을 준용했으나, 건강보험의 경우 급여범위 및 인정기준의 제한이 많아 산재환자의 재활치료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산재 환자를 위한 산재보험 재활수가 확대를 시범사업으로 실시했다. 일례로 건강보험 인정기준에 따르면 비급여로 고시한 치료재료를 이용해 인공디스크 수술을 산재 환자에게 하면, 재활수가로 인정하는 것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시행규칙 10조는 관련 규정을 담고 있다.

산재병원의 과잉진료행위인 양 거론된 도수치료도 그중 하나다. 2012년 1월1일 공단이 직접 운영하는 병원만이 아니라 산재지정 민간병원에 산재 환자 치료를 위해 전문의나 물리치료사가 실시하면 요양급여로 지급하고 있다. 치료와 재활을 위한 목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산재 환자 산재병원으로 옮기면
포상 주고, 영업이익 개선?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이주환 의원은 “일반병원 환자를 산재병원으로 빼가기 위해  공단 직원에게 포상금을 내걸고, 산재 환자 상담시 특별수가 항목이 많은 산재병원의 재활 특진이나 입원 연장을 미끼로 유도하고 있다”며 공단이 일반병원에서 수술한 산재 환자를 산재병원으로 전원시켜 부당한 이익을 취했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포상금 지급은 사실이지만 왜 이같은 제도를 만들게 됐는지, 실제 포상금 도입 후의 제도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지적이다.

공단은 산재지정 의료기관에 다니는 환자 중 집중 재활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공단 산재병원을 포함해 공단이 인증한 재활인증의료기관에서 치료받을 수 있게 지사가 안내하면 포상금을 지급한다. 올해 6월 기준 재활인증의료기관은 공단 산재병원을 포함해 148곳이다. 입원 환자를 안내하면 3만원, 외래환자를 안내하면 1만원을 주는 식이다. 보건의료노조 근로복지공단의료지부에 따르면 이 제도로 공단 지사는 통상 월 20만원 수준을 받는다. 지난해 기준 65곳에서 1억6천200만원을 포상금으로 받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취지다. 공단의 산재병원은 직업능력 강화 프로그램처럼 민간병원과 차별화된 재활 서비스를 운영한다. 재활은 곧 산재보험 제도의 존재 이유인 직업 복귀를 돕는다. 중요한 영역이지만 대형병원은 수익성이 낮아 투자를 기피하고, 중소병원은 전문재활치료 인프라를 구축하기 인적·물적 자원의 한계가 있다.

공단이 질 좋은 재활서비스를 환자에게 알리는 작업에 열을 올리는 배경이다. 실제 수치로도 효과는 입증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의료지부에 따르면 2018년 1천247명이던 집중 재활치료 대상자는 지난해 449명 늘었고, 산재병원 요양종결 환자의 직업복귀율은 같은 기간 60.7%에서 67.3%로 증가했다. 2021년 67.3%였던 산재 환자의 직업복귀율은 지난해 69.2%로 증가했다.

집중 재활치료 대상자지만 제도를 잘 알지 못해 제도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직 많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집중 재활치료 대상자 4만1천785명 중 4.1%(1천696명)만이 제도의 혜택을 받았다. 공단은 지원대상자를 뇌혈관질환 발병일·수술일로부터 6개월 이내 요양 중인 산재노동자로 적극적인 재활치료 효과가 기대되는 재해자 등으로 한정한다.

외부 전문가들도 공단의 이런 방향에 동의한다.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은 “민간 의료기관에서 근골격계 질환 산재 환자에 대해서 고비용의 침습적 치료를 제공하고 그다지 효과가 입증되지도 않는 비보험 진료를 남발하는 등 요양관리가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공단 병원이나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해서 산재 환자들이 재활복귀를 전제로 하는 요양관리가 이루어지려면 이러한 적극적 인센티브 전략을 쓰는 것이 오히려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재병원은 ‘의학자문’ 생략,
산재 판정 감독 장치 사라졌다?

공단 산재병원의 진료계획서 제출시 ‘의학자문 생략’이 산재 판정 감독 장치를 없앴다고 보는 것은 과잉 해석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먼저 산재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최초요양 승인 과정에서는 해당 상병 분야 진료과목 전문의 자격을 가진 자문의사에게 의학자문을 받는다. 의학자문 생략이 가능한 것은 산재로 인정받은 뒤 진료계획이다. 진료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담은 것으로 요양기간 연장이나 요양종결 결정시 활용된다.

모든 전체 진료계획에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재해자의 주치의와 자문의의 의학적 소견 일치율이 높은 질병의 진료계획 등에 주로 자문이 생략된다. 이는 산재병원뿐 아니라 민간병원을 포함한 산재보험 전체 지정의료기관도 적용된다. 산재 지정의료기관에서 낸 의학적 소견을 다시 의학자문을 맡기면 시간이 지연되고, 그만큼 비용도 증가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산재보험기금의 효율적 사용을 위한 조치란 뜻이다.

권동희 공인노무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진료계획서는 의사가 의학적 판단에 따라 작성하는 것이지 노동자가 써 달라고 해서 작성하는 것이 아니다”며 “과거와 달리 현재 진료계획서는 3개월 단위로 제출해야 하고 공단이 진료계획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추세다. 직영 산재병원에서도 진료계획서를 안 써 줄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권 노무사는 “진료계획 자체에 마치 노동자가 개입해 나이롱환자가 증가한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업이익 낮아 개선했는데,
이제는 높다고 문제 삼아

공단 산재병원과 의원의 영업이익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공단과 병원은 법인이 같지만 회계를 분리한다. 지부에 따르면 2022년 직영병원의 영이익은 282억원이다. 2020년 53억원 적자를 기록했지만, 이듬해 112억으로 흑자 전환했다. 다양한 이유가 작용했지만 가장 큰 것은 코로나19 손실보상금 영향이다. 공공병원인 산재병원은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역할했다. 보건복지부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70조(손실보상)에 의거해 의료기관의 손실을 보상해 줬다. 공단 산재병원은 2020년 163억원, 2021년 277억원, 2022년 287억원 코로나19 손실보상 지원금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소수의 부정수급 사례를 일반화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현미향 중대재해 없는 세상만들기 울산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팔꿈치 통증(테니스 엘보)이나 염좌 같은 질병을 예로 들면서 치료기간이 길다고 문제 삼는데 대부분 우리나라 산재 환자들은 초기에 진단받고 치료받는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없을 때 산재신청을 하기 때문에 이미 심각한 상태인 경우가 많고 그만큼 회복도 더딘 편”이라고 말했다.

권동희 노무사는 “나이롱환자가 있을 수는 있다”며 “우리나라에 1년에 12만명의 산재환자가 있는데 부정수급자를 100% 걸러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권 노무사는 “산재 부정수급 사례가 사실이라면 장애판정 제도나, 공단의 감사, 공단의 부정수급조사 검사팀에서 못 걸러낸 것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이지, 부정수급 환자는 항상 있었고 한 명 때문에 12만명이 다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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