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잡고와 더불어민주당 을지키는 민생실천위원회 주최로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 손배가압류를 통해 본 가압류 제도의 문제와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 <정기훈 기자>

국내 가압류제도가 노조와 노동자를 옥죄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어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3조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부진정연대책무를 일부 완화했지만 공포가 요원하고, 시행하더라도 신속성을 요구하는 가압류제도의 특성상 제도개선은 불가피해 보인다.

금속노조는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손잡고·더불어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이은주 정의당 의원 등과 함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가압류 사건을 분석하고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한국옵티칼 ‘고용승계’ 요구 노동자에 가압류 4억원

경위는 이렇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일본 닛토덴코 그룹이 2003년 자본금 220억원을 투자한 국내법인으로, 구미제4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해 CL 편광필름을 생산했다. 50년간 공장부지를 무상임대 받았고 법인세와 취득세 감면 혜택도 받았다. 2017년 노동자 700명을 고용해 7천843억원 매출을 올리기도 했지만 부침을 겪어 두 차례 구조조정을 실시했고, 2021년 노동자를 80명 수준으로 감소했다가 중국의 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물량을 넘겨받아 노동자 200명을 고용하는 등 회복세를 걸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4일 구미공장에 화재가 발생해 생산설비가 전소했고, 한국옵티칼은 같은해 11월4일 청산을 발표하고 지난해 12월 임시주주총회에서 청산을 결정했다. 닛토덴코는 한국옵티칼 물량을 1999년 한국에 설립한 또 다른 편광필름 생산업체인 한국니토옵티칼에 넘기고 신규채용도 실시했다. 이 사이 한국옵티칼에서 희망퇴직을 거부한 노동자 17명을 지난 2월 해고했다. 노동자들이 해산하지 않고 공장부지 내 노조사무실에서 농성을 시작하자 한국옵티칼 청산인쪽은 8월17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에 2억원 규모의 부동산 가압류를 신청했고 같은달 24일 농성 중인 노동자 5명을 상대로 임차보증금반환채권(전세금)에 대한 2억원 가압류를 신청했다. 농성으로 공장을 제때 철거하지 못해 하루 147만원씩 손해가 발생한다는 이유다. 노동자들은 즉각 이의를 제기했지만 두 사건 모두 신문기일이 연기돼 내년 1월에야 신문을 진행한다.

손배는 ‘폭탄’, 가압류는 ‘총알’
“그럴 것 같다” 만으로 가압류 명령

현행 가압류제도는 채권자에게 유리하다. 법원은 채권자의 가압류신청에 대해 금전으로 환산할 수 있는 피보전권리가 있는지, 채무자 재산을 그대로 놔두면 향후 집행(손해배상 등)이 불가능할 상태인지를 점검한다. 그러나 신청자는 증명이 아닌 소명방식이라 신문 없이 서면만으로 입증이 가능하다. 채무자는 가압류 결정 이전에는 가압류신청 사실조차 알기 어렵고, 결정이 난 뒤에는 이의신청만 가능하다. 탁선호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증명은 사실의 존부를 법관이 확신을 갖도록 하는 입증행위인 반면 소명은 증명에 비해 한 단계 낮은 개연성, 즉 법관이 대개 그럴 것이라는 추측 정도의 심증을 갖게 하는 입증행위”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효과는 손해배상과 비교해 결코 단계가 낮지 않다. 법관이 ‘그럴 것이다’고 추측해 인용한 가압류로 인해 농성 중이던 조합원 1명이 결국 이탈했다. 탁 변호사는 수십억~수백억원의 손해배상을 ‘폭탄’에, 한국옵티칼 가압류로 개인에게 부과된 약 4천만원을 ‘총알’에 비교했다. 탁 변호사는 “폭탄이나 총알이나 노동자의 삶 자체를 파괴하고 노조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살상무기인 것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법원 “노동가압류에 고도의 신중함 요해”

이 때문에 노동가압류 사건에 대해서는 특별한 잣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탁 변호사는 “법원이 노동가압류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해 노동 3권 행사가 제한당하지 않는 방향으로 절차를 운용하고 판단기준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이미 법원은 노동사건을 일반 민법상 사건 등과는 구분하고 있다. 대법원은 2011년 “헌법이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고, 노동쟁의의 유동성에 비춰 법적 간섭은 최소한도에 그치는 게 분쟁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사용자의 기업시설에 대한 방해 배제 내지 방해예방청구권의 필요성을 판단할 때도 고도의 신중함을 요한다”고 판시했다.

법원실무도 “노동가처분에서 법원이 판단이 단순히 사건 승패를 떠나 전체 노사관계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심리에 신중을 기하고, 심문기일이나 변론을 열어 당사자에게 피보전권리와 보전 필요성 유무에 관해 충분한 주장과 소명 기회를 주는 게 원칙”이라고 적고 있다.

종합하면 사용자쪽은 쟁의행위나 조합활동을 불법·위법으로 치부해 가압류를 신청하는데, 실제로는 노동 3권의 보장이나 훼손, 노사 간 대립과 긴장 같은 측면에서 면밀히 살펴 판결해야 한다는 의미다.

다툼 여지 있는데 다툴 곳 없는 한국옵티칼

실제 한국옵티칼 사건도 가압류의 필요성 여부를 놓고 보면 다툴 여지가 크다. 한국옵티칼 청산인은 채권자(한국옵티칼 청산인)가 노조사무실을 포함한 공장부지에 배타적 점유·사용권을 갖고 있고, 기업 청산으로 노조사무실을 노조에 제공키로 했던 단체협약 효력이 중단했으므로 농성은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 노동법실무연구회는 노조법 해설서에서 “단협은 청산기간 중 존속하다 청산절차가 종료하는 시점에 효력이 중단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옵티칼 청산이 진행 중이므로 단협도 존속하는 셈이다. 도리어 노사는 부당해고 여부를 다투고 있고(서울행정법원 계류 중), 지회가 ‘분할, 합병, 양도 시 조합원이 고용 및 근로조건의 변동’ ‘구조조정 내지 조직변경, 기업변동 등 회사 내부 사정 변경시 보충협약 체결’ 같은 단협조항을 근거로 요구한 교섭을 거부하고 있어 부당노동행위 여지도 있다.

무엇보다 한국옵티칼 청산인은 공장동 철거공사에 대한 허가를 여전히 구미시나 국토안전관리원으로부터 받지 못하고 있다. 탁 변호사는 “객관적으로 공장동 철거공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므로 지회 조합원의 노조사무실 사용이나 사업장 내 조합활동으로 인해 채권자의 재산권이나 시설관리권 침해가 없다”고 설명했다. 농성하지 않았더라도 사용자의 귀책(미허가)에 따른 지연이라는 것이다.

탁 변호사는 “사용자는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총알 한 방으로 다수 노동자를 겨눴고 법원에서 잠정적이나마 가해자로 몰린 조합원은 빠른 시일 내에 항변할 기회를 얻는 것도 쉽지 않다”며 “노동가압류 절차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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