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중랑구 신내동 서울의료원 전경.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비정규직 차별을 판단할 때 ‘비교대상 노동자’는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에 있다면 노동위원회가 직권으로 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차별시정제도 취지에 따라 기간제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신속하게 시정할 수 있도록 비교대상 범위를 넓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호봉제 정규직 보조원과 혼재해 근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30일 서울의료원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차별시정 재심판정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에서만 4년을 심리한 끝에 나온 결과다.

사건은 서울의료원의 기간제 노동자 A씨가 수당과 성과급 등을 받지 못하면서 시작됐다. 노숙인이었던 A씨는 2011년 5월 ‘노숙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의료원에 입사했다. 중앙공급실 소속 일급제 계약직 보조원으로 배정된 후 계약갱신을 거쳐 2014년 12월까지 근무했다. 이후 다시 일자리 사업의 도움을 받아 이듬해 2월 재입사했다가 2017년 1월 퇴사했다.

A씨가 소속된 중앙공급실 직원은 주로 멸균과 세탁물을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했는데 보조원의 계약형태는 다양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정규직 보조원 4명, 무기계약직 1명, 기간제 5명이 중앙공급실에서 일했다. 일급제 계약직은 A씨가 유일했다. 보조원들은 물품 멸균과 세척, 세탁물 관리 등을 나눠 맡았다. A씨와 정규직 보조원이 하는 일은 사실상 같았다.

그런데도 정규직 보조원만 수당과 성과급, 연차휴가 미사용수당, 퇴직금 등을 받았다. 의료원은 2015년께부터 정규직 보조원에 대해 호봉제를 시행하며 최초 입사시 ‘기능직 3등급 3호봉’을 부여했다. A씨와 함께 일했던 정규직 보조원 B씨는 2017년 1월 기준 3등급 33호봉이었고, 또다른 정규직 보조원 C씨는 2015년 12월 3등급 30호봉으로 정년퇴직했다.

‘정규직’ 비교대상 선정 두고 하급심 판단 엇갈려

그러자 A씨는 B씨와 C씨를 비교대상 노동자로 삼아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을 신청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은 사용자가 기간제라는 이유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에 비해 차별적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서울지노위는 2015년 2월~2017년 1월 수당 미지급은 차별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기능직 3등급 3호봉 정규직에게 지급한 금액과의 차액(2천5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의료원에 주문했다.

중노위도 ‘중앙공급실 소속 기능직 3등급 3호봉 정규직 보조원’을 비교대상 노동자로 선정했다. 중노위 역시 ‘차별’로 판단하자 의료원측은 2018년 3월 소송을 냈고, 1심은 중노위 판정을 유지했다. 하지만 2심 판단은 달랐다. A씨가 지정한 B·C씨만을 중노위가 비교대상으로 삼았어야 한다며 의료원측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동일성 인정 범위 내 노동위 비교대상 선정”

1·2심 판단이 엇갈리자 2019년 9월 사건은 대법원으로 향했다. 쟁점은 △중노위의 비교대상 선정의 적법성 △소송에서 비교대상의 추가·변경 여부였다. 대법원은 비교대상 선정이 적법했다는 취지로 원심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비교대상 근로자의 선정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보면 차별 여부에 대한 실체 판단에 나아갈 수 없어 차별시정제도를 통한 근로자 구제가 미흡할 수 있다”며 “차별시정제도 취지와 직권주의적 특성 등을 고려하면 노동위원회는 신청인이 주장한 비교대상 근로자와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조사·심리를 거쳐 적합한 근로자를 비교대상 근로자로 선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A씨 차별에 관해서도 ‘중앙공급실 소속 기능직 3등급 3호봉 정규직 보조원’을 비교대상으로 삼은 것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A씨가 최초 신청이유서에 3등급 3호봉 정규직을 기준으로 구체적 손해액을 산정했고, B·C씨를 언급했지만 이들만 비교대상으로 한정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다. 정규직과 업무 성격에 차이도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보조원들은 상호 협업하는 형태로 업무를 수행했고, 전체 업무를 감독하는 간호사가 따로 있었으므로 정규직 보조원이 관리자 역할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정규직 보조원이면 호봉에 차이가 있더라도 비교대상 근로자로서 동일성이 인정된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중노위가 소송에서 다른 정규직을 비교대상으로 삼은 부분도 문제가 없다고 해석했다. 대법원은 “중노위는 재심판정에서 비교대상으로 삼은 근로자를 변경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업무 동종·유사성이 인정되는 정규직 보조원이 존재함을 증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언급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법조계는 기간제 노동자 차별을 판단하는 ‘비교대상 노동자’ 범위를 확대했다고 평가했다. A씨를 대리한 김병욱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중노위가 범위를 넓혀 추상적으로 비교대상 근로자를 지정하더라도 위법하지 않다는 판결”이라며 “차별시정제도 취지에 맞게 대법원이 중노위의 비교대상 근로자 선정에 관한 권한을 적극적으로 해석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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