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다운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헌법 11조1항은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국가에게 이를 보장하고 실현할 의무를 부과한다. 또한 위 헌법 정신에 따라 마련된 근로기준법은 1953년 제정시부터 6조에서 균등대우원칙을 마련했다. 이렇게 근로 영역에서 차별금지 원칙이 법률에 의해 반복돼 확인되고 있는데도 법원이 차별을 인정한 사례는 극히 드문 이유는 뭘까.

대법원은 지난 21일 근로기준법 6조의 판단기준을 담은 첫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했다. 이 사건의 원고들은 각 지역의 국토관리청장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이다. 이들은 공무원들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데도 단지 계약형태의 차이로 각종 수당 등에서 불리한 취급을 받아 왔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국가공무원제도에 따라 공무원의 고용관계는 일반 근로자와 달리 규율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무기계약직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공무원과의 관계에서는 근로기준법에서 차별금지 사유로 삼고 있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지 않고, 따라서 차별판단의 비교대상조차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과반수에 가까스로 미치지 못하는 다섯 명의 재판관이 반대의견을 밝혔다.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균등대우원칙의 취지는 근로의 내용이나 가치와 무관한 사정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므로, 차별을 주장하는 두 근로자 집단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비교대상 근로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미 선행사건들에서 공무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을 반복해서 확인한 바 있다. 그런데도 공무원과 무기계약직 간 비교조차 거부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근로영역에서 차별이 허용되는 ‘공무원’이라는 특권적 신분을 창설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민에 대한 봉사를 사명으로 하는 공무원의 지위를 별도의 법률로 정한 취지가 공무원에게 특권적 지위를 설정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점은 자명하다. 이런 점에서 반대의견은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물론 이번 판결은 공공부문에서 ‘공무원’을 비교대상으로 삼아 차별을 주장하는 경우에 국한되므로, 일반 사적영역이나 공기업 등에서까지 파급력이 미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판결문에서 다수의견이 “근로의 내용이 유사하기만 하면 그들을 비교대상으로 삼아 근로조건의 차이를 사회적 신분에 기한 차별적 처우라고 보는 것은 (…) 끝없는 집단 간 비교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한 부분에서 나타나는 인식의 빈곤이 특히 우려스럽다는 점은 지적하고 싶다. 현실에서 존재하는 차별을 시정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억압해 차별적 상태를 공고히 하는 것이 마치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갈등 없는 사회’라는 것으로 읽힌다. 이러한 견해는 사회적 특권과 계급의 창설을 거부하는 헌법 정신에 반한다. 뿐만 아니라 차별받고 소외되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듣고 실질적 평등을 구현해 사회적 연대와 통합을 지향해야 할 사법부의 목소리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렵다. 법원의 존재 목적인 가장 기본적인 인권과 정의 관념과도 거리가 한참은 멀어 보인다.

현실과 멀어지는 법원의 법리가 얼마나 생명력을 얻을 수 있을까. 특히나 일반적인 다른 사용자보다 훨씬 모범적인 근로관계를 구축하고 평등을 실현해야 할 헌법상 의무를 지는 ‘국가’가 차별시정의 예외 영역으로 취급된다는 것은 도저히 설득력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세계인권선언은 물론 노동법제의 보편적 원칙인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에 대한 어떠한 해명도 없는 다수의견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평등’이라는 단어가 단지 법문에서만 머무는 개념이 아니라 현실에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적어도 법원은 현실의 분쟁과 갈등을 외면하지 말고 최후의 구제기관으로 그 역할을 보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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