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3. 9. 21. 선고 2016다255941 전원합의체 판결

▲ 조연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 조연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근로기준법 6조는 201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재발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조항이다. 그 재발견의 주체는 다름 아닌 대상판결의 원고들과 같은 ‘무기계약직’ 근로자다.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이라고 불리는 이들 중 기간제, 파견직은 각기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서 정한 차별시정제도를 통해 동일 또는 동종·유사한(요컨대 ‘본질적으로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비교대상 근로자와의 차별을 시정할 수 있지만 무기계약직은 이러한 개별적이고 고유한 차별시정제도가 부존재한다. 이때 이들에게 정규직과의 차별시정을 도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공한 핵심 조항이 바로 근로기준법 6조다. 2016년 6월10일 서울남부지법 판결(2014가합3505) 이후로 ‘고용형태’ 내지 ‘고용상 지위’를 이유로 한 차별 사안에서 근로기준법 6조는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무기계약직’이라는 용어는 일상에서 빈번히 쓰이나 그 용례가 통상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법적인 용어도 아니고, 어의상으로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를 짧게 줄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개념상 여기에는 ‘정규직’도 포함될 수 있는데, 정작 우리가 현실에서 ‘무기계약직’이라고 할 때 정규직을 포함한 의미로까지 새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공공· 금융 부문에서 특히 주도된 무기계약직의 태생부터가 ‘근로조건이 정규직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는’ 그러나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은 체결한’ 근로자 지위의 창설에 있기 때문이다. 무기계약직이 ‘중(中)규직’으로 불린 것도 이런 배경이다. 무기계약직이라는 명칭은 단순한 고용형태 분류가 아니라 어떠한 사회적(특히 정규직에 미치지 못하는) 평가가 반영된 지위라는 인식을 가늠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 6조는 헌법 11조의 평등원칙을 노동관계에서 구현하기 위한 조항으로 (1)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한 차별인지 (2) 차별적 처우가 위법한지를 요건으로 한다. 이때 위법한 차별은 ‘비교 가능한 두 집단 간 합리적 이유 없는 불리한 처우’를 의미한다. 결국 (2)는 (a) 두 근로자집단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집단인지 (b) 만약 그렇다면 그 불리한 처우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에 대한 판단으로 구성된다. 한편 종전의 법리는 주로 헌법 11조와 관련해 전개됐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6조가 적용되는 노동관계에서는 위와 같은 요건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가 규명을 요하는 중요한 쟁점이었다. 대상판결은 비록 비교대상 근로자가 공무원이기는 하나 근로기준법 6조의 해석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대법원 판결인데, 다수의견은 아래의 이유에서 법리적 타당성과 일관성이 결여됐다는 문제가 있다.

첫째, 고용상 지위가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는지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집단에 속하는지와는 요건과 판단기준이 구별되는 별개의 쟁점이고 판단의 단계도 다르다. 따라서 이를테면 어떠한 고용상 지위가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보더라도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집단에 속하지는 않는다는 논증도 가능하며, 그렇게 판단한 하급심 판결례들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다수의견은 이를 분리하지 않은 채 공무원의 특수성만을 근거로 제시하면서(이 내용들은 차별의 합리적 이유 판단에서 주로 고려될 것들이다) 한꺼번에 판단했다. 그 결과 사회적 신분에 대해서도,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집단에 대해서도 판단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둘째, 다수의견이 내세운 근거들은 모두 공무원 지위 등의 특수성에 매몰돼 그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러한 맥락에서 다수의견 스스로도 공무원-국가 사이의 관계는 “공법상 신분관계”라고 적고 있다. 차등대우의 정당화 논거로 그 무엇보다 공무원의 신분성을 강조했으면서도, 정작 그러한 신분 관계가 결여된 당사자인 원고들의 공무직이라는 지위는 신분이 아니고, 그 차등대우도 사회적 신분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은 비논리적이다. 더욱이 다수의견은 고용상 지위가 “공무원과의 관계에서” 사회적 신분이 아니라고 했는데, 고용상 지위가 어떠한 경우에는 사회적 신분이고 다른 경우에는 아닐 수 있다는 해석이 타당한지, 실효적인지도 의문이다.

셋째,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집단이라고 하려면 모든 측면에서 동일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물리적·현실적 동일성만이 핵심인 것도 아니며, “비교대상과 관련된 헌법규정 및 당해 법률규정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규범적 해석”을 아울러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헌법재판소 2010. 3. 25. 선고 2009헌바538 결정 등) 그렇다면 다수의견은 위와 같은 법리를 토대로 노동관계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집단은 어떤 요소들을 기준으로 가려야 하는지를 밝혔어야 한다. 관련해 입법자는 이미 근로기준법 6조와 동일한 규범적 문제 상황(노동관계에서의 차별)을 규율하는 기간제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등에서, 동종·유사한 업무 또는 동일가치노동 수행 여부를 기준으로 제시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 6조에서도 같은 기준의 채택 여부가 중요한 설시 대상이어야 함에도, 다수의견은 쟁점에서 빗겨나 ‘공무원의 특수성’만을 강조했다.

넷째, 대법원 스스로 설시해 온 선례들과의 일관성을 기하지 못했다. 대법원은 이미 공무원이 기간제근로자의 비교대상근로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3두20011 판결 등). 또한 대법원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에 사회적 신분이나 성별에 따른 임금 차별을 해서는 아니됨은 물론 근로 내용과는 무관한 다른 사정을 이유로 불합리한 차별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대법원 2019. 3. 14. 선고 2015두46321 판결). 특히 후자의 판결은 그 법리의 근거 중 하나로 근로기준법 6조를 명시했고, 당해 사건에서 비전업 시간강사라는 지위가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는지, 전업과 비전업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집단인지 여부를 별도로 판단하지 않았다. 이상과 같은 법리들이 여전히 유효함에도, 다수의견에 따르면 차별을 주장하는 자가 무기계약직이고 그 비교대상근로자가 공무원이라면 수행 업무가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근로기준법 6조를 주장하지 못하는 바, 이러한 결론은 선례와 일관되지도 않고 그 자체로 무기계약직에 대한 또 하나의 차별이다.

다섯째, 노동법 체계에서 근로기준법 6조가 갖는 의의를 고려하지 못했다. 반대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선수의 보충의견이 지적하듯 노동법은 시민법과는 전제를 달리한다. 시민법의 기반인 대등한 사인 간의 사적자치 원칙은 인적·경제적·구조적 종속성에 터 잡은 노동관계에서는 그 이상대로 발현되지 못한다. 그 굴절을 수정하기 위해 태동한 노동법은 최소기준을 강행적으로 정하며, 노동 3권과 노사대등 실현을 위한 제도들을 마련했다. 근로기준법 6조도 이러한 노동법의 맥락에서 해석돼야 하는 바, 헌법 11조를 노동관계에서 구현한다는 것은 근로자를 차별로부터 더 넓게 보호함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 반대일 수는 없다. 이에 부합하게 최근 하급심은 ‘평등원칙은 신분을 가진 자와 갖지 않은 자 사이뿐 아니라 동일한 신분을 가지는 자들 사이의 불합리한 차별도 금지하는 의미’라고 해 차별금지 법리의 적용을 확장하는 해석을 보여줬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12. 23. 선고 2020가합586005 판결 등). 이와 정반대 방향의 다수의견은 노동법의 목적과 근로기준법 6조의 취지에도 반한다.

다수의견의 위 문제점들은 이미 별개의견과 반대의견, 반대의견에 대한 두 보충의견들에서 논리적이고 치밀하게 지적됐다. 지금까지 대법원이 노동관계상 차별에 대해 축적해 온 고민들을 엮어 촘촘한 법리를 설시했어야 할 사건에서 다수의견은 오판을 남겼다. 다만 이 사건은 대법원 보도자료도 적시하듯 고용상 지위로 인한 차별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판단도, 무기계약직의 사회적 신분 해당성을 일반적으로 부정한 판단도 아니므로, 이후 근로기준법 6조가 쟁점이 된 사건에서 타당한 법리가 설시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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