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부의 의대 정원 수요조사 결과 발표 뒤 대한의사협회가 총파업으로 맞대응하면서 필수의료 개선 논의가 되레 퇴행한다는 비판이다. 지역과 필수의료과목 의사 태부족 같은 사태 해결 방안은 자취를 감추고 의대 입시를 위한 사교육마저 부추길 우려가 제기됐다.

들썩이는 사교육계 “준비생 2만2천명 확대” 반색

벌써부터 사교육계는 정부의 의대 정원 수요조사 결과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주요 입시업체인 종로학원은 22일 정원 확대에 따른 의대 지망생 규모 전망치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면서 “2024학년도 전국 의대 준비 수험생수는 9천532명으로 추정되고, 의대 모집정원을 4천명으로 확대하면 의대 준비 학생수는 2만2천175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행 의대 정원은 3천58명이다.

의대 모집정원 4천명은 전날 보건복지부가 전국 의대 40곳의 2025~2030년 정원 확대 수요를 조사한 최대치인 2030년 3천953명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9일까지 전국 40개 의대에 정원 확대 수요를 물은 결과 교육투자를 현행 교육수준을 전제로 대학들은 2025학년도에 최소 2천151명을 늘려 달라고 요구했다. 교육투자를 전제로 한 최대 수요는 2천847명이다. 2030년까지 최소 수요 누계는 2천738명, 최대 수요 누계는 3천953명이다.

정부 발표 직후 대한의사협회는 강하게 반발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의협은 17차례 걸친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통해 정부와 소통했으나 정부가 일방적으로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은 신뢰관계를 깨뜨린 심각하고 불공정한 일”이라며 “정부가 의대정원 정책을 일방 추진한다면 총파업을 포함한 강력한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수요조사 발표와 이에 뒤따른 의협의 강경한 발언을 바라보는 의료계 시선은 착잡하다. 최규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 사무처장은 “이런 방식의 대립을 우려했다”며 “필수의료공백 해소를 위한 논의가 의대 정원 몇 명, 수가 얼마 같은 논의가 근본 취지인 지역의료 공백과 필수의료 강화, 공공의료 확대 같은 이야기를 거세하고 협소한 담론구조를 구축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의대 정원 줄다리기와 수가 인상 교섭 같은 단순한 논의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수가인상으로 해결 요원, 인력 공급 확대 절실

의대 정원 확대는 불가피하다. 현재 필수의료쪽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은 의협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원이 올해 3월 발표한 필수의료 활성화를 위한 정책방안 연구를 보면 흉부외과 전문의는 1천140명으로 피부과(2천290명), 성형외과(2천216명) 비해 절반 수준이다. 특히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연평균 증가율을 보면 흉부외과는 1.9%에 머무른 반면 성형외과 4.5%, 피부과 3.2%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간 전체 과목의 연평균 증가율은 3.3% 수준이다. 이러니 인구 10만명당 전문의 현황도 흉부외과는 1.7%(평균 3%, 성형외과 4.2%, 피부과 2.9%)에 그친다.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의사와 국민의 시선은 엇갈린다. 의사들의 필수의료 분야 기피현상에 국민 전체와 의사들의 의견이 다르다. 최근 연구에서 국민 대상 설문조사 결과 39.1%는 필수의료 분야 기피현상 원인으로 “과도한 업무부담”을 꼽았다. 의협이 주장하는 낮은 의료수가는 19.2%로 절반 수준이다. 이와 달리 의사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58.7%가 낮은 의료수가를 꼽았다. 과도한 업무부담은 12.9%로 나타났다. 인식의 차이가 드러난 셈이다.

다만 의료수가 인상에 대해서는 의료계 전반의 평가가 다르다. 오선영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수년간 낮은 의료수가를 인상한다며 교섭하고 올렸지만 여전히 쏠림 현상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의사들 역시 과도한 업무부담을 호소하고 있고, 의사들이 부족해 현장에서 불법의료 같은 직역갈등이 만연한 점을 고려하면 인력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의대 정원 확대를 바라는 국민 여론은 83.3%에 달한다.

정부-의협 줄다리기 ‘총선용 불쏘시개’ 전락 우려

문제는 방법이다. 무턱대고 정원만 늘리는 것은 다양한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크다. 특히 교육계 황폐화가 예상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관계자는 “의사 인력 확충은 사회적 과제이고 이를 위한 의대 정원 확대는 필수”라면서도 “의대 정원 확대 목적은 지역의료 붕괴를 회복하겠다는 것인데 현재의 의료교육 체계상 지방의대를 졸업하고 다시 수도권으로 쏠리는 문제가 커 이를 해소하는 게 핵심과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현재 정부가 내놓은 것이 없어 어떻게 정책을 설계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의대 정원 확대는 사교육과 입시업체에 ‘노다지’다. 지난해 기준 사교육 참여학생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52만4천원에 달한다. 이는 전 과목 평균으로, 의대 진학을 노리는 학생의 사교육비는 이보다 높다. 게다가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 이공계 인재의 의대 쏠림이 더욱 확대할 우려가 크고, 2028학년도 입시부터 문·이과 통합이 이뤄질 경우 문과의 인재유출도 피하기 어렵다. 의대 정원 확대에 따른 학과구조조정으로 대학교육마저 흔들릴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의도적으로 의대 정원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필수의료 혁신을 강조하면서 총선에서 의대 정원 확대를 공약으로 한 선거운동에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신중한 논의를 주문할 수밖에 없다. 최 사무처장은 “의협하고만 대화하는 편협한 테이블이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와 의료계 전반과 함께 대화하면서 정부가 먼저 어느 지역에 어느 정도 의사가 더 필요하고 이를 담보할 방법은 뭔지, 그리고 어느 정도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한지 점검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단순히 의대 정원을 얼마나 늘리냐만 논의하는 것은 결국 총선 승리라는 정치적 노림수라는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오 정책국장은 “보건의료노조가 제시한 한해 1천명, 10년간 1만명은 현재 의사수인 10만명의 10%에 해당하는 규모로, 다양한 의사 인력 확충안을 수렴하면서 교육여건과 입시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제안한 숫자”라며 “배출 시점을 고려한다면 공공의대 설립 등도 지금 논의를 시작하지 않으면 너무 늦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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