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11일 부산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DL이앤씨 하청업체 소속 고 강보경씨의 유족이 서울 종로구 DL이앤씨 돈의문 사옥 앞에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DL이앤씨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하청업체 소속 일용직 노동자 고 강보경(29)씨 사고와 관련해 ‘원청’인 DL이앤씨측이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족은 하청업체인 KCC 역시 강씨에게 과실이 있다는 식으로 답변했다며 원·하청 모두 ‘책임 전가’ 방식의 대응으로 일관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원·하청 책임 소재 이유로 사과 거부”

15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 DL이앤씨 사측과 유족측은 협상테이블에 앉았지만, 약 30분 만에 소득 없이 끝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8월11일 강씨가 목숨을 잃은 지 95일째이자 서울 종로구 DL이앤씨 돈의문 사옥 앞에 분향소를 차리고 농성에 들어간 지 28일째다.

유족측은 이날 오전 협상에서 사측이 하청인 KCC와의 책임소재 등을 문제로 협상을 사실상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DL이앤씨측은 창호 교체를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하청 작업자들이 ‘임의로’ 작업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취지로 주장한 바 있다. KCC 소속으로 일했던 강씨는 사고 당일 오전 10시10분께 부산 연제구 소재 레이카운티 신축 아파트 건설현장 파손된 거실 유리창을 교체하던 중 떨어지는 창틀을 잡고 있다가 20미터 아래 바닥으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하청의 ‘임의’ 작업으로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DL이앤씨측 주장은 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10월6일부터 약 6차례 협상을 진행했으나 사측 태도로 인해 협상이 결렬됐다는 게 유족측 설명이다. 유족측은 △사망사고 진상 공개 △유족에게 공개 사과 △7건의 중대재해 조사내역과 재발방지책 공개 △그룹 차원의 실효성 있는 근본대책 수립·공개 등 8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 주에만 지난 13일 오전·오후, 이날 오전 협의를 가졌다.

‘DL이앤씨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인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DL이앤씨는 사고 경위에 대한 유족의 설명이 있어야 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이유로 유족 요구에 대한 회사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며 “원·하청간 책임 소재 등의 내부적인 문제를 이유로 책임 인정도, 공개 사과도, 해결 방안 마련도 사실상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도급인으로서 수급인 노동자(강씨)에 대한 총괄적인 안전관리 의무가 있는데도 하청과의 견해 차이를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는 것이다.

DL이앤씨측은 작업을 지시한 적 없다고 주장하지만, 작업지시가 있었던 정황이 짙다. 본지가 확보한 DL이앤씨와 KCC측 관계자의 SNS 대화를 보면 사고 전날 DL이앤씨 건축기사가 KCC 소장에게 “603호 거실 대창(창문) 유리파손분인 것 같은데 마루 시공 내일쯤 내려오니 최대한 빨리 (창호를) 교체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다음날 오전 7시43분께는 “마루 시공 들어간다. 치워 달라”고 재차 요구했다. 이후 2시간30여분 만에 사고가 일어났다.

하청 KCC “본인 임의 판단” 피해자에 책임 돌려

하청인 KCC 역시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은 KCC와도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KCC측은 재발방지 대책으로 “본인 또는 팀의 선임이 임의로 판단하지 않도록 작업자 교육 실시”라는 내용이 담긴 서류를 유족에게 건넸다. 이날 이어진 협상에 참여한 강씨 누나 지선(33)씨는 “동생의 실수나 잘못으로 사고가 난 것처럼 말하는 KCC 태도에 화가 나 자리를 박차고 나올 뻔했다”며 “현장답사에 왔던 관계자는 7월에 동생이 안전벨트와 안전모를 착용한 사진을 마치 사고 당시 사진처럼 보여주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DL이앤씨측은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상황이라 법적 검토 중이라고 해명했다. 사측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유족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진행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며 “사고 당시 상황은 작업자 3명만이 알고 있을 텐데, 경찰에서 조사하는 상황에서 책임 소재는 명확히 가리고 나서 보상 부분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12월1일 예정된 중대재해 관련 청문회에 DL이앤씨의 모회사인 DL그룹의 이해욱 회장을 출석시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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