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로구 평동 DL이앤씨 돈의문 사옥 전경. <홍준표 기자>

‘e편한세상’ 건설사로 유명한 DL이앤씨는 지난해 1월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7번째 사망사고가 일어난 최다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 전국 시공현장을 일제 감독했지만,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DL이앤씨 사고 원인과 문제점을 유족 인터뷰와 사고 경위 분석을 통해 연속해 살펴본다.<편집자>

DL이앤씨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하청업체 소속 일용직 노동자 고 강보경(29)씨가 창호 교체 중 추락해 숨진 사고와 관련해 원청인 DL이앤씨측이 하청에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DL이앤씨측은 창호 교체를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하청 작업자들이 ‘임의로’ 작업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원청 기사, 사고 전날 “창문 빨리 교체” 독촉

10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DL이앤씨측은 사고 하루 전날 하청 관계자에게 “창호를 빨리 교체해 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강씨는 지난 8월11일 오전 10시10분께 부산 연제구 소재 레이카운티 신축 아파트 건설현장 107동 603호에서 파손된 거실 유리창을 교체하던 중 떨어지는 창틀을 잡고 있다가 20미터 아래 바닥으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안전대와 안전고리·안전모가 지급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이 정한 ‘낙하물 위험방지’ 조치인 높이 10미터 이내의 추락방호망도 없었다. 유족에 따르면 하청업체 KCC 현장관리자는 “안전모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강씨 외삼촌 이한진(64)씨는 “현장 답사시 하청 관리자가 안전벨트를 지급하지 않고 안전교육도 실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최소한의 안전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실제 DL이앤씨의 작업지시가 화를 불렀을 정황이 나타났다. 본지가 확보한 DL이앤씨와 KCC측 관계자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를 보면 DL이앤씨 건축기사는 KCC 소장에게 “603호 거실 대창(창문) 유리파손분인 것 같은데 마루 시공 내일쯤 내려오니 최대한 빨리 (창호를) 교체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이어 다음날 오전 7시43분께 “마루 시공 들어간다. 치워 달라”고 재차 요구했다. 이후 2시간30여분 만에 사고가 일어났다.

DL이앤씨측 “요구·지시 없었다”

반면 DL이앤씨측은 KCC측이 603호 거실에 가져다 놓은 새 창호를 원청 지시 없이 임의로 교체하다가 사고가 났다고 주장한다. DL이앤씨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당시 바닥을 마감해야 해서 (바닥에 쌓여 있던) 창문을 복도로 빼 달라고 요청한 것일 뿐”이라며 “창호가 이미 있는 상황이었고, 바닥 작업을 하기 때문에 안전모나 안전고리를 착용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고 내용을 파악해 보면 창호 교체를 요청하거나 작업을 지시한 것이 아니다”며 “A/S(창호 교체)를 요청한 것이라면 당연히 안전관리자가 현장에 가서 감독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상적으로 작업지시서를 현장에 내려보냈다면 충분한 안전조치가 시행됐을 것이라는 취지다.

DL이앤씨측은 추락방호망도 거의 완공된 상황이라 내부작업만 이뤄지고 있어 제거했다고 해명했다. 3인1조 작업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한 경위 역시 KCC측의 소관이라고 주장했다. DL이앤씨 관계자는 “KCC는 하청업체가 아니라 협력업체라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강씨 누나 지선씨는 “동생은 창호 기술도 없었고 동료 1명은 초보였다는데 어떻게 미숙련 노동자들이 두 명이나 일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작업지시 정황 짙어 “도급인 안전의무 있어”

정황상 DL이앤씨측에서 작업을 지시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유족측은 원청 지시가 없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강씨 외삼촌은 “위험한 작업을 하는데 안전관리자 배치 없이 임의로 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깨진 유리창이 떨어질 수 있어 신호수나 안전요원이 있어야 하는데 원청에서 모를 수 없지 않느냐. 원청 안전관리자들은 자고 있었냐”고 반문했다.

‘DL이앤씨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인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도급인(DL이앤씨)이 수급인(KCC)에 창호 교체를 지시한 상태였고 창호 교체를 빨리 해 달라고 해서 작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DL이앤씨가 시공을 총괄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측면에서는 수급인쪽 작업 진행 상황을 관리하거나 안전조치를 해야 할 의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하청인 KCC는 즉답을 피했다. KCC 관계자는 “경찰 수사 중이라 공식적인 답변은 어렵다”며 “수사에서 작업자가 임의로 작업을 했다는 부분도 밝혀질 것 같다. 작업지시 부분은 DL이앤씨와 해석이 달라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도급인은 아파트가 최종 완공될 때까지 수급인 노동자에 대한 안전보건 조치를 할 의무가 있다”며 “DL이앤씨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7건이나 사고가 일어난 만큼 전반적인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여부를 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지난 8월 부산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고 강보경씨의 유족과 노동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DL이앤씨 본사 앞에서 ‘디앨이앤씨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 발족을 선언하고, 사고의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지난 8월 부산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고 강보경씨의 유족과 노동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DL이앤씨 본사 앞에서 ‘디앨이앤씨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 발족을 선언하고, 사고의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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