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고용노동부가 13일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개편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가 ‘답정너’ 설문조사라는 비판이 높다.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개편해야 하는 이유보다는 주 52시간제 정착이 입증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주 52시간 안착 확인시켜 준 설문조사

노동부가 지난 3월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은 민심과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 이번 설문조사로 재확인됐다. “현재 직장에서 추가적인 소득을 위해 연장근로를 할 의향이 있냐”고 묻는 질문에 노동자 41.7%(1천599명)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들에게 “정당한 보상이 주어질 때 할 수 있는 최대 주간 근로시간”을 묻자 ‘1주 52시간 이내(55.7%)’란 답변이 가장 많았다. 주 52시간 상한제가 현장에 상당히 안착했음을 보여준다. ‘1주 60시간 이내’와 ‘1주 64시간 이내’는 각각 25.5%, 11.7%에 불과했다.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더라도 ‘1주 64시간 초과’ 근로를 하겠다는 응답은 2.5%(40명)에 불과했다.

주 52시간 상한제에 대한 사업주의 불만도 크지 않았다. 전체 사업주 976명 중 현 근로시간 규정으로 애로사항을 경험한 비율은 14.5%에 그쳤다. 최근 6개월간 1주 52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 발생 빈도를 묻는 질문에 “발생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노동자와 사용자 각각 70.9%, 45.2%였다.

주 52시간 근로시간 제도가 장시간 근로감소에 기여했다는 데 동의하는 응답은 노(48.5%), 사(32.9%), 국민(48.2%) 모두 비동의 응답보다 높았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각각 16.1%, 15%, 23%에 불과했다.

그런데 설문조사 결론은 일부 업종·직종에서 주 52시간 상한제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노사 논의를 통해 업종별·직종별 관리 단위를 확대하겠다는 발표로 이어졌다. 노동자(41.4%)·사업주(38.2%)·국민(46.4%)이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입맛에 맞게 문항 구성”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이사장은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비동의보다 10%포인트 정도 많은데 연장근로를 했을 때 건강에 해롭다는 설명을 넣었다면 결과가 이렇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예견된 대로 정부 정책 방향에 맞게 문항이 구성됐다”고 평가했다.

김 이사장은 "향후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가 필요한 업종을 물어 본 문항은 가장 큰 문제”라며 “해당 산업 종사 노동자·사업주가 아닌데 어떻게 그걸 알고 답할 수 있나”라고 덧붙였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설문조사는 아무리 객관적으로 설계한다고 해도 (설문조사) 주관자의 의도에 따라 답이 나오기 마련”이라며 “설문조사 방식으로 강행규정인 노동시간 제도를 개편하는 근거와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은 꼼수”라고 비판했다.

비슷한 논란은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있었다. 당시 정부는 비정규직 사용 기간 확대를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했고, 비정규 노동자 설문조사를 실시해 “기간제 노동자 80%가 기간 연장에 찬성한다”고 홍보했다. 질문이 “한 사업장에서 기간제 근로자로 일할 수 있는 기한을 최대 몇 년까지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냐”가 아닌 “기간제 근로자로 일하다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할 기간이 얼마나 돼야 한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면 다른 답변이 나왔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민주노총은 성명에서 “설문조사 문항을 보면, 답정너 질문으로 일관돼 있다”며 “전반적으로 주 52시간제의 문제점 및 애로사항을 설명하고, 그래서 정부가 추진하는 연장근로 단위기간 확대 방안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유도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노총도 “설문지 곳곳에 정부가 원하는 답을 받기 위한 의도된 질문이 보인다”며 “‘실제 일다가 주 52시간을 잘 지키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하고 ‘바쁜 시기에 연장근로 더하고 나중에 쉴 수 있게 단위기간를 확대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고 이어서 묻는 식이다. 이렇게 질문하면 동의한다는 대답이 높게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성희 차관은 “설문조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 제도개선을 하기는 어렵다”며 “노사와 국민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기준으로, 제도개선 방향은 노사가 사회적대화를 통해서 논의를 해야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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