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 기자

<매일노동뉴스>는 민주노총의 직선 4기 선거를 앞두고 사회적 의제와 노동운동의 방향성을 고민하기 위해 정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질문이 정파 간 차이를 드러내기에 뭉뚝했거나, 준비가 부족했다는 세간의 비평도 들린다. 그러나 예각화하기에 적절한 정치관·대북관 같은 상층부의 논의보다 당장 오늘과 내일의 임금·비정규직·성차별 같은 일상의 문제이자 사회적 담론에 대한 답변을 정리하는 게 몰가치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마지막 순서로 바쁜 와중에도 취재에 응해 준 각 정파의 관계자들 발언을 싣는다. 앞선 5편이 씨줄이었다면 이번 인터뷰는 날줄이 되길 기대한다. 진기영 평등의길 집행위원장과는 지난 12일 오후 만났다.<편집자>

[논쟁: 길을 묻다]

① 최저임금은 유효한가

② 비정규직 철폐 또는 차별 시정

③ 기후위기와 노동운동의 탈성장

④ 여성주의는 노동운동과 만났을까

⑤ 사회적 대화, 어떻게 할 것인가

⑥ 전국결집·전국회의·평등의길 인터뷰

 

- 최저임금 운동에 대한 평가는.
“기업별노조가 많고 산별노조의 중앙교섭도 위축된 상황에서 일종의 사회적 교섭을 통해 미조직 노동자의 소득을 높일 수 있는 게 최저임금이다. 최근 초점이 인상률에 국한됐다. 과거 워낙 최저임금이 낮아 1만원 구호가 타당성이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 들어서 1만원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집중해 어려움이 있었다.

인상률을 적용하기 어려운 기업의 지불능력 부족 등으로 미만율이 오르는 대목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감독도 하고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늘어난 배달노동자 같은 고용형태에도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 등 범위도 확대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소득수준이나 경제적 규모에 비해 다른 나라보다 영세자영업자 비율이 높다. 이들 절대 다수가 사실은 노동시장에서 밀려나 형성돼 중위 노동자 수준보다 임금을 못 받는 열악한 조건에 있다. 실효성 있는 대책도 같이 고민해야 최저임금 요구가 사회적 동의를 받을 수 있다.”

- 실효성 있는 대책이란.
“산별교섭의 중요성이 크다. 19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 35년간 산별노조운동을 지속한 이유다. 그러나 여전히 기업별노조 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다. 임금격차가 줄지 않고 벌어지는 구조를 만든 결정적 배경 중 하나는 노조 교섭구조의 한계다. 민주노총의 전략적 과제 가운데 산별노조 건설이 양극화 해결을 위한 방법이었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비롯한 노동법 밖의 노동자를 포괄하는 교섭구조는 결국 산별교섭의 법제화다. 사업장의 규모에 따라 자본가가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다르다. 수출 주도 대기업은 인상 여력이 있지만 중소사업장은 그렇지 못하다. 노동자가 사업장에서 받는 임금이 1차 분배인데 이는 사업장 지불여력을 넘기 어렵고, 미조직·특수고용직 등은 교섭도 제한적이다. 그래서 사회적 임금이 필요하다. 사업장 간 임금격차를 줄이는 방법으로서의 산별교섭과 산별 노사관계 정착, 그 속에서 격차를 축소하는 것과 함께 특수고용직의 사회적 임금을 보장받고 사회적 임금을 높이는 장치가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속된 말로 가장 두들겨 맞았던 화물연대와 건설노조는 가장 열악하고 불안정한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긴 시간 동안 자신의 노동조건과 사회적 임금을 쟁취하기 위한, 이를테면 안전운임제 같은 성과를 내고 다수 조합원을 통해 사회적 역할을 했다. 이런 역할이 산별노조의 역할이다.”

- 비정규직 철폐 기조에 대한 평가는.
“우선 비정규직은 노동자가 원해 만든 게 아니다. 이윤이 있다면 지옥도 간다는 자본의 속성과 탐욕 속에 고용구조와 불안정한 노동시장을 통해 이윤을 확대하는 자본주의의 구조 속에 나타나는 문제다. 그런 구도에서 자신의 고용형태를 정규직으로 요구하는 것은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 문제는 교섭구조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비정규직 철폐는 사회적으로 강조하고 민주노총도 기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철폐 경로와 과정과 공간은 사업장 안에서 발생한다. 이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 화물노동자 같은 특수고용직의 정규직화는 어떤 형태냐는 질문도 있다. 제조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의 문제는 불법파견 소송(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통해 법적으로 정리가 된다. 투쟁이 법원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비판도 있긴 하지만 그런 평가는 다소 박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영세 사업자나 더 불안정한 특수고용직·플랫폼·프리랜서에게 비정규직 철폐가 곧 정규직화라는 것은 실효성을 얻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 당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5년간 논란이 많았는데 많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자회사로 전환됐거나 무기계약직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철폐로 등치하긴 어렵다. 격차 해소와 관련한 문제, 처우개선에 대한 문제를 같이 제기하는 방향으로의 고민이 필요하다.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진 못했지만 공무직위원회가 유사한 성격을 띠었다. 또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기 힘든 화물노동자, 특수고용직 등은 안전운임제 같은 방식에 주목한다. 사회적 임금이자 임금을 보장하는 제도를 구축하는 방식, 그리고 그런 틀을 확장하는 게 필요하다. 물론 쉽진 않다.”

- 기후위기에 대한 노동운동의 고민은. 급진적인 탈성장까지 가닿을 수 있나.
“탈성장이냐 아니냐 같은 양자택일의 문제로 접근하긴 어렵다. 현재 세계적으로 장기 저성장 구조에 진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 순간이 되면 자연스레 탈성장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탈성장을 해도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할 것이다. 자산·임금 불평등 구조는 장기 저성장 구조 속에서 상대적으로 더 힘들고 어려운 위치에 있는 노동자와 사회적 취약계층에 피해를 줄 것이다. 노동운동은 이들이 어떻게 소득을 더 보장하거나 높을 수 있는지 방안을 요구하고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공공요금 인상 논쟁도 있는데 어떤 요금이냐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한다.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요동치고 있다. 전기 생산을 위해 화석연료를 수입하는데, 전기요금을 원가 이하로 동결하면 재벌 대기업에 이윤이 간다. 게다가 석유를 수입하거나 전기를 생산하는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 같은 기관 부채는 증가한다. 그 부채는 고스란히 노동자와 시민의 책임으로 돌아간다. 탄소중립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투자도 재원 때문에 어렵다. 종합적으로 보면 공공요금을 묶어 두는 게 옳은가 하는 고민이 생긴다. 에너지 바우처 같은 에너지 빈곤층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있다. 대중교통요금은 또 다르다. 대중교통 가운데 지하철이 이용량과 탄소배출량을 볼 때 중요하다. 이런 지하철의 요금은 일정 부분 낮게 유지해야 한다. 정의당이 최근에 내놓았던 3만원 프리패스 같은 운동 등이 이런 대목에서 유의미하다. 이런 영역에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을 지원할 수도 있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집권한 뒤 공공부문 부채가 얼마다, 적자가 있다 이야기하는데 기후정의 관점에서 공공요금 문제는 이런 대목을 포함해 접근 방식을 달리 가져가야 한다.”

- 페미니즘과 관련해선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
“전술적으로 노동운동 내에서 어떻게 여성 지위를 확산할지가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사실 페미니즘은 사적으로 가장 취약한 영역 중 하나다. 공부를 해 보고 교육도 받아 봤지만 쉽진 않다. 급진적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맞다 틀리다고 말하기에는 모자라다고 생각한다. 최근 클라우디아 골딘 교수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으면서 남녀 불평등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을 언급한 것으 로 안다.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높은 수준이라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여성노동자의 헌신이 컸다. 한국 노동운동의 시발점은 전태일 열사이지만 청계피복노조와 YH무역 노동자 등 여성노동자가 노동운동을 했고, 여성노동자가 민주노동운동의 초기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 노동운동 내 여성의 비율이나 역할은 확대가 되지 않고 있다. 다르게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사회문제로 드러나기도 했다. 2023년의 노동운동이라면 두 문제를 모두 같이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노동운동은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여성 조합원이 노동운동의 리더가 되고, 노동운동의 핵심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과 훈련을 조직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어느 나라보다도 결혼과 출산에 따른 경력단절이 심하다. 노동운동의 적극적 투쟁이나 교섭을 통해 이런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의 노동운동 참여도 어렵다.”

- 사회적 대화는 가능할까.
“윤석열 정부에서 사회적 대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여진다. 다만 이를 떠나서 사회적 대화를 절대선이나 절대악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 의제와 업종, 특히 지역별로는 사회적 대화에 대한 고민의 지점들이 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사내하청 노동자가 힘들고 어렵게 투쟁했다. 그 결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 투쟁이 촉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고 본다. 노조법도 더불어민주당이 통과할 의지가 크지 않았다. 투쟁의 결과 사내하청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와 위험한 노동환경을 확인했지만 정작 그들은 손해배상·가압류에 시달리고 있다. 원청의 사용자성을 강조하지만 어쨌든 노동자에게는 삶의 문제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투쟁 이후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투쟁을 지속하기보다 평택 같은 지역으로 이동했다. 건설업 같은 곳에 투신하고 있다. 더 안전하고 돈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지역에서의 공동화, 산업 공동화 문제가 생기고 있다. 자꾸 ‘인서울’ 대학에 가려는 문제 등으로 지역에 인프라와 일자리가 없다. 있더라도 양질의 일자리가 없는 문제들이 다 맞물려 있다 이런 문제가 노동운동과 긴밀히 연동돼 있다. 이를 해결하라는 요구를 지속하고 파업을 계속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지역별··의제별·산업별로는 필요하다면 국한해서 사회적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열어 놓고 바라봐야 한다. 다만 윤석열 정부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체제에서는 어렵고 기대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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